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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워리치 Oct 07. 2023

문 닫고 싶은 사람과 열고 싶은 사람

면도하는 전업주부(육아휴직) #18

"너 혼자 놀다자!"


진수는 안방 문을 닫는다. 타다닥~ 작은 발자국 소리가 들리자 진수는 '딸깍'하고 안방문을 잠근다.


"아빠, 아빠, 아빠아아!!"


진수는 좀 전까지 활짝 열려 있는 문을 본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좁아진 진수의 동공은 아직 문이 보이지 않고 체리의 울음만 또렸하다. 몇 번이고 손을 뻗어 안방 손잡이 옆에 작은 잠금장치를 만지려다가 그만둔다. 난 나쁜 아빠인가? 문 틈으로 들어오는 환한 빛 사이로 작은 그림자가 어른거린다.  더욱 커지는 체리의 목소리에 진수의 눈이 뜨거워진다. 어쩌란 말이냐? 힘든데,,,


'딸깍, 삐그덕'

"아빠, 아빠아아,,"


커진 동공 때문에 눈이 부셨지만 1미터도 안 되는 체리가 진수의 품 안으로 들어온다. 10초였을까? 진수는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이 끝난다. 미안해.. 화가 난 건지, 미안한 건지, 생각할 겨를 없이 뜨거워진 진수의 눈에서 투두두둑,


"체리야. 지금 시간이 몇 시야, 제발,,"


체리는 진수의 품 안에서 운다. 텅 빈 거실이라고 하기에는 체리의 장난감이 수북하다. 민진아, 나 어떡할지 모르겠어.. 진수는 스마트폰을 들어 올리니 새벽 1시 20분, 민진이 있는 곳은 새벽 2시겠네.


"체리야, 아빠가 화내서 미안해, 이제 자야지, 아빠가 재워줄게.."


진수의 왼쪽 어깨즈음 체리의 머리를 기대게 한다. 울어서 그런지, 체리는 고분고분하다. '딸깍' 불빛이 없어지니 그제야 커다란 거실창으로 가로등 불빛이 들어온다. 텅 빈 도로, 저 멀리 아파트 불빛, 진수는 커튼을 친다.


"쉬이이이, 쉬이이이"



"진수야, 가방 두고 구슬 들고 나온나. 농심슈퍼 앞에서 보재이~"


진수의 주머니는 불룩하다.  '문단속 잘하고!' 엄마의 말이 생각나서 농심슈퍼가 보이는 길에서 멈춘다. 우,, 씨.


"에이,, 잠겨있네!"

"하나, 둘, 셋, 넷, 다섯!!"


진수는 멀쩡한 대문 손잡이를 큰소리로 숫자를 세면서 5번 당긴다. 낮인데도 어두컴컴한 아파트 복도는 작은 아이가 계단을 두 칸씩 뛰어내려 가는 소리가 들렸다가 조용해진다.


"지금 몇 시고?"

"3시 20분"

"아, 씨 나 학원 가야 하는데?"

"무슨 학원?"

"주산"

"지금 편먹고 하고 있는데 니 빠지면 우짜노?"


딱 10분만 하고 가자. 진수는 영롱한 구슬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튕겨낸다. 구슬은 발뒤꿈치로 어설프게 파놓은 구멍으로 쓱 들어갔다가 다시 나온다.


"와, 오늘 진짜 안 들어가네.."


여긴 필드인가? 누군가 지나가면서 대화만 듣는다면 골프장이라 생각하겠지만, 현실은 온몸에 흙투성이인 꼬마 남자아이들이 흙바닥에 엎드려있다.


"니 학원 가야 한다고 안 했나?"

"지금 몇 시고?"

"4시 반인데?"

"아,, 우짜지?"


마루에 있는 괘종시계가 7번의 종을 친다. 댕댕 거리는 소리, 이어진 복도에서 익숙한 계단 올라오는 소리가 들린다.


'딩동~'

"엄마가?"

"문 열어라."

"학원은 잘 갔다 왔나?"

"어? 어,,,,"


엄마는 들어오자마자 냉장고로 가서 무언가를 넣은 다음에 가스레인지 불을 킨다. 아직 6월, 덥지 않은 날씨인데도 손에 땀이 난다. 말할까? 진수의 눈은 티비로 향해있으나 머릿속은 온통 학원생각이다.


"밥묵자"


엄마와 누나, 진수는 밥을 먹는다. 아무 일이 안 일어났다. 엄마는 상을 가지고 부엌으로 나가시고 진수 누나와 진수는 누워서 티비를 본다.


"진수야"

"어,, 엄마"

"나와봐라"

"왜?"

"빨리 안 나오나!"

"니 오늘 학원 갔나?"

"어? 어,,,"

"문디자슥아 니 왜 거짓말 하노? 이노무자슥이, 좀 전에 선생님한테 전화 왔다. 내가 못산다. 왜그라노?"

"...."

"남자새끼가 거짓말만 픽픽 늘어가꼬...뭐했노?"

"..."

"학원비가 얼만데? 그라라고 학원 보내나? 꼴도 보기 싫다. 나가라!"

"엄마.. 미안,, 흑,, 죄송합니다."

"나가!!"


