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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리치 May 03. 2023

딴 짓? 뻘 짓? 그리고 포기!

면도하는 전업주부(육아휴직) #6

-잠 안 와?


지금 시각 2시,

체리의 눈이 반짝거린다.

며칠 전부터 체리는 낮잠을 자지 않는다.

1시간에서 2시간의 낮잠시간이 진수한테는

힐링시간이었는데,, 그 시간이 없어지니

스트레스이다.


체리의 낮잠시간은 진수의 자기 계발 시간이었다.


-체리야. 잠 오면 자도 돼..


체리의 반짝거리는 눈이

전혀 잠이 오는 기세가 아니다.

오히려 티라노사우르스를 들고 있는

진수의 눈이 반쯤 감겨 있다.


-하아~


진수는 육아휴직을 하는 동시에

9급 공무원 인강 수업을 등록했다.

당당히 공무원에 합격해서 지금 회사보다

좀 더 수월하게 일을 하고 싶었다.

행복회로를 돌리며 매일 4시 30분에 일어나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있었다.


4시 30분에서 7시까지

11시부터 12시 반까지

35년 만에 진수는 처음으로

공부가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책상에 앉아있어야 할 시간은

놀이매트에서 장난감을 손에 쥐고 있어야

할 시간으로 바뀌었다.


-체리야~ 아빠 허리 아파서,

조금 쉴게. 우리 핑크퐁 볼까?


진수는 TV에 핑크퐁을 틀어주고,

공무원 시험공부를 하려고,

스마트폰을 들고 식탁의자에 앉았다.


괜히 스마트폰을 들었을까?

자연스럽게 페이스북을 본다.

페이스북 와치를 위로 넘기면서

진수는 도파민의 유혹에 넘어갔다.


피드를 50m 정도 넘겼을까?

시간을 보니 1시간이 지나갔다.

중간중간에 체리가 관심 가질 만한

TV를 틀어주고 공무원 시험은 개뿔,


진수는 점점 흐트러지고 있었다.

열정은 사라졌고, 의심만 가득했다.


-이게 가능할까?

앞으로 5개월 정도 남았는데..


민진이 계속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간절함이 없을까?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빠져있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진수는 초조함과 자기반성에

빠진다.


-보통 일이 아니구나.


육아휴직을 하면서 다시 복귀할 생각은 없었다.

당당하게 이직을 했다며 이전 회사에 통보하는

상상을 하면서 슬쩍 미소를 짓기도 했다.

시청 혹은 세무서로 출근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나 이런 사람이야, 여기에만 목매지 않아'라는 것을

선배들, 동료들에게 우쭐거리고 싶었다.

육아휴직은 반을 써버렸고,

이제 쫓기는 신세가 돼버렸지만,

진수는 마음을 고쳐먹는 게 힘들었다.


낮잠을 자지 않는 체리에게

1시간 이상 TV를 보여주면서

죄책감을 느꼈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지 않는

자신을 보면서 두 번 느꼈다.


-띠리릭~ 띠릭~ 나 왔어~


민진이다.

체리는 밥을 먹는 둥 마는 둥

장난감을 식탁까지 들고 와서 진수와 씨름하는 사이

민진이 돌아왔다.


-민진아. 나 아무래도 공무원 시험 어렵겠어

너무 시간이 부족해.

-그렇지, 공무원 시험만 준비하는 사람도 어려운데

애 보면서 하기 힘들어.

-공무원 시험 허수가 많고 과목을 보니

어렵지 않아서 가능할 거라 생각했는데,

절대적인 시간이 부족하다. 우짜노.

-그냥 경험이라고 생각해.

-나 공인중개사 자격증 따려고.

-뭣!... 그건 시험이 언젠데?

-내년 10월, 시간도 있고, 1차, 2차로 되어있는데

2차까지 준비했다가 힘들면 1차까지만이라도.

-그래 한번 해봐.


