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대하여
사람이 어질지 못하다면 음악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인이불인 여악하 人而不仁 如樂何) - 공자
가수 임영웅의 공연에 참여한 한 노인이 소녀처럼 말했다.
“제 얼굴을 보세요. 너무 행복해요. 80이 다 됐지만, 청춘처럼 삽니다. 임영웅 덕분에요.”
음악 공연은 참여한 사람들을 하나로 어우러지게 한다. 우리 안의 본성(本性)이 깨어나 만물제동(萬物齊同)의 세상이 되는 것이다.
모래알처럼 흩어져 살아가는 현대인은 얼마나 외로운가! 모래알끼리 서로 쉼 없이 키 재기를 해야 한다.
서로 다가가면 생채기가 난다. 그래서 함께 있어도 외롭다. 그런데, 어느 날 임영웅이라는 메시아가 나타났다.
그의 공연은 다채로운 무대로 채워졌다. 발라드, 힙합, 브레이크댄스… 모두 함께 즐기는 축제였다.
그가 “주변 분들과 인사 나누겠습니다”라고 말하자, 4만 명의 관객이 동시에 객석을 둘러보며 인사했다.
그는 틈틈이 관객들의 건강을 챙겼다. “춥지 않으세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진행요원에게 말해주세요.”, “어깨도 서로 주물러줍시다.”
그런데 음악이 이렇게 선(善)하지만은 않다. 히틀러는 음악을 통해 독일 민족을 하나로 뭉치게 했다.
연쇄 살인범은 음악을 들으며 살인을 한다. 그래서 노자는 음악을 경계했다. “다섯 가지 음은 사람의 귀를 멀게 된다.”
그럼 노자는 어떤 사람을 원했을까? 오음(五音)만이 음악이 아닌, 천지자연의 모든 음이 음악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을까?
천지자연의 오묘한 소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은 선할 것 같다. 자신의 욕심보다 더 큰마음을 항상 느끼며 살아갈 테니까.
자연 앞에서 경외감을 느끼는 사람이 어찌 악할 수 있겠는가? 이런 사람은 음악을 해도 악해지지 않을 것이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의 사회, 많은 음악 공연들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음악 하나도 마음껏 즐길 수 없는 세상이다.
공자는 인(仁)을 최고의 가치로 여겼다. 그는 인이 뭐냐는 제자의 질문에 “남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의 본성은 남을 자신과 하나로 여긴다. 그래서 본성이 깨어난 사람은 남을 사랑한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자아(自我)’가 있다. 자아는 자신에 대한 의식이라 자신부터 챙기려 한다.
우리는 자아를 넘어서야 한다. 자아를 넘어 본성의 소리를 들으며 살아갈 때, 비로소 음악은 우리 모두를 아름답게 하나로 어우러지게 할 것이다.
세상에 늘 음악 소리만 들린다면
우리 마음은
끝없이 이어지는 노래 사이사이
달콤한 침묵이 흐르기를 갈망할 겁니다
- 헨리 벤 다이크, <하늘에 온통 햇빛만 가득하다면> 부분
침묵은 언어와 무언(無言) 사이에 있다. 언어가 되지 못한 삼라만상을 언뜻 드러낸다.
따라서 우리는 침묵의 세계에 자주 들어가야 한다. 언어와 음악에 중독되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