진수는 어정쩡하게 신발장에서 머뭇거린다. 유난히 키가 작았던 진수는 155cm 키의 엄마가 유난히 커 보였다.


"빨리 안 나가나?"

"엄마, 다시는 안 그럴게. 죄송합니다.."


그때 진수는 보았다. 꽉 다문 엄마의 입, 설거지 물이 마르지 않는 축축한 손이 진수의 어깨를 돌리고 앞으로 확 밀어재낀다. 투둑~ 진수의 몸에 둔탁한 무언가가 부딪히면서 발 앞으로 떨어진다. 신발이다.


'쾅! 철커덕'


1976년식 시영아파트의 복도는 어둡고, 싸늘했다. 밥 짓는 냄새가 여과되지 않고 코 끝에 머물고 있었는데 진수는 잠옷차림에 맨발, 그 앞에는 신발이 떨어져 있다.


"엄마, 문 열어주세요. 잘못했다."


진수는 문을 여러 차례 당겨봤지만 철제 손잡이가 늘어났다가 제자리로 갈 뿐이었다. 귀를 대보았지만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어둠 속에서 누가 나올 것 같았다. 진수는 신발을 구겨 신고 컴컴한 복도를 뛰어내려 간다.


지금 몇 시지? 6월 중순, 잠옷바람이지만 상쾌한 날씨다. 8시? 진수는 어둑어둑해진 하늘을 보면서 혼잣말을 한다. 어떡하지?


진수는 신발을 고쳐 신고 걷는다. 그냥 걷는다. 자전거라도 있었으면,,, 학원 빼먹은 죄책감? 이런 건 이제 사라졌다. 오히려 찜찜한 게 없어졌다. 더 큰 시련이 기다리고 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몰라서 진수는 정처 없이 걷는다.


진수가 유일하게 아는 길, 그리고 가장 멀리까지 갈 수 있는 곳은 '서면'이다. 엄마랑 버스 타고 가방 사러 간 기억이 난다. 큰길로 내려와서 오른쪽으로 도로를 따라가면 된다. '서면'을 넘어서면 로터리가 나오고 로터리부터는 다른 세상, 진수가 모르는 세상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굴다리가 나오고 그 밑에 잡상인들이 보인다. 굴다리를 빠져나오니 네온사인이 찡~하는 소리와 함께 요란하게 깜박거린다. '서면'이다. 진수는 서성거린다. 이제 어떡하지?


리어카처럼 생긴 포장마차에 노란 불빛, 그 아래 빨간 떡볶이와 노란 어묵, 그리고 까만 기름통 주위로 핫도그들이 줄지어 있다. 냄새에 이끌려 그 앞에서 멍하니 쳐다보다, 발길을 돌린다. 이걸 가출이라고 하나? 진수는 돈이 없다. 잠옷에 온동화를 신은 유난히 또래보다 몸집 작은 국민학교 4학년이었다.


뭔가 튀어나올 것 같은 컴컴한 우리 아파트 앞 화단을 진수는 보고 있다. 진수는 눈을 질끈 감고 뛰기 시작한다. 컴컴한 화단 앞에 노란색 백열등이 켜져 있는 아파트 출입구에서 잠깐 멈췄다가 이층으로 올라간다. 익숙한 대문, 열쇠가 없다. 저기 갈색 스위치를 누르면 엄마가 문을 열어줄 것 같지만 다시 1층으로 내려와 전속력으로 화단을 지나친다.


"진수 맞제??"


적막한 화단 근처에서 낯익은 목소리, 진수는 뒤돌아본다. 엄마의 실루엣! 진수는 다시 전속력으로 뛰기 시작한다.


"어디 도망가노?"


얼마 되지 않아 진수는 엄마 손에 옷을 잡힌다.


"엄마.. 흐윽, 흑,,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뭐라고? 또 거짓말했다고? 가출? 저 새끼가 미친나? 내 있었으면 타작을 했을 건데.."


그 일이 있은 뒤 3일 뒤 진수아빠가 출장에서 돌아왔다. 진수는 눈을 질끈 감는다.


"마, 됐다."


진수아빠는 진수를 노려보더니, 다시 9시 뉴스로 눈을 돌린다. 진수는 아무 말 없이 누나방으로 들어간다. 제발 이대로 끝났으면,, 진수는 책상에 앉아 동아전과를 펼친다. 진수는 누가 사용했던 흔적이 있는 전과 속에 얼굴을 묻는다. 종이냄새, 혹여나 소리가 새어나갈까 봐 입을 꽉 다문채, 전과 안으로 눈물을 숨긴다.


"아고. 허리야"


진수는 마지막 남은 장난감을 서랍에 넣는다. 40인치 LCD TV에서 나지막하게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아빠?"


체리가 눈을 비비며 거실로 뛰어온다. 진수는 체리를 번쩍 안는다. 체리는 까득까득 웃는다.


"아빠가 책 읽어줄게.."

"이거, 이거, 뻐끔"


체리가 생물도감 속 손가락으로 복어를 가리킨다.


'쿠쿠가 맛있는 밥을 준비했습니다.'

"체리야, 아빠 밥 준비할게."


체리를 품에서 바닥으로 내려놓자 작은 손가락으로 생물도감을 넘긴다.


To be contin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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