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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리치 May 11. 2023

다 내 탓 같으니깐,

면도하는 전업주부(육아휴직) #9

- 엄마, 오늘 내려가려고..

- 오늘?

- 4시? 5시?

- 어,, 그래..미역국 끼리놓으면 되나?

- 어,, 이제 어른 거도 잘 먹는다.


힘들 때 친정집에 가듯,

진수는 민진이의 시댁,

엄마집으로 가기 위해 짐을 싼다.


민진이는 일주일 전에

자기만 한 캐리어를 질질 끌고 나갔다.

민진이 없는 2주를 버텼지만,

2개월은 무리라고 진수는 생각했다.

진수는 민진이의 커리어를 위해..

라고 말하고 착하고 헌신적인 남편임을

입증하기 위해 민진의 출장을 부추겼지만,

와이프가 오지 않는 독박육아의

현실은 냉혹했다.


결국,

진수는 엄마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기저귀, 물티슈, 체온계, 애니펜시럽, 책,

장난감, 베개, 샴푸, 칫솔, 치약..

체리의 짐이 거실을 가득 채운다.


‘와, 짐은 민진이 쌌었는데..‘


이제껏 체리의 짐은 민진이가 담당이었는데,

꼭 한 두 개를 빼먹었다.


‘앞으로 빠지더라도 뭐라 안 해야지..’


역시 사람은 옆에서 보는 거랑

직접 하는 거랑 온도차이가 있다는 것을

진수는 새삼 느꼈다.




체리는 차에서 꿈나라까지 10분 컷이다.

한 때 체리에게 카시트는 스쳐 지나가는

의자였다. 카시트만 앉히면 울면서

옆자리 민진에게 안겼다.

그러면 안 되는 줄 알면서 민진이가

안고 갈 때도 있었고,

잠이 들면 카시트에 앉혔다.

체리의 칭얼거림을 뒷자리에서

책을 읽혀주면서 민진이 달래줬는데.


- 오빠, 속이 너무 안 좋아

토할 것 같아.


멀미를 했다. 체리가 태어나고,

장거리에 있는 부모님 집에 갈 때는

민진과 운전 경쟁이 심하다.

운전이 이렇게 편한 일인 줄....




백미러로 보이는 체리는 조용하다.

출발 전에 최대한으로 눕혀놓은 카시트에

편안하게 입을 벌리고 자고 있다.

급하게 로켓으로 배송했던 휴대용 가습기에서

뽀얀 연기가 나오고 있다.


‘감기 걸리면 안 되는데..’


12월, 6시..

평일 저녁, 이미 어둠이 내려온 고속도로는

상쾌했다. 게다가 체리는 꿀잠 중이다.

진수는 체리 노래를 끄고

자신의 노래로 바꾼다.

김해까지는 3시간 반..

체리가 자는 동안 쉬지 않고 가야 한다.


뒤에서 인기척이 들린다.

백밀러로 슬쩍 보니 체리의 반짝거리는 눈이 보인다.


‘어? 깼네’

-체리야,, 언제 일어났어...

-이이이이이이이잉~~


진수는 네비를 슬쩍 보니 1시간 반정도

더 가야 한다.

익숙한 듯 옆에 있는 과자를 한 움큼 뒤로

넘긴다. 진수가 볼 수 없지만

조그맣고, 작은 손이 과자를 조심스레 들고 간다.

작고 귀여움 촉감을 남기고...

진수는 백밀러로 체리를 보고,

거울 속의 진수는 입이 헤벌쭉하다.




-웩웩~


진수는 패닉 직전이다.

아이패드로 영상을 보여준 게 화근이었다.

민진이도 없는데 체리는 뒷자리에서 홀로

먹은 것을 다 내어놓고 있다.

휴게소도 아직 멀었고,,,

체리도 문제지만 백밀러로 체리를 봤다가

앞을 보는 진수는 일단 어디든 세우려고 하는데,

마땅치 않다.


계속 토하던 체리는

자신도 놀랬는지 울기 시작한다.

진수는 백밀러로 체리를 달래주면서,

어쨌든 차는 김해와 가까워져 간다.

멀리서 볼 때는 희극인데,

가까이 보면 비극이라고 했던가..

진수와 체리가 타고 있는

소나타 안은 아수라장이지만,

고속도로는 단지 작은 불빛,,

모든 소음을 다 흡수한다.


- 체리야, 괜찮아 괜찮아.


졸음쉼터에서 진수는 물티슈로 정리 중이다.

체리도 동그란 눈을 뜨고,,, 가만히 있는다..

졸음쉼터 주위에는 어둠뿐이고,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차소리에 귀가 아프다.


혹여나 체리 감기 걸릴까 봐.

히터를 틀어놓고,,

트렁크에서 체리 여벌옷으로 갈아입히고,

바닥과 카시트를 물티슈로 닦는다.

노란 차등에 의존한 채,,


7시.

제법 고속도로도 차가 많아졌다.

이름도 모르는 작은 졸음쉼터에서,,

그렇게 한바탕 전쟁을 치르고 다시

진수는 액셀을 밟는다.


체리는 놀랐는지, 카시트에 푹 기대어

게슴츠레 눈을 뜨고 있다.

진수의 미간에 주름이 살짝 생긴다.


-체리야 1시간만 가면 돼..

핑크퐁 보면 또 토 나올지 모르니..

조금만 가보자.

-응~


동김해 톨게이트가 보인다.

체리는 자는 듯 안 자는 듯 가로등 불빛이

체리의 얼굴에 그림자를 남기고 지나간다.


- 다 왔어, 체리야 이제 10분..


체리는 뭐라 뭐라 말하고,

진수도 혼잣말을 하고 있다.


-엄마, 다 왔어, 지금 집 앞..

-어, 내려간다..


체리가 좋아하는 고모도 함께 나온다.

고모는 텐션 높은 목소리에 체리가 까르르

웃는다.


-차 밀리드나, 좀 늦었네..

-엄마 내려오다 체리 토했다. 가자마나 씻겨야 한데이.와 진짜 오늘........


진수는 할 이야기가 참 많다.

진수는 엄마와 그렇게 내려오는 사이에

일어난 이야기를 재잘거리며 허리가 불편한

엄마손을 잡고 함께 계단을 오른다.

현관 앞 센서등이 자기 할 일 다 했다는 듯이

툭~ 꺼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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