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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쓰는 기주쌤 Oct 23. 2024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 기록-(2)

1. 서평 쓰기 수업 - <2> 왜? 어떻게? 

"왜 함께 읽고 말하고 써야 하는가?"


'능숙한 학습자'로의 성장을 위해. 함께 읽고 말하고 쓰기.


    일반 학습자의 독서 동기는 자발적이기보다는 대부분 과제 수행과 같은 외적인 요구나 필요인 경우가 많다하지만 이런 요구나 필요가 자발적이지 않더라도 이를 해결하고 충족하려는 독서 과정이 잘 이뤄지면 학습자에게는 배움과 성장이 일어난다학습자는 이 배움과 성장의 과정을 글쓰기’ 와 같은 과제 수행의 결과물을 통해 확인하게 된다잘 기획된 읽기와 쓰기 수업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읽기와 쓰기를 통해 배움과 성장을 확인하는 과정이 꾸준히 이어지면 학습자의 자아 효능감이 높아진다. 그리고 이는 학습자가 읽기와 쓰기 행위를 외적 요구나 과제 수행 목적으로만이 아닌 내적자발적인 필요를 찾고 지속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이것이 능숙한 학습자로의 성장 과정이자 이 수업을 기획한 이유이다.


    이 서평 쓰기 수업의 학습 목표는 능숙한 학습자로의 성장이다이를 위해서는 앞에 서술했듯학습자의 동기와 효능감이 지속되도록 학습자가 독서와 글쓰기를 통해 자신의 성장 과정을 계속 확인할 수 있는 수업 설계가 필요하다예를 들어서평 쓰기 수업에서 반드시 수업 시간을 들여 책을 읽어야 하는 것 역시 이런 맥락에서 설계된 활동 과정이다. 수업이라는 시공간 안에서 얻을 수 있는 집중도수업 중 도서관(에서 모든 수업을 진행했다)자료 활용이나 교사·동료와의 대화글쓰기에 대한 피드백 등이 즉각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는 점이를 통해 자신의 독서와 글쓰기의 성취도를 계속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등을 들어 수업 시간에 책을 읽는 의도를 학습자에게 이해시켜야 한다교사가 안정적으로 학습자에게 독서와 글쓰기를 독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야 마지막 서평 쓰기 단계까지 학습자를 잘 이끌어 갈 수 있다는 점에서 수업 시간 내에 독서 활동을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독서를 기반으로 한 쓰기 수업 모범 사례에서 수업 시간 내에 독서 시간을 확보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보여주고 있다.


    능숙한 학습자로의 성장은 개인적 차원을 넘어 시의적인 차원에서도 유의미하다. ChatGPT를 필두로 한 생성형 AI 언어모델은 나날이 정교해지고 활용 영역 역시 넓혀가고 있으며그 확장 속도 또한 매우 빠르다이런 변화의 도상에서 인간의 고유한 능력이라고 여겨졌던새로운 지식을 창출하고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창조적심미적 역량을 앞으로도 인간이 독점적으로 영위할 수 있을지 자문해봐야 한다그리고 이 자문의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이들이 바로, ‘능숙한 학습자들이다읽고 말하고 쓰는 행위를 통해 창조적 역량을 발휘하고끊임없이 성장하려는 이들의 연대로 인해 인간은 그 고유함을 지켜나갈 수 있다함께 읽고 말하고 쓰는 수업은 이런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도 의미가 있다.




어떻게? 쉽진 않지만 지치지 않고 나아갈 수 있도록!


학생은 이렇게 ; 해야만 하도록, 할 만 하도록 평가 설계하기


    책을 읽지 않아도 참고서 속 주석이나 인터넷의 모범 서평들을 글감으로 어느 정도의 형식을 갖추면 만점을 받는 서평 평가는 교사와 학생 양쪽 모두의 번거로움과 수고를 퍽 덜어왔다.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 이건 ‘가짜’다. 수업 시간에 책을 읽고 독서 일지나 개요를 작성하는 활동을 ‘진짜’로 펼치려면 교사와 학생 모두 관성을 이겨내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작문 실력으로 해결할 수 있는 감상문 평가나 일반적인 논리(도덕적 규범이나 가치 옹호 등) 전개 정도로 작성할 수 있는 토론, 서평 평가는 독서 동기를 일으키지 못하고 결과물 역시 수준이 높지 않다. 교사는 책에 근거한 글만이 유효하도록 평가의 기준을 확립하여 학생이 반드시 책을 읽어야만 이 평가 과정에 참여할 수 있다는, 과제 의무를 부여하는 평가 단계와 도구를 구성해야 한다.


