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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크게슬기롭다 Nov 12. 2024

할머니가 갖고 있던 비트코인

그 옛날, 할머니가 말렸지만 할아버지는 결코 샀던 그것

아버지가 해준 이야기다.


최근 트럼프와 미국 정세를 확인 한 할머니가 아버지를 집으로 소환했다. 트럼프의 결과에 따라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비트코인 소식을 들은 것이다. 할머니가 '나도 비트코인이 있다'며 작은 방으로 아버지를 불렀다. 저기 저 멀리 오른쪽 책장 속 안쪽 박스가 두 개 있을 것이다, 그 걸 꺼내오너라, 라고 할머니가 말했다. 아빠는 할머니의 말을 듣고 박스 두 개를 가져왔다.


첫 번째 박스를 열었다. 다소 쭈그러든 한복이 있었다. 한번도 입지 않은 듯한, 아주 오래 전부터 준비해둔 한복이었다. 할머니는 쭈그러든 옷을 보고선 살짝 짜증을 냈다. '아니 이걸 넓게 펴서 넣어두라니까 왜!' 라면서 중얼댔다. '옷은 넓게 펼쳐둬도 그렇게 쭈그러들어' 하고 아버지가 말했다. 하지만 할머니는 답답해했다. 아버지는 결국 다시 한복을 쭉 펴서 넓게 넓게 접었다. 나중에서 한 이야기지만 그걸 본 아버지는 '아마 당신이 나중에 수의로 입으려' 준비해둔 것이겠거니 했단다.


그리고 옆에 둔 두 번째 박스를 열었다고 했다. 할머니가 말한 '비트코인' 이 들어있는 박스였다. 이야기를 듣는 내내 내 마음이 다 조급해졌다. 혹시 그 박스엔 6개의 영어단어가 쓰여져있는 건 아닐까. 어떤 USB가 있으면 어쩌지, 싶었다. 세상에 궁금한게 많던 할아버지는 항상 새로운 것을 탐구하고 싶어했다. 게다가 그런 할아버지가 사려고 했으나 '할머니가 말렸다는' 배경 스토리를 들으니 정말로 [비트코인] 의 ㅂ이라도 있는건 아닐까 싶었다. 정말 그러면 어쩌지, 사카이 마코토의 미래를 본 최초의 한국인이었으면 어쩌지. 나이는 있었지만 꽤 미래를 볼 수 있던 분이었으면 어쩌지. 할아버지가 그 이야기를 말해주고 싶었지만 차마 타이밍을 놓친거면 어쩌지? 하는 별의 별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본 건 '할머니의 비트코인' 이었다. 1988년 올림픽 주화였다. 쓸데 없다며 사지 말라고 했던 그 올림픽 주화를 할아버지가 기어코 산 것이었다. 그리고 나선 그냥 집에 계속 둔 것이었다. 아버지는 한참 웃고, 맞다며 할머니의 올림픽 코인을 그렇게 꺼내 할머니의 옷 옆에 다시 두었다. 지금까지 꽁꽁 숨겨두고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말한다며 꺼냈던 할머니도, 그녀의 비트코인을 그대로 다시 남겨둔 아버지가 한 편의 드라마같은 순간이었다. 그들의 모습이, 오늘의 이야기가 너무 기억하고 싶어 브런치를 열어 오늘의 글을 남긴다.



p.s. 88년도 기념주화의 시가를 찾아본 아버지. 그때 1만원짜리가 지금 약 6만원 정도가 되었다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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