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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다정 Dec 14. 2022

인조잔디 출근길에서

삼성동 코엑스 앞에 몇 주 전까지 인조 잔디가 깔린 길이 있었다. 나는 회사가 근처라 이 길을 꽤 자주 지나다녔는데, 이쪽 길을 지날 때는 옆에 콘크리트 길이 있어도 꼭 잔디 위로 걷곤 했다.


일단 인조잔디 길은 폭신폭신했다. 레드카펫은 아니지만 연두카펫 정도? 그 카펫 위의 내 발이 편안하니 기분이 꼭 대접받는 것 같은 기분도 들었다. 실제 잔디는 아니지만 도시 한복판 빌딩 밀집지역 한복판에서 느끼는 자연의 편안함이 느껴지는 색깔도 잔디길을 택했던 이유다.


동시에 가짜 잔디라는 것을 자각할 때마다 악동뮤지션의 ‘인공잔디’라는 노래를 흥얼거리곤 한다. 이 노래가 나왔을 때만 해도 따라 부르기 좋은 흥겨운 노래라고만 생각했는데 가사가 자꾸 생각난다. “시들 걱정 필요하지 않”고 “색을 잃지 않”아서 좋지만, 숨 쉴 수 없어서 숨을 쉴 수 있는 진짜 잔디가 되고 싶은 인공잔디의 이야기. 회사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아 자신감이 없어질 때, 내 못난 모습을 남들과 비교하게 될 때, 나다움이 뭔지 혼란스러울 때 내가 인공잔디인지 진짜 잔디인지 가늠해 본다.


인조잔디 카펫을 생각하면 대학 때 대운동장이 생각났다. 대학 초반에 나는 동기들과 공강 시간에 운동장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쪽에서는 풋살을 하거나, 트랙 위를 걷거나 달리는 학생들이 있었다. 그럴 때 잔디에 아무렇게나 앉거나 누워서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거나 수다를 떨던 그때는 시간이 느리게 가는 것 같았다.


지금은 시간이 바람 부는 날의 구름처럼 흐르는 것 같다. 지나는 것이 눈에 보이는데 잠시 한눈팔고 나면 이미 지나고 없다. 가는 시간이 아쉽지만 그만큼 내가 원하는 대로 시간을 채워야겠다고 다짐한다. 지나온 시간이 오늘을 만들었듯, 오늘을 돌아볼 때 기분 좋은 기억이 떠오를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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