    이때 평가 과정에의 적극적 참여가 좋은 성적으로 이어진다는 평가 기준의 명확한 확립이 이뤄져야 학생이 독서와 글쓰기에 대한 동기를 유지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첫 평가의 경우엔 만점 비율을 높여 전체 평가의 기반이 되는 텍스트 숙지 활동 참여를 독려하는 동시에 점수 획득을 통해 ‘할 만하다’라는 느낌을 주는 것이 중요하다. 모든 평가 문항을 선공개하고, 최종 서평 평가 이전에 실시하는 글감 생성 평가나 말하기 평가가 곧 서평 평가의 준비 과정이 되도록 평가 간 연계성을 높이는 것도 평가 준비 부담을 줄여주면서 참여 동기를 유지하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의무와 동기의 적절한 조화를 위해 고려한 사항들은 다음과 같다.      


(1) ‘읽어야만 하도록’ 교재 선정하기

    우선, 작품 선정 과정에서 참고서나 문제집에서 소비되지 않은,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을 선정하는 것이 중요했다. 지정된 텍스트가 여러 교재의 학습 자료로 자주 소비되었거나 대중적 인기를 얻은 작품일 경우, 학습자들은 여러 매체를 통해 지정 도서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바꿔 말하면 타 매체를 통해 정보를 얻을 수 없는 작품일 경우 텍스트를 읽지 않으면 평가 문항에 답변할 수 없게 되므로 자연스럽게 독서에 충실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된다.     


(2) ‘이해할 만하도록’ 자체 교재 제작으로 미리 알려주기

    한 학기 동안 사용할 교재를 자체 제작하여 학기 시작과 동시에 배부하였다. 여기엔 학기 중 실시할 수행평가의 채점 기준과 평가 문항을 모두 수록했으며, 구글 클래스룸에 교재 활용에 관한 안내 영상을 탑재하여 수업에서 요구하는 독서 및 글쓰기의 목표 지점을 제시했다. 교사가 평가를 위해 묻는 지점이 무엇인지를 미리 학생들에게 공개하면 학생들의 독서와 글쓰기에 방향성이 생기고 글의 수준이 좋아진다. 글의 주제나 맥락에서 지나치게 벗어난 감상이나 논평으로 인한 채점의 피로도 역시 크게 줄어든다.     


(3) ‘참여해야만 하도록, 참여할 만하도록’ 평가 기준 설정하기

    초반 평가인 글감 생성 평가의 경우 실제 독서 수행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문항 위주로 구성하고 채점 기준을 완화하여 만점 도달자가 많아지도록 구성했다. 대신 독서의 수행이 확인되지 않은 경우엔 감점이 크도록 성취도별 획득 점수 간격을 넓혔다. 책을 읽고 평가에 참여한 학생은 점수를 비교적 쉽게 가져갈 수 있지만, 책을 읽지 않고는 쓸 수 없고, 또 쓰지 않으면 감점이 큰 배점 설계를 통해 실제 평가 과정에서 학생들의 독서 및 활동 참여도를 높일 수 있었고, 이어지는 평가들에도 참여 동기를 강화할 수 있었다.      


(4) ‘대화해야만 하도록’ 문항 설계하기

    최종 서평 평가의 답안에 반드시 협업 과정이 포함되도록 문항을 구성했다. 평가 문항을 선공개하는 경우, 학생들은 교사의 수업 계획이나 활동 단계와는 상관없이 미리 답안을 작성하고 이를 암기하는 과정에만 집중하여 평가에 대비한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종 서평 작성 평가 문항에는 ‘모둠원 한 명 이상의 이야기를 포함’하도록 하는 등의 조건을 걸었다. 이를 통해 책 대화와 같은 협업을 통한 내용 생성 및 조직의 과정을 반드시 겪게 하고 이를 답안 작성에 포함하도록 채점 기준을 세웠다. 

    후술하겠지만, 이 과정이 이번 수업에서 가장 중요한 지점이었다. 작품을 읽고 든 감상이나 평가, 의견 등을 여타 참고서나 자료를 통해 확인할 수 없는 환경에서 책 대화 활동 단계는 자기 생각을 검증하고 다른 친구의 견해를 들으며 시야를 넓힐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서평의 글감을 다양하게 생성할 수 있었음은 물론이다. 실제로 진중하게 대화를 진행하고 수업 이외의 시간에도 논의를 이어가는 학생들도 많았다.      


(5) ‘써볼 만하도록’ 글쓰기의 구조를 제시하기

    마지막으로 서평으로서의 형식, 평(評)이 갖춰야 할 논리적 구조를 학습시키고 이를 따르도록 했다. 줄거리 요약과 몇 줄의 감상으로 갈음했던 기존의 감상문에서 벗어나 책 속 내용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이에 대한 근거를 세워나가는 서평의 작법(作法)을 제시했다. 이를 통해 글의 형식 요소에 대한 도달점과 명시적인 채점 기준을 세울 수 있었으며, 글의 기본 틀이 제시됨으로써 학생 글의 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는 효과도 얻을 수 있었다. 



교사는 이렇게 ; 이유를 찾으면 나아갈 수 있다. 


