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얼쑤 Jan 16. 2022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컨시어지무새인 (구) 컨시어지가 읽은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

* 책 리뷰는 처음인데 일단 해보겠습니다. 사실 리뷰보단 개인적인 감상에 가깝습니다.


참 감사한 책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처음에는 읽기를 망설였다. 국내에 출간된 호텔 관련 책들은 전공 서적 아니면 다 거기서 거기인 뻔한 책들뿐이라 이번 책도 분명 그럴 것이라 여겼다. 그래도 일단 훑어보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몇 장을 넘기다 정확히 한 문장이 내 시선을 붙잡았고 그 자리에서 내적 환호성을 발사했다.


“특급 호텔일수록 잘 갖춰진 것이 컨시어지 서비스다.” (p. 148)


세상에 마상에! 드디어 제대로 된 책이 세상에 나왔다. 나와 함께 했던 우리 컨시어지들, 나를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들이라면 내가 이 한 문장 때문에 교보문고 한가운데에서 환호성을 내적으로 지른 것에서 끝난 걸 다행이라 할 것이다. 작가님, 컨시어지에 대해 정확히 알고 계시군요?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만나 뵌 적은 없지만 사랑합니다.



대학교 1학년, 풋풋한 신입생 때 듣는 전공과목으로 HMD 101이 있다. 호텔을 비롯한 호스피탈리티의 개괄적인 설명을 담은 책으로 광활한 이 업계에 대한 큰 틀을 잡을 수 있는 입문 과목이다. 이 책은 일반인을 위해 흥미롭게 잘 다듬어진 HMD 101 수업의 요약본과도 같다. 이제야 많은 사람들이 널리 읽을 수 있는 책다운 책이 나온 것이다.


이 책은 치밀한 계산과 정확한 수치로 설계되는 호텔의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객실뿐만 아니라 게스트가 볼 수 없고 닿을 수 없는 호텔의 가장 깊숙한 곳까지 구석구석 살펴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객실 화장실에 세면대는 왜 2개인지, 왜 샤워부스 문은 안에서 바깥 방향으로 열리는지, 왜 호텔 복도와 객실에는 카펫을 깔았는지, 로비의 층고는 몇 미터여야 하는지, 왜 호텔 침대에서는 숙면을 취할 수 있는지 등 호텔에 머물면서 한 번쯤 가졌을 법한 궁금함을 해결할 수 있는 재미난 호텔의 숨겨진 이야기를 엿볼 수 있다. 또한 일반인들에게는 생소한 호텔과 관련한 다양한 개념들을 친절하게 소개하고 있으며 업계의 요즘 이슈와 토픽, 그리고 국내의 호텔 업계 현황도 담겨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호텔에 관한 거의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이 책은 호텔의 하드웨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끌어간다. 그 속에서 간간히 소프트웨어에 대한 이야기도 소소히 담겨있는데 그중 가장 좋았던 부분은 역시나 컨시어지의 의미, 역할, 그리고 존재 이유에 대한 명확한 설명이다. 하지만 과연 국내에 그 의미, 역할, 존재 이유를 충족하는 컨시어지가 과연 있을까?


코로나 19로 인해 국내 호텔 업계는 그 어느 때보다 휘청거렸고 몇몇 국내 럭셔리 호텔에서는 럭셔리 호텔의 상징인 컨시어지 팀을 무모하게도 공중분해시켰다. 명목 상 한 두 명 정도의 컨시어지는 있지만, 다른 부서가 필요로 하면 차출되는 잉여 인원이 되었고 이는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직 컨시어지의 개념이 뿌리내리지 못한 국내에서 컨시어지가 나아갈 방향은 무궁무진하다. 강하고도 무한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회를 호텔은 통째로 놓쳐버리고 만 것이다. 상상해보자. 이 절망적인 시국이 종료되고 자유로운 여행이 시작되었을 때, 모든 럭셔리 호텔이 놓아버린 컨시어지, 즉 럭셔리의 오랜 공백을 과연 어떻게 채울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 와중에 국내 럭셔리 호텔의 하드웨어는 날이 갈수록 화려하고 웅장해졌으며 놀라운 기술력으로 늘 앞서가고 있다. 하지만 앞서가는 하드웨어를 따라잡지 못하고 항상 제자리인 것이 바로 컨시어지를 비롯한 소프트웨어다. 어쩌면 럭셔리 호텔에서 하드웨어보다도 더 큰 진가를 발휘해야 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소프트웨어’는 항상 길을 잃는다. 5성급이라는 럭셔리 호텔 어딜 가도 경험이 다 비슷하고 늘 가던 럭셔리 호텔에서의 경험이 일정치 못하고 들쑥날쑥한 건 그에 걸맞은 탄탄한 소프트웨어의 부재로 인한 결과인데, 얼른 국내에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고루 갖춰 우버 럭셔리, 어퍼 럭셔리, 일반 럭셔리에 각각 걸맞은 경쟁력 있는 럭셔리가 등장하길 바란다. 작가가 말했듯이 럭셔리의 때는 국내에도 분명 올 것이다.


이 책은 호텔에 애정을 갖고 열렬히 일했지만 부득이하게 저마다의 사연으로 지금은 업계를 떠난 (구) 호텔리어에게 큰 위로가 되어줄 책이다. 그리고 이 책을 깊이 사랑하게 될 것이다. 또한 지금 업계를 지키고 있는 호텔리어에게는 다시 한번 신입생의 마음을 다잡을 수 있는 정답과도 같은 책이 되어줄 것이며 호텔을 사랑하는 게스트에게는 호텔을 보는 새로운 눈, 누군가에게는 호텔을 내 취향대로 고를 수 있는 안목을 지닐 수 있게끔 도움을 줄 책이다.


이제  업계도  자세히 들여봐져야  때가 왔다. 사실  시기가 진즉 왔어야 하는데, 뭐가 됐든 이제라도 늦지 않았고 기회가 왔으니 다행이다. 이런 기가 막힌 타이밍에 마침 호텔을 깊숙이 알아볼 수 있는 수학의 정석과도 같은 책이 생겼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다.  내겐 애증의  가지 마음을 갖게 하는 호텔을 사랑하는 여러분, 앞으로 호텔에 많관부!

작가의 이전글 지극히 개인적인 인사평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