진수는 두 번째 시도를 한다.

노트북을 켜니 9급 공무원 인강 국사가 켜져 있다.

과감하게 'X'를 누르고 네이버 초록창에

'공인중개사 자격증 인강'을 입력한다.


-그래, 공인중개사라도 따봐야지.


진수는 진짜 공인중개사를 하려는 건지,

육아휴직을 육아에만 전념하지 않고,

자기 계발했다는 사실을 직장동료들에게

보여주려고 하는 건지,,, 헷갈렸다.

진수에게는 주위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욕구,

진수가 무언가 되려고 하는 그 무언가는

없었고 단지 인정욕구만 꿈틀거렸다.


-그래 할 수 있어!!


9급 공무원 인강 120만 원,

공인중개서 인강 80만 원.

이렇게 육아휴직동안 200만 원을

거림 낌 없이 사용했다.


진수는 스스로 원하는 게 무엇인지

생각 안 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우울했다.


-왜 난 꿈이 없을까?


진수는 고등학교 때 했던 적성검사

결과가 떠올랐다.

'농부' 진수의 적성은 농부였다.

고등학교 때 친구들의 꿈을 보면서

'난 뭐가 되고 싶은 게 없는 걸까?'

그 생각은 15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다.


진수는 공부를 안 한 건 아니었다.

학교에서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공부를 할 수 있는 동력 또한

인정욕구였다. 키도 작고, 야위었고,

겁도 많고, 운동도 못했던 진수는

인정을 받기 위해선 공부밖에 없었다.

그 정도 성적을 유지한 것도

공부를 통해 무언가를 이루겠다는 마음보다.

선생님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친구로부터 인정받기 위해서였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쉬는 시간,

야자시간에 함께 놀면서,,

집에 도착하면 2~3시간씩

혼자 공부했다.


친구들과 좋은 관계를 가지는 게,

공부를 하는 것보다 중요했다.

좋은 그리고 착한 친구가 되기 위해서..


체리가 잠든 밤,

진수는 책상에서 옛날 기억을 떠올린다.


-왜 그렇게 다 놀고 밤에 혼자서 공부했을까?


친구들이

'넌 공부 많이 안 하는 것 같은데 성적은

잘 나오네..' 이 말을 듣는 게 행복했다.

이 말을 듣기 위해 모두가 잠든 방

눈을 비비며 공부했을까?

누구를 위해서? 무엇을 위해서?


막상 대학교에 들어가니

아무런 목표가 없었고,

남들이 취직을 하니

어떻게든 취직 해야겠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세상에 휩쓸려

진수는 대기업에 들어왔다.


'대기업'

세상에 휩쓸렸다고 생각했지만

재수도 하지 않았고,

졸업 전에 취직이 결정되어,

커다란 위기 없이 흘러왔다.


-실패가 무섭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부탁을 하지 못하는 것도,

거절을 두려워해서였고,

우울증 약을 먹으면서도

퇴사하지 못한 것도

실패자라는 딱지

실패를 무서워해서였다.


진수는 겁쟁이였다.

휴직이 끝나면 복귀할 수 있고,

돌아갈 곳이 없으니 간절함도 없었다.


진수는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새벽 1시, 뜸한 차도에 차들이 드문드문

빠르게 달린다.

저 멀리 큰 도로에서는 제법 많은 차들이 보인다.

반대편 아파트 불은 꺼져있고,

차 불빛만 왔다 갔다.


-하아~ 나 혼자만 넘쳐있고, 다들 쌩쌩 달리는

기분이네.


진수는 더 우울해질까 봐.

스탠드 불을 끄고, 핸드폰 후레시를 켠다.

안방문을 여니,,

체리와 민진이 침대 밑에 라텍스에서

자고 있고 진수는 침대에 눕는다.


윙~ 하는 가습기 소리가

백색소음처럼 진수의 고민을

먼 곳으로 보내버린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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