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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언 Mar 21. 2022

내 베트남어는 왜 안 통할까?

어쩌다 호치민 마담 #9

베트남 생활을 시작하면 한번쯤 도전해보는 일 중 하나가 베트남어 배우기다. 한국인 마담이 가장 많이 대화를 하는 현지인은 메이드와 운전기사인데 베트남어를 못하면 일을 시키거나, 어딘가 가야할 때 번역기를 쓰거나 문자메시지로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 현지인 중에는 영어를 쓰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더 많고, 번역기로는 아무래도 의사소통이 답답하다. 그렇게 다들 비슷한 이유로 베트남어를 시작하고, 비슷한 이유로 그만두게 된다.  


현지에서 베트남어 배우기

요즘은 한국인들이 하는 베트남어 온라인강의도 많아졌지만, 처음 베트남어를 시작할 무렵에는 대부분 오프라인 강의였다.


베트남어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시절, 전임자를 통해서 소개받은 선생님의 첫인상은 아담한 키에 커다란 뿔테 안경을 쓴 단발머리의 학생처럼 보였다. 알고보니 에이전시에 소속이 되서 베트남어를 가리치는 교사였는데, 잘 가르치는만큼 수업료가 비싼 편이었다.


베트남어 과외는 한국어, 영어, 베트남어로 가르치는 강사가 있는데, 꼬(Co giao, 여선생님을 부르는 호칭)는 영어로 베트남어를 가르쳤다. 베트남에 적응하기 전이라 시내도 잘 안나갔던 시절, 꼬는 베트남어 선생님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다.


2시간 정도의 수업시간에 날씨 이야기부터 계절과일, 김치 만드는 방법 등 일상적인 소재로 이야기를 나누고 그 내용을 바탕으로 베트남어를 알려주었고, 나머지 시간은 인사대 교과서로 수업을 했다. 초반에는 발음과 성조를 잡느라 반복 수업을 해서 지루했지만, 꼬와의 수업은 즐거웠다.


개인사정으로 과외를 그만두고, 푸미흥에 있는 어학원에서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수업별로 개별등록을 할 수 있지만, 멤버십으로 등록하면 여러가지 수업을 들을 수 있어서 베트남어 뿐 아니라 영어수업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나는 이곳에서 한국어로 가르치는 베트남어와 베트남어로 가르치는 베트남어 수업, 영어회화 수업을 들었다. 한국어로 가르치는 베트남어 수업은 베트남어 초보수준의 학생들이 많아 수업분위기도 편하고 재밌었다.


외국어를 배우는 일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꾸준히 공부를 해야 하는데, 4개월을 다니다가도 여름방학동안 한국을 다녀오면 발음과 성조가 엉망이 되었다. 다시 적응하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렇게 하다말다를 반복하다 푸미흥에서 2군으로 이사를 하게 되면서 학원을 그만두게 되었다.



내가 베트남어를 포기한 이유

사실 베트남어는 배우기 어려운 언어는 아니다. 알파벳에 따라 발음이 정해져 있어, 성조에 따라 읽기만 하면 된다. 문법은 우리가 10년 가까이 배워왔던 영어의 문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새로운 어휘는 계속 외워야 하지만, 중국어 어원의 단어들이 많아 사전을 찾지 않아도 의미를 짐작하는 요령도 생겼다. 짧은 베트남어지만 현지인과 나누면 재미도 있었다.


그런데 왜 베트남어를 포기하게 되었을까?


문제는 성조다. 4개의 성조가 있는 중국인 친구도 베트남어를 배우다가 6개의 성조 때문에 힘들어했다. 같은 스펠링이라도 성조에 따라 뜻이 달라진다. 외국인으로써 6개의 성조를 구별해 발음하는 일이 여간 까다로운 일이 아니다. 나는 코코넛을 말하지만, 상대방은 파인애플로 알아듣는 일이 겼다.

사진출처: LSV( Let's Speak Vietnamese)

한국에도 지역별 사투리가 있는 것처럼 베트남어도 북부, 남부, 중부 발음이 다르다. 최고 난이도는 중부지역이라는데 베트남 사람도 중부말은 알아듣기 힘들다고 했다. 한국에서 온라인 수업으로 배우는 베트남어는 하노이 사람들이 쓰는 북부 베트남어로 정확한 발음이 특징이다.