    새내기 교사 연수, 승급 연수, 수업 사례 나눔 연수 등을 다니다 보면 ‘참 좋은 수업이다’, ‘나도 저렇게 해보고 싶다’라는 수업을 만난다. 그럴 때면 강연자로 나오신 선생님들의 수업 사례에 자기 자신과 학교 학생들을 넣어보고 여러 모양으로 적용하고 변주해가며 나만의 수업을 머릿속으로 펼친다. 이렇게 새로운 수업을 고민하고 구상하는 과정을 통해 교사 자신이 생각하는 ‘좋은 수업’이란 그림을 갖게 된다. 

    

    학교에는 많은 교사가 함께 일하고 있고, 당연히 좋은 수업에 대한 그림도 교사마다 다채롭다. 한 학년을 교사 두 명 이상이 담당해야 하는 규모의 학교에서는 이런 다채로움을 맞대고 나누어 접점을 찾아야 한다. 교과 협의회, 교원 학습 공동체를 비롯한 여러 수업 연구 모임들을 통해 나눈 것들을 교실 현장으로 잘 옮겨오는 모범적인 사례도 있다. 하지만 서로의 그림에 차이를 좁히지 못해 교실에 펼쳐지지 못하고 동력을 잃거나, 고군분투로 지친 교사의 슬픈 다짐(‘다시는 이 수업을 하지 않을……’)으로 마무리되기도 한다. 실제로 수업 나눔 모임을 가보면 수업 사례만큼 동료 선생님을 설득하는 방법이나 학생·학부모의 민원을 상대하는 노하우를 궁금해하는 선생님들도 많다.


    참신하고 혁신적이지 않은 ‘스타트업 창업 기획서’는 없다. 하지만 성공하는 기업은 많지 않다. 마찬가지로 수업 기획서가 아무리 좋더라도 굳이 수업 시간에 책을 읽고 대화하고 써야 하는 이유를 설득하지 못하면 소용없다. 내가 기획한 수업에 나의 시간과 노력을 들이는 것은 성패와 관계없이 의미가 있다. 하지만 동료 선생님들의 시간과 노력, 그리고 학생들의 1년은 함부로 투자할 수 없는 귀한 것들이다. 이렇게 생각하고 나니 못할 이유가 아니라 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하고,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 


    주당 4시간인 수업을 A(3)/B(1)로 나누었다. A에서는 교과서 제재 중심, B에서는 교사 1명이 한 학년 전체 학급에 주당 1시간 한 학기 한 권 읽기 및 서평 쓰기 수업을 전담하는 방식으로 학기 운영 계획을 수립했다. 이 방식은 분리된 수업으로의 자율성을 보장받으면서 지필 평가 일정에 따른 교과 진도 운영에서도 부담을 덜 수 있었다. 학년 전체를 담당함으로써 수업 운영 및 수행평가의 일관성 역시 제고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요컨대, 기획한 수업을 혼자서 자유롭게 펼쳐낼 수 있는 무대를 얻은 것이다. 

    

   혼자서는 분명 부담이 된다. 근무하고 있는 학교의 학급 수와 학생 수가 많은 편이라(1학년 15개 학급, 470명) 읽어야 하는 글의 양이 많았고, 평가나 피드백을 위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주당 1시간 수업은 공휴일이나 학교 행사 등으로 요일별 시수가 달라서 학급별로 평가 시기가 맞지 않는 등 수업 운영상의 어려움도 있었다.

    

    이런 어려움이 예상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자라도 해보려는 마음을 먹은 이유는 동료 선생님들과 함께 근무하고 있는, 여기 우리 학교에서 실제로 수업을 진행한 과정과 결과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 사이클의 과정과 결과를 보여줌으로써 이 수업이 필요한 수업이고 학생들과 함께 호흡하는 즐거움이 있는 수업임을 보여줄 수 있다면 내년에는 같이 하고 싶다는 선생님들이 있지 않을까. 혼자서도 저렇게 할 수 있는데 두 명, 세 명이 하면 어렵지 않게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더 나아가서는 ‘이런 건 내가 더 잘 할 수 있는데’라며 선생님들의 더 좋은 제안과 참여로 더 좋은 수업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마음이었다.


    수업 진행 과정에서도 ‘이게 맞나?’라는 생각으로 머리가 복잡해지기도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평 쓰기 수업을 계속 밀고 나가려는 용기를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읽고 말하고 쓰는 과정을 통해 만난 학생들의 글이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수업하는 교사에게 학생들의 성장만큼 좋은 동력이 있을까. 많은 선생님께서 왜 책을 읽고, 책 대화를 하고, 글을 쓰는 수업에 열정을 갖는지, 새로운 수업을 고민하고 함께 공부하는 동료들을 찾는 것에 열과 성을 다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수업을 해나가는 과정에서 조금은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이유를 찾으면 나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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