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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Feb 05. 2024

#02 프린트 토너가 아니라 "존재이유"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2화 <기분 전환>

하루에 한 편만 보기로 했는데, 벌써 2화째다.


캐럴은 들어간 회사에서 수습을 통과하고 정직원이 된다. 정직원에게 회사가 주는 여러 복지 하나는 그녀에게 할당된 차량이다. 또 다른 복지는 ‘권총’이었다. 캐럴은 놀라, 재빨리 권총이 담겨있던 서랍을 닫아버리고는 심호흡을 한번 한다. 그 장면이 잠깐 지나가는 순간에도, 나는 캐럴의 회사가 야멸차다고 생각했다.  ‘나 또는 타인을 죽일 수 있는 도구’를 준 회사의 의도가 너무 강렬하다 못해 폭력적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이게 종말을 맞이한 회사의 태도인가? 권총이 가진 의미는 지금의 해석보다 훨씬 다양하지겠만, 캐럴의 삶을 들여다보고 있는 내겐, ‘너무 고통스러우면 스스로 먼저 끝내도 돼. 7개월이나 1개월이나 큰 차이 있겠어?’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씁쓸했다.


그 장면 이후, 2화에서는 캐럴이 회사가 필요로 하는 물건을 구하는 이야기가 흘러나온다. 소속이 필요해 들어간 회사였지만, 회사 구성원들은 그녀를 딱히 필요하다 느끼지 않았다. 아니 서로가 서로에 대한 니즈가 아예 보이지 않는 공간이었다. 잠깐 바깥으로 나가는 길에 ‘간식을 사 올까요?’라고 물어보는 그녀에 말에 대꾸도 하나 없는 곳일 뿐이었다. 캐럴은 자기의 ‘존재 이유’를 스스로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내가 이 공간에 있어야 하는 이유, 그 이유를 찾던 그녀는 결국 프린터에서 그 답을 얻는다.


토너 부족.

토너를 구해온다면 어떨까. 토너를 구해올 수 있는 사람, 그녀는 자기가 그러고 싶었다. 그래서 무너진 office depot 들을 찾아다니며 토너를 구하려 했다. 모든 탐색은 실패했다. 그녀에게 외로움을 선물했던 친구 집까지 방문한 그녀는, 그곳에서 회사에 꼭 맞는 토너를 발견한다. 그걸 훔치기로 결심한 캐럴은, 만류하는 집주인을 향해 권총도 겨눈다. 고작 토너, 가 아니었다. ‘자기의 존재이유’를 왼손에 잡은 그녀는, 오른손으로 ‘타인의 생명을 협박’ 했다. 그만큼 간절했을 것이다. 내가 왜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증명하지 못하는 상태는 너무나 괴롭기 때문이다.


집주인을 포함한 주변인들은  모두 놀라 얼음이 되었다. 그녀는 토너를 ‘구해’ 회사로 되돌 왔고 결국 정상적으로 프린터 속 토너와 교체했다. 자기만의 터(=회사)에서 필요로 하는 물건을 들고 되돌아오는 장면은, 서부영화와도 닮아있었다. 주인공이 전리품을 들고 오는 장면이 크로스오버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은 캐럴의 행복을 가만 두지 않는다. 그녀의 존재이유를 품은 토너는 사실 46층에 아주 많았다. 회사는 개인의 ‘존재이유’를 쌓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회사에서 내가 있어야 하는 이유를 정확하게 알려주지 않는 것, 그걸 스스로 발견한 사람들은 결국 퇴사를 하거나 일에 더 몰입할 수 있는 것, 그런 회사의 구조는 종말 가능성이 0%인 24년 대한민국의 현실과도 비슷했다. 아니 글로벌 회사들의 공통점일 수도 있다.


드라마를 다 보고 나니 영화 속 ‘조금 더 생각해 볼 내용’ 들이 지나간다. 그중 하나가 이것이다. ‘7개월 후 사망’이라는 죽음을 앞둔 사람들도 지금 당장 죽을 수 있는 권총 앞에 꼼짝을 못 한다는 것, 그건 왜 그렇게 그려두었을까. 답을 찾지 못한 채로 묘하게, 이번 화 관람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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