그에 반해 남부는 발음을 흘리거나 안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그래서 더 알아듣기가 힘들다. 부에서는 오 비엔(giao vien, 선생)이라고 말하지만, 남부에선 야오비엔으로 발음한다. 이렇게 대충 발음을 하는 건 영어 발음에서도 적용되는데, 's'나 'q'발음을 종종 생략한다.  ‘s’는 주로 [ʃ]로 발음되기 때문에 잘 들리지도 않지만,  Saigon Square(사이공 스퀘어)를 발음할 때 사이공 웨어로 말한다. 강조의 의미로 많이 쓰는  '꾸아(qua)'도 호치민 사람들은 '와'로 발음한다. 런 사정으로 남부에서 베트남어를 배우면 상대적으로 발음하기는 쉽지만, 의사소통은 더 힘들어졌다.


하지만 베트남어를 배우기를 포기한 가장 큰 이유는 발음도 성조도 아니었다. 베트남 사람들은 외국인이 발음하는 베트남어를 이해하는데 인색했다. 대충 분위기나 문맥으로 알아 들을만도 한데, 정색하며 '콤히유(khong hieu, 이해안돼' 라고 말했다. 현지인들이 가는 직업체험관에 용감하게 갔다가 길을 가르쳐달라고 물어보는데, 듣지도 않고 화장실을 알려줬다. 다시 물어보니 결국 '콤히유'라고 말하며 가버렸다. 그럴 땐 정말 내가 베트남어를 왜 배웠나 자괴감이 들었다.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 들으면 좋으련만, 알아들으려는 의지가 없다. 친한 사이라고 해도 외국인이 사용하는 베트남어에 대해서는 상당히 엄격했고, 간혹 알아듣더라도 발음 교정은 필수적으로 따라왔다.


내 베트남어를 알아 듣는 건, 친한 현지인 친구나 외국인을 많이 상대하는 직종의 현지인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간단한 일상 회화는 이제 무리가 없다. 그런 간단한 베트남어 회화에도 베튼남 사람들은 대단하다고 추켜세우긴 하지만, 식당에서 주문하고 택시를 타는 정도는 가능했지만 친밀한 대화를 나누기 힘들었다. 재미가 없어졌다.



베트남어 학습의 부작용

베트남어를 배우면서, 영어 발음이 이상해다.베트남어가 능수능란한 것도 아니면서, 영어 단어들도 자꾸만 베트남식 발음으로 읽게 될 때 당혹스럽다.  영어 문장에 나오는 정관사 The[더]를 어느샌가 [테]로 읽고 있고, 부정관사 a는 [아]로 읽고 있었다.


베트남어를 배우다보면 한번씩 느끼는 게 있다. 언어 능력의 하향평준화. 베트남어는 원래 못하는 언어였다지만, 영어도 못하게 되는 것 같고, 자주 사용하지 않다보니 한국어마져 버벅거린다. 총체적 난국이다. 아마 그 단계를 극복했다면 나도 티비에 나와 베트남 노래를 부르는 파란 눈의 외국인 가수처럼 되었을까 알수 없는 일이다.


그렇게 베트남어를 포기하게 었다

베트남어를 포기했다고는 하지만, 베트남어 간판을 읽거나 듣는 것을 포기하지는 않았다. 간혹 베트남어 친구들을 만나면 영어로 이야기하다가도 자기네들끼리 베트남어로 이야기할 때가 있다. 그들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띄엄띄엄 아는 단어들로 내용을 짐작할 수는 있었다. 베트남어를 배워서 그들의 세계에 더 친밀하게 다가갈 수는 없었지만, 이방인보다는 겉도는 정도는 된 것 같다. 더 배우지 못한 게 아쉽기도 하지만,  이것도 나름대로 흥미롭긴 하다. 기회가 닿는다면 현지에서 베트남어는 다시 한번 배우고 싶긴 하다. 그 기회가 다시 올런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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