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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답은 우연한 기회에 온다

스치는 생각도 내 생각의 일부다

by 미리


한때 '나는 왜 일하는 가'에 관해 의미를 찾고 싶어 했던 시기가 있었다. 일을 하는 동력이 있으면 삶이 조금이라도 더 편해질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이나모리 가즈오 저자의 <왜 일하는가>라는 책을 끝가지 다 읽고도, 일상에 일상을 거쳐 오래 고뇌했을 때도, 나는 해답을 찾지 못했다.


출근하고, 시간을 버티고, 퇴사를 꿈꾸는 이런 반복되는 삶에 과연 나는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고민해 봐도 늘 제자리걸음이었다. '이유가 왜 필요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말도 물론 맞지만, 일을 하는 시간도 내 삶의 일부니깐, 이왕이면 하고 있는 일의 이유를 찾고 싶었다.



그런 와중에 작년에, 회사 내 상담 복지 프로그램이 있어서 비대면 상담을 신청한 적이 있었다. 검사지 결과를 토대로 상담사 직원분과 소통했다. 나의 이야기는 대략 이랬다. "원했던 직업이었고, 회사였는 데, 막상 일해보니 이상과 많이 다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성장, 일의 의미, 자아실현 이런 가치를 중시하는 데, 지금 하는 일은 매일 단순 반복되고, 창의적인 일도 아니고..."


이런저런 말이 오고 가다가 상담 직원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런데 어떻게 보면, 원래 그런 일을 시키는 곳이 ㅇㅇ은행인 거니까요." 이 한마디가 쿵 하고 다가왔다. 그랬다. 그런 일을 시키는 곳이 회사고, 조직문화가 그렇고, 나는 그런 곳에 자발적으로 들어왔다. 불평불만해도 월급을 꼬박꼬박 주는, 회사는 잘못이 없다. 납득이 될만한 의외의 깨달음을 얻었다.


시간이 흘러, 어느 순간부터는 '일의 의미를 더 이상 찾지 않겠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고민하는 시간도 에너지 소모가 크고, 일의 의미가 애초에 있기는 할까 싶었다. 굳이 상기하지 않아도 월급은 계속 나오고, 갈수록 급여는 인상되고 있다. 또, 이만큼의 월급을 받을 만큼 크게 많은 일을 하고 있지 않다는 생각이 들자, '돈' 말고는 굳이 의미를 찾지 않아도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최근, 지역 대표 임원의 기획으로 만들어진 '리더십 코칭' 프로그램에 참석했다. 임원이 '책 읽어주는 남자' 콘셉트로 책을 소개하고, 직원들과 함께 소통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본부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컨설팅과 코칭의 차이를 아시는 분 계신가요?", 아무도 답이 없자 직접 답하셨는 데, '컨설팅은 솔루션을 제공해 주고, 코칭은 스스로 답을 찾아가도록 도와주는 과정'이라고 하셨다. 결론적으로, 나는 두 시간의 짧은 시간 동안 '일의 의미'에 관한 답을 스스로 찾게 되었다.


정확히 이야기하자면, 잠깐 딴생각을 하다가 머릿속에 한 문장이 스쳐 지나갔다. 강연은 <왜 일하는가> 책을 집필한 '이나모리 가즈오' 저자에 관한 이야기를 듣는 와중이었다.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행복하기 위해서다.

밑도 끝도 없이, 이 문장이 머릿속에 3초간 머물렀다 사라졌다. '일의 의미'를 고민해 온 시간이 '컵'으로 비유된다면 물이 조금씩 채워졌다가, 갑자기 흘러넘친 딱 그런 느낌이었다.


어디 책에서 봤던 문장이 불현듯 떠오른 건지, 온전한 내 생각인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뭔가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는, 일을 하지 않는 휴가 때, 해외여행을 가서 내면의 행복을 찾는 그간의 경험들이 떠올랐다. '내가 번 돈으로, 행복이 있는 곳에서 마음껏 즐기다가, 다시 돌아올 곳이 있다는 안정감으로 여행을 마무리한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사실 회사를 다닐 이유는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도 중력을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다. 내가 하는 생각과 감정도 쌓이다 보면 무게가 생기고, 그 생각들이 서로를 끌어당긴다는 뜻이다. '일의 의미'에 관해 알기 모르게 고민했던 생각이 중력을 가졌고, 순간적으로 하나의 문장을 끌어당겼던 건 아닐까. '내가 일을 하는 이유는, 일을 하지 않는 시간에 행복하기 위해서다.' 당분간은 이 문장으로 살아갈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나의 미래를 한정 짓고 살지 않는다. 하고 싶은 일에 확신을 가지고 행동할 순간이 머지않았다는 느낌이 든다. 그전까지는 우연히 얻은 이 생각의 선물을 풀어보며 묵묵히 또 걸어가야겠다. 스쳐가는 생각도 내 생각의 일부임을 말하고 싶다. 그간의 고뇌가 스쳐가는 생각 하나로 해결됐다. 해답은 우연히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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