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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Feb 07. 2024

#06 그녀가 종말을 앞두고 대처하는 방법은

종말에 대처하는 캐럴의 자세, 6화 <크리스마스>

24년 9월에 죽는다고 생각하면, 올해 추석즈음에 아마 우리는 모두 멸종될 것이다. 16일부터 추석 연휴가 시작되는데, 날짜 계산을 대애충 때려보면 아마 그즈음엔 이미 지구 공기가 안 좋아질 것이다. 아마 9월 초부터 체력이 없는 사람들은 죽었을지도 모른다. 그땐 더 광란과 광기가 가득할 것이다.


당연히 크리스마스는, 없다!

그런 생각을 캐럴 세상 사람들도 비슷하게 한 게 분명하다. 멸종을 6개월 정도 남겨둔 시점, 각자가 좋아하는 이벤트를 (시즌에 상관없이) 하기로 결정한 듯 보였다. 도나의 집에서는 크리스마스를, 캐럴네 동네에서는 핼러윈 파티를 하고 있었다. 생일 주간인 루이스는 자기만의 생일 파티를 했다.


명절이라는 게, 참 사람에게 많은 생각을 가져다준다. 학생 때나 어릴 적, ‘누군가를 따라 명절 행사에 참석’ 해야 할 때 갖고 있던 생각과는 참 다르다. 특히 내가 보내온 시간의 밀도와 타인의 것 간에 차이가 보이면 보일수록 그렇다. 드라마 속 도나가 그랬다. 어릴 적에 아이를 5명이나 낳고, 그들을 부양하기 위해 정말 다양한 일을 했다. 네일숍부터 마트까지, 피곤에 항상 절어있었던 그녀는 가장의 역할을 열심히 수행한 대신 아이들과 추억을 쌓을 시기를 놓쳐버렸다. 그녀의 아이들이 다 성장해서, 도나의 손자손녀들까지 크리스마스 파티에 올 때 즘 되어서야 도나는 자기의 시간과 자식들의 시간 사이에 많은 간극이 있음을 깨닫는다. 자식들이 추억하던 ‘어린 시절’ 속 에피소드를 모를수록 계속해서 그녀의 표정은 슬픔 속으로 들어갔다.


그게 모든 부모의 딜레마 같다. 최근 회식을 하며 알게 된 옆 팀 팀장님의 맞벌이, 자녀 양육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한 번씩 고민하게 되었던 주제. 돈을 벌어 아이를 기를 것이냐, 시간을 보태 아이를 기를 것이냐 하는 그 선택의 기로에 놓일 수밖에 없는 현실은 한국뿐 아니라 미국도, 그리고 캐럴네 세상에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각자가 선택에 따라 얻는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소화해야 하는 건 당연하지만, 소화하는 건 누구에게나 쉽지 않다. 도나도 아마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장성한 자식들은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다. 도나 17세, 첫 아이를 가지고 나서 다섯이 될 때까지 겨우 남겨둔 그 사진을 찾아 사진첩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도나에게 선물했다. 일을 잔뜩 하고 와선 (누가 봐도 엄마인 얼굴로) 산타 분장을 하고, 쓰레기 봉지에 장난감을 가득 채워와 아이들에게 선물해 주고 기절했다는 그 이야기를, 자식들은 참 사랑스럽게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자식들은 각자의 삶을 살며 자신과 닮은 아이를 낳아 기르며,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낸다.


종말을 앞두고서, 캐럴보다 더 먼저 ‘회사에 들어가’ 회계업무를 보고 있던 건 도나였다. 아주 착실하게, 자식들을 더 이상 부양하지 않아도 되는 시점에도 그녀는 일을 하고 있었다. 게다가 캐럴에게 계속적으로 ‘이건 그냥 일이야. 일을 하면 돼’ 라며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보이고 있던 그녀였다. 그녀가 종말을 앞두고 대처하는 방법은, ‘루틴을 유지하기’ 일 것이다. 일상을 유지하며 그 속에서 발생하는 작은 변주들을 발견하는 게 그녀의 몫은 아닐까. 그녀가 캐럴을 발견하고 토너 위치를 먼저 알려준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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