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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Feb 03. 2024

#01 24년 9월에 죽는다면

넷플릭스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캐럴은 아침에 일어나 눈을 뜬다. 그리고 저 멀리 떠있는 엄청 큰 행성(?) 을 본다. 한숨을 푹 쉰다. 그리고 나서 몇몇 장면이 지난 다음 화면엔 종말까지 남은, 7개월 하고 13일이라는 글자가 뜬다. 문득, 7개월 후는 며칠인가 하고 생각했다. 지금이 2월이니 9월, 그러니까 만약 내가 캐럴이라면 24년 9월엔 온 지구가 멸망한다는거다. 상상만 해도 심란했다. 만약 캐럴이 살고 있는 세상에 들어간다면, 나는 정말 미쳐 돌아버렸을 것만 같았다.


캐럴과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하루가 멀다하고 파티를 하고 있는 장면들이 지나간다. 그 무리를 지나 부모님의 집에 캐럴이 방문한다. 그녀의 부모님은 꽤나 노쇠한데, 어떤 이유에선지 속옷 한오라기 걸치지 않고 있다. 그 집엔 둘만 살고 있지 않다. 아버지의 거동을 돕기 위해 고용된 것 처럼 보이는 돌보미, 그러나 그도 ‘돌봄’ 역할만 하고 있진 않다. 셋의 관계는 딱 한장면으로,  딥키스를 짧게 하는 모습이 보여진다. 아, 이것 조차 참 ‘종말을 앞둔 사람들’ 같단 생각을 했다. 그러고선 다시 나의 가치관이자 고정관념을 발견한다. ‘그 장면이 익숙하지 않은 나’ 와 ‘이미 익숙해져있는 캐럴’의 간극을 발견하고선, 난 정말로 종말이나 죽음, 어떤 끝에 아무런 준비가 되어있지 않다는 걸 인식했다.


주인공 캐럴은 깨끗하게 씻고, 옷을 정갈하게 입으며, 곧은자세로 잠을 자고, 빨래방에 방문해 옷을 세탁하고 각맞춰서 접는 방식으로 종말을 대처하고 있다. 다 망해버린 빨래방에서 빨래를 개고 있는 모습도 보여진다. 그런 그녀에게 한 아이가 다가와 그녀에게 질문을 한다.


‘여기에서 뭘 하세요?’

그 질문을 세번이나 반복한다. 캐럴은 그녀의 현실에서 그 아이를 내쫓았지만 머릿속에선 실패했다. 잔상으로 남은 그 모습은 꿈에서도 남아있었다.


1화 속 캐럴 주변엔 캐럴과 닮은 사람들이 없다. 가장 가까운 부모님은 옷을 벗고 생활을 하고, 친구는 티베트에 다녀와 명상 수련을 한 이야기만 줄곧 내뱉는다. 대화가 아닌 웅변 수준으로다가, 휙 캐럴에게 다가와선 자기 이야기만 잔뜩 하곤 사라져버린다. 파티를 하고 있는 사람들과 떨어져 잠깐 공원에 앉아있을 때 만났던 사람과는 잠깐 공통점을 찾은 듯한 느낌도 받았지만, 이내 그 공통점이 중요한게 아니라는 걸 느낀 캐럴은 다시 멀어지기로 결심한다.


다시 또 혼자.

캐럴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7개월과 열 며칠을 그렇게 보내야 했다. 어느 누구에게도 어떤 감정이나 공감을 받을 수 없는 시간을 가득 보내면서 말이다. 그러다 누군가를 만난다. 정확하게는 바쁘게 어딘가로 향하는 그녀를 발견한다. 그녀를 따라 가니 한 회사가 보였다. 회사 안으로 들어간 사람을 찾기 위해 층마다 엘레베이터 너머 바깥을 보던 그녀는 ‘가장 자기와 닮아있는’ 사람들을 겨우 마주한다. Accounting 이라고 쓰인 부서였다. 종말이 온다는 사실을 미처 인지하지 못한 것 처럼, 그들은 사무실에 가장 알맞는 옷을 입고, 정해진 시간에 맞게 출퇴근을 하고, 자기의 일에 몰입한다. 캐럴은 그들 사이에서 기웃거리다 수습 기회를 얻게 된다.

종말을 앞둔 사람도 어떤 ‘일’을 하고 싶을거라는게 , 충격적이었다. 소속감을 느끼고 싶어 그들 사이로 들어간 것 처럼 보였다. 그나마 자기가 지금까지 살면서 가장 익숙한 사람들의 모임이 ‘회사’ 속이라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유로움에 익숙하기 보다, 주어진 일과 정해진 관계에 익숙한 사람이 캐럴일거란 생각도 했다. 게다가 그녀 목소리는 꽤 무미건조했다. 약간은 우울에 빠진듯 한 느낌도 들었다. 삶의 모든 것을 내려놓은 목소리, ‘종말이 좋진 않지만 어쩌겠어’ 라고 할만한 목소리를 갖고 있으니, 저런 선택을 하는 것도 당연할거라고 생각했다.


캐럴은 그 자리에서 꽤 열심히 일을 한다. 토너가 떨어졌다는 걸 발견하고선 토너를 구하기 위해 가게들을 열심히 들르기도 한다. 그게 뭐라고. 그 토너가 뭐라고 그녀를 그렇게 움직이게 할까. 아마 뒷부분에 더 나올지도 모른다. 혹시 안나오더라도 나는 그 몰입이 궁금하다. 살면서 단 한번도 중요하다 생각지 못했던게 갑자기 중요해지는 순간도 궁금해진다. 어떤 것일까. 미련함일까, 집중력일까. 도파민일까 우매함일까.


캐럴이 종말에 대처하는 자세는 약 10화에 걸쳐서 소개된다. 한 화 한 화를 허투루 보고 싶지가 않았다. 그렇다고 꼼꼼히 보는 건 아니지만, 내 마음속에 잔상처럼 남기고 싶었다. 그 다음 화를 보며 이전화에 대한 감상을 ‘덮어쓰기'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괜히 캐럴에 대한 회고를 내 손으로 하려 한다. 


나는 앞으로 만약 7개월 후에 죽을 운명이라면 어떤 행동을 할까?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 그 행동이 ‘쓸모없는 것일까봐' 두렵다. 그 쓸모를 정하는 사람도, 세상도, 남은 것들도 아무것도 없지만 말이다. 에이, 이러다간 ‘종말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는 1화에서 끝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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