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7. 어휘력과 글쓰기 테크닉이 부족해요
은유의 글쓰기 상담소 17. 어휘력과 글쓰기 테크닉이 부족해요. 그래도 글을 쓸 수 있나요?
p. 117
좋은 남자친구에서 좋은 애인으로, 좋은 애인에서 좋은 사람으로. 단어 하나만 바꿔도 이성애 중심의 관습적 사고가 깨집니다. 인간은 혼자 살 수 없고 우리에겐 좋은 남편 혹은 아내가 아니라 반려 존재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로 확장했죠. 저 문장에는 '동반자'라는 표현을 씀으로써 해당하는 존재가 사람, 동물 등으로 훨씬 다양해집니다. 여러 존재를 품는다는 점에서 다정하고 넉넉한 좋은 글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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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휘력과 글쓰기 테크닉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정말 다양한 단어를 사용한다면 어떤 글이 펼쳐질까? 할 수 있는 한 가장 모순적인 형태로 만들어나가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요새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말문이 턱 막힌다. 머릿속에 떠올라야 하는 단어가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그, 뭐, 예전에 그때... 등등 온갖 중의적인 키워드를 꺼내보지만 뭐 하나도 힌트가 될 만한 건 나오지 않는다. 어떨 때는 모음이, 또 언제는 자음이 혀 끝에 맴돈다. 'ㄱㄴㄷ' 였던 것 같은데, 라든가 'ㅏㅣㅗ' 였던 건 아니었나 하고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고민의 씨앗을 던진다. 하지만 그건 다시 고민의 새싹이 된다. 대화하는 사람들의 시간을 순간적으로 뺏어가는, 마법의 순간이다. 사실 이 모든 건 내 어휘력과 글쓰기 능력이 떨어지는 데 있다. 어느 순간부터 '모르는 어휘'가 나오는 글들을 읽지 않았다. 쉬운 글이 좋은 글이라는 흐름도 한몫했다. 영상 콘텐츠의 범람이 내게 좋은 핑계를 가져다주었다. 세상은 넓고 사람들은 관심 있는 것 외엔 아무것도 모른다는 격언 비슷 한 것들이 변명거리가 되었다. 단어를 사전으로 찾지 않았던 게 벌써 5년은 넘은 셈이다. 한자가 나오는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최근 들어서다. 그전에는 매일 똑같은 단어를 쓰는 사람들과 다양한 주제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그래서 짧은 어휘력에 대해 문제를 느끼지 못했다. 그러다 이렇게 한 번씩, 적절한 순간에 까먹어버리는 단어들을 발견할 때마다 크게 놀란다.
글쓰기 테크닉은 더 하다. 형식에 맞춰 글을 쓸 일이 있어야 했다. 하지만 뉴스 기자도, 보고서를 작성할 일도 논문을 쓸 일도 많지 않았다. 나의 이야기라고 할 만한 문장들의 배열을 내 마음대로 끊고 이어 붙이는 게 전부였다. 그리고 나선 내 멋대로 '에세이'라고 붙였다. 가독성이 좋은 글에 대한 이야기도 한때 많이 찾아보았지만 흥미도 떨어졌다. 점차 글을 읽는 플랫폼의 형태도 다양해지고, 모바일 친화적인 글을 잘 못쓸 거란 생각만 했다. 전자책도 보았지만 그 역시 '편집자의 힘'이라고 느꼈다. 늘려야 할 일도, 개발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던 내겐 어떤 기술력도 없다.
은유 작가에게 저 질문을 한 존재는 스스로가 '어휘력이 낮다, 글쓰기 테크닉이 없다'라고 평가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 기준점이 있다는 게 얼마나 대단한 것인가. 내겐 아무것도 없다. 무척추동물처럼 마구잡이로 생겨먹은 게 내 글인 것이다. 저 질문자의 글은 생선처럼 생기지 않았을까? 다만 포동포동한 고등어가 아니라 '둘리'에 나오는 가시고기' 정도의 살을 가지고 있을 테다. 그러니 어휘력과 테크닉을 이야기하지. 뼈대가 있는 사람이 살집을 찾기는 나의 그것보다 훨씬 쉬울 것이다. 뼈대가 거의 보이지 않는 오징어 같은 나의 글에 뼈대를 만들기란, 쉽지 않을 것이다. 내 글에 초고추장 같은 요소가 있다면 어떨까. 나름의 감칠맛이 나지 않을까? 그게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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