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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읽고쓰는 기주쌤 Oct 25. 2024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 기록-(3)

1. 서평 쓰기 수업 - <3> 수업 안내하기

수업 안내하기 ; 친절하고 자세하면 적극적으로 참여한다.




- 무엇을 어떻게 하는 수업인지 ‘언제든’ 확인할 수 있도록.     


“한 학기 동안 책을 읽고, 대화하고, 글을 쓸 거야.”     


    1학년, 3월의 첫 수업에는 긴장감이 자못 역력하다. 비평준화 지역의 내신 따기 어려운 학교라는 지역의 평가에도 이 학교에 진학을 결심하고 입학한 학생들의 결의는 첫 수업의 분위기에서 여실히 느껴진다. “일주일에 한 시간, 국어B 수업에서는 한 학기 동안 책을 읽고, 대화하고, 글을 쓸 거야.”라는 교사의 수업 소개에 다채로운 반응들이 보였다. 중학교 시절 한 학기 한 권 읽기 수업을 경험해본 학생들은 그 경험의 색채가 담긴 감탄사를 내뱉기도 하고, 책 수업을 처음 해보는 학생들은 퍽 당황스러운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내가 근무했던 10년 동안 우리 학교에서 ‘한 학기 한 권 읽기 및 서평 쓰기’라는 포맷으로는 수업을 진행한 적이 없었으니 선배들이나 학원에서 들었던 정보들은, 내가 맡은 30%의 평가 비율에는 전혀 해당 사항이 없다. 그래서 그런지 대체로 예상치 못했다는 학생들의 반응이 주를 이뤘다. 이 수업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해, 특히 이 수업을 실행에 옮기기를 망설였던 가장 큰 이유인 평가를 둘러싼 어려움들을 줄이기 위해서는 평가의 모호함에서 오는 학생들의 불안을 없애주어야 했다. 이를 위해 수업의 방법, 평가의 내용, 채점 기준에 대한 친절하고 자세한 안내에 공을 들였다. 


    먼저 자체 교재를 제작하여 전교생에게 배부하였다. 교재에는 수업의 목적, 지정 도서와 작가 소개, 학기 동안 진행될 활동 및 평가 문항, 채점 기준, 그리고 지정 도서와 작가에 대한 학술 문서(평론, 논문) 등을 수록했다. 학생들은 교재를 통해 한 학기 동안의 수업이 어떻게 진행될지를 언제든지 파악할 수 있으며, 평가 문항과 채점 기준 역시 모두 수록되어 있었으므로 ‘무엇을 물을지’에 대한 불안은 학생들이 갖지 않을 수 있었다.

                 


교재 안내 동영상 캡쳐 화면 / 자체 제작 교재 표지

   

    그리고 이 교재에 수록된 모든 내용에 대한 설명이 담긴 동영상을 제작하여 각 학급 구글 클래스룸에 탑재했다. 오리엔테이션 수업 한 번으로 해소되지 않을, 수업이나 평가에 대한 궁금증을 언제든 해결할 수 있도록 함과 동시에 수업 및 평가 진행에 관한 학생들의 질문 소요를 줄여서 주당 1차시 수업의 효율적인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게 했다. 




- 읽기 · 말하기 · 쓰기를 함께 배우는 ‘그룹 P.T’     


 “온전히 네 힘으로 적어낸 한 편의 글을 만날 수 있게 될 거야.”      

    수업 전반에 대한 안내를 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더니 첫 수업 시간을 좀 더 ‘이야기’로 채울 수 있는 시간이 생겼다. 우리는 왜 읽고 말하고 쓰는 수업을 하려고 하며, 이를 통해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것들은 무엇인지를 전하고 싶었던 이 첫 수업은, 지금까지 해왔던 수천 시간의 수업 중 가장 간절한 마음으로 준비한 수업이었다. 


    우리 워크북의 이름인 ‘Arete(ἀρετή, 아레테)’는 이 우리 수업의 제목이자 목적입니다. ‘어떤 종류의 탁월함, 덕(德)’ 정도로 해석하는 이 단어는 고대 그리스 철학의 한 주제였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 존재의 본성에 아레테가 있으며, 이 잠재된 능력을 정해진 목적을 위해 실현하는 것이 ‘행복’이라고 말했습니다. 모든 인간이 구체적인 삶의 실제에서 자신만의 고유한 탁월함, 즉 아레테를 실현하는 것이 바로 행복이라는 그의 이야기에서 ‘공부’의 목적을 생각해봅니다. 고유한 존재로서의 자기를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수많은 지식 중 자기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지식을 찾고, 보고 듣고 말하고 쓰며 얻은 것을 자기 성장의 자양분으로 담아가며 나의 탁월성, 아레테를 찾아가는 여정이 바로 ‘인문사회교육’으로 명명한 우리의 ‘공부’가 가진 목적이자 고민의 제목입니다. 
                                                                                                             - 교재 머리말 中


    서평 쓰기 수업을 하면서 느낀 점 중 하나는 학생들이 자기표현의 욕구를 많이 가지고 있고, 표현할 수 있는 많은 채널도 가지고 있지만 자기표현을 연마하는 과정을 겪어본 이는 많지 않다는 점이었다. 좋은 글귀나 사진, 노래 등에 ‘좋아요’를 누르는 것은 직관적으로 수행한다. 그리고 ‘공유하기’를 눌러 자신의 페이지로 담아가는 것 역시 익숙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이 왜 좋은 작품인지에 대해 자기 생각을 표현하라고 하면 감정 단어들이 담긴 단편적인 문장만을 적거나, 자기의 생각과 가장 비슷한 다른 이(예를 들면 인플루언서 작가나 리뷰어들)의 감상평을 스크랩하고 이를 자기 것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나의 답보다는 그들의 답이 더 ‘모범 답안’이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읽고 말하고 쓰는 과정을 조금씩 힘겨워할 때 하나 더!’를 외치는 P.T 트레이너처럼 학생들을 북돋기 위한 많은 이야기들을 했었다그중 가장 효험(?)이 있던 이야기는 너만의 고유한 글이 가장 탁월한 글이라는 응원이었다작가가 소설 속에 숨겨진 정답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내가 느낀 감상이나 평가를 정답으로 만들기 위해 작품 속에서 그 근거를 찾아보는 것자기의 생각과 타인의 생각을 건설적으로 맞대어 보며 정반합의 과정을 겪고 이를 통해 생각의 시야를 넓히는 것이것이 바로 탁월함을 갖는 과정이며 진정한 의미의 공부라는 점을 교재의 머리말과 첫 수업학기 중간에도 여러 번 강조했다.


    온전히 자기의 이야기로 채워진 서평 한 편을 적기 위해 어떤 과정이 필요한지 수업을 통해 배우게 될 것이며, 학기의 끝에 나만의 글 한 편을 만나게 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이야기했다. 교재의 머리말에 적어놓은 저 ‘공부’의 과정이 허세 가득한 이야기가 아닌 성장의 자양분을 담아가는 과정임을, 그리하여 여러분도 글짱(?)이 될 수 있다는 그룹 P.T 트레이너의 장담을 이제 증명해야 한다. 


    이런 다짐을 가지고 1차시 수업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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