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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리치 May 07. 2023

번아웃이라는 죄책감.

면도하는 전업주부(맞벌이) 37

-띠리링~

-어.. 회사네..10시가 넘었는데..

네~ 김진수입니다.


진수의 굳은 표정과 달리 친절하게 전화를

받으며 방으로 들어간다. 민진은 TV를 보면서

귀는 방문 너머 진수의 전화 소리에 집중한다.

24시간 돌아가는 회사,

시각를 따지지 않고 걸려오는 전화에 진수는

지쳐있었다.


'쾅~'


큰 소리로 닫히는 방문 소리에 이어

진수의 볼멘소리가 연결된다.


-하아~ 나보고 어쩌라는 거야!!

-왜? 회사 들어가봐야 해?

-진짜 힘들다. 아! 진짜! 방법이 없어!

-후배한테 부탁하면 안돼?

-나한테 전화왔는데 어떻게 부탁해?

-그렇다고 매번 네가 가는 것도 아니잖아.

-아~ 어쩌라고!!


민진의 이야기가 오히려 진수에게는 역효과이다.

진수는 짜증을 내면서 익숙하게 청바지를 입는다.


-갔다올께..

-늦을 것 같아?

-모르겠어. 연락할께.

-어.. 운전 조심히 하고.


밤 10시 반,

주차공간이 부족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

이미 이중주차가 가득하다.

힘겹게 2대의 차를 밀어내고 진수의

차는 스르륵 주차장을 빠져나온다.


출근길과 달리 뻥 뚫린 회사가는길.

진수의 머릿속은 조금 전에 걸려온 전화를

생각하는 동안 가로등의 불빛은 뒤로뒤로 멀어져간다.


-잘못한게 없는데..확인까지 했는데..


진수는 지긋지긋하다.

언제까지 이렇게 전화를 받고 불려다녀야할지.

과장 2년차인 진수는 한심한 생각이 든다.

억울한 마음에 신호등 불빛이 흐려진다.


-씨.. 눈물이 다 나오네.


익숙한 교각을 지나간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저 밑에는 청둥오리가

있다.


-청둥오리는,, 자겠지.


순간 진수의 깊숙한 곳에서 울컥 설움이

올라왔다. 설움은 핸들을 잡고 있는 손바닥까지

올라오면서...


-없어져버리고 싶다. 여기서 핸들을 돌려버리면..


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교각은 이미 저 뒤로 가버렸다.

진수는 과장이 된 이후로 과장이라는 책임감과

대리의 일을 위임하지 못해 힘들어했다.

새로운 일은 차곡차곡 쌓이고 기존의 일은 후배에게

위임해야 하는데.. 후배의 눈치가 보여서 할 수 있으면

스스로 처리했다. 결국 어정쩡한 일처리가 독이 되어

진수에게 돌아왔다.


좋은 선배가 되고 싶었다. 좋은 후배가 되고 싶었다.

그러려고 하니 진수는 소진되고 있었다.

웃고 있는 사원증의 사진과 달리 진수의 표정은

점점 굳어져갔다. 한적한 게이트에 사원증을 갖다 대니

경쾌한 소리와 함께 게이트문이 열린다.


12시 반.

진수는 고개를 쭉 내민 거북목이 되어

모니터를 보면서 익숙하게 자판을 두드린다.

사무실에 진수만 있는 건 아니었다.

어디선가 자판기 두드리는 소리가 나고 있다.

진수는 동질감을 느끼면서 왼쪽 손으로

오른쪽 어깨를 주무른다.


- 프로그램 수정했구요. 지금 확인했는데 문제는 없을것 같아요.

다음 물량에서 문제 발생하면, 내일 아침에 재확인 필요할 것 같아요.

지금 물량은 이대로 진행해주세요. 감사합니다.


새벽 1시 반


- 조용하네.


누군지 모르지만 함께 있었던 사원은

퇴근했을까? 사무실은 냉장고만 ‘윙~’

자기 존재를 알리고 있다

사무실을 나오니, 가로등 불빛에 하루살이만

가득하다. 깨어있는 건 하루살이와 나..

진수는 95년 식 액센트 차문을 열고

시동을 건다. 둔탁한 시동이 걸리며,

멍하게 빠른 속도로 달려간다.


집은 까맣고 조용하다.

안방문을 조용히 열어보니 민진이 자고 있다.


'딱..크으으'


이대로 잠을 자려니 억울하다.

진수는 냉장고에서 캔맥주 하나를 꺼내고,

식탁위에 있는 김통을 자기쪽으로 끌어당긴다.


- 회사 다니기 너무 싫다..


새벽 2시가 넘어가는데 잠이 안온다.

진수는 자야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일 아침에도 그렇듯, 9시까지 출근해야하는

것도 알고 있다. 진수의 힘겨움과 상관없이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자리에 앉아있어야 함을 알고 있다.

맥주 한 캔에도 취기가 올라온다.


- 정말 싫다. 끊어 버리고 싶은데.


뭘 해야할지 아무리 생각해봐도,

떠오르는 건 딱히 없다.


-공무원 시험을 쳐볼까?


고리를 끊기 위해 또다른 조직을 위한 일을

하는 방법, 진수는 이것밖에 생각나지 않는다.

진수는 식탁에 툭 머리를 떨구자마자


-씨...발..


욕은 흐느낌으로 바뀌었고

식탁등은 무심하게 진수의 뒷통수를 비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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