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차산 자락, 이곳 나의 이그조띠끄에도 우아한 프랑스식 흔적이 묻어나길
"죽음의 원인은 탄생이죠.
삶에서 유일하게 진정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음식과 사랑입니다.
내 강아지 루비에게 그렇듯이 바로 그 순서대로입니다.
나는 이 점을 진심으로 믿습니다.
예술의 원천은 사랑입니다.
나는 삶을 사랑합니다."
_ page. 204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오늘, 장마가 시작됐다. 후덥한 습기를 잔뜩 머금은 34도에 육박하던 무더위가, 결국 때 이른 장마를 요란하게 몰고 왔다. 또다시, 대기는 숨 쉬기 어려울 만큼 치밀하게 빽빽하고 미지근하게 끈적거린다.
내게는 정신적 고립과 경제적 폐해만큼이나 감당하기 어려웠던 게, 지난 몇 년 사이 변모된 여름비의 양상이었다. 24시간 끈적한 안개를 닮은 빗방울을 미스트처럼 흩뿌려놓은 여름 대기는, 어렵게 (때때로 마지못해) 시작했던 지난 집 리모델링 과정을 더어어어어어어어욱 더디게 하며, 내 가장 애정하는 여름을 결코 끝나지 않을 인고의 시간으로 만들었다. 그렇게 거센 여름 빗줄기 속에 시간을 흘리며, 이 낯선 동네에서 몇 개의 계절을 보내고 나니 10월 하순, 코끝, 손끝, 발끝 내 모든 피부 세포의 끝이 차갑게 한 해의 사그라짐을 상기시켰다.
눈물과 장맛비 사이, 희망에도 절망에도 질척이던 여름이 다시 돌아왔다.
잠시 잊고 살던 호크니의 프랑스식 흔적을 찾으려 들춰낸 책장 속에 지난여름의 흔적을 발견한다.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2022. 06. 23 비
며칠 전 폭우처럼 쏟아지던 초여름 햇살만큼이나 거센 장맛비가 가시고 나면, 본격적인 폭염이 시작될 기세라... 찰나처럼 스쳐간 봄의 생기, 한 해의 계절을 시작한다는 달뜸에 삶의 부담감조차 내려놓았던 지난봄이 사뭇 그리워져, 벌써부터 다음 봄을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2025년 봄. 나의 새로운 아차산 자락 집에서 맞이한, 어느덧 익숙해진 네 번째 봄.
2026년 봄. '이그조띠끄'라 이름 붙인 그 집에서 맞이할, 비로소 나의 시즌2가 완성되는 첫 번째 봄.
찬양하는 많은 미술가들의 집처럼, 실제 내게도 집은 종종 작업실이었고 작업실은 종종 집이었다. 언제나처럼 나의 공간은 '작업실'과 '집'이 두 가지 역할을 충실히 해 나가며 '나'라는 사람이 유무형으로 녹여든 나를 환영(幻影)하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 삶의 중요한 주제들로 자신의 집을 채워 나가는 행위는 별것 아닌 것 같지만, 각자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분명하게 믿고 있기에.
80세가 넘은 이 고령의 예술가는 프랑스 노르망디 시골 마을에서 계절의 변화를 몸소 느끼며 하루하루 변해 가는 자연을 그림으로 기록하고 오랜 친구와의 담백하고 솔직한 대화를 또 이 책으로 기록했다. 호크니의 이 다정한 기록들이 내 험난했던 구옥 리모델링 과정의 무주룩하고 시무룩했던 시간들에 대한 분노 게이지를 다소 진정시켰던 듯도 싶다. 자연과 삶에 지속적인 찬사를 보내는 저 사랑스럽고 진실된 고령의 예술가의 모습을 보고 내가 얼마나 더, 어리광 섞인 불평불만을 할 수가 있었겠냐고!
"축축하고 무거워. 비가 오지 않아도 언제나 젖어 있던 홍콩의 공기 같아. 여름이면 늘 이 영화가 생각나. "
그는 말했다.
한여름, 에어컨 없던 작은 복층에서 <중경삼림>을 보며 연거푸 와인을 비워내던 그 밤은, 내 세상의 여름을 상실과 기다림이 베어든 또 하나의 미장센으로 각인시켰다. 잊고 싶은 마음과 잊히고 싶지 않은 감정의 방황 속에 결국 서로에게 마음이 머무르지 못하고 한 해의 여름으로 끝이 났지만.
습도 위를 떠도는 기름진 음식 냄새와 몽롱한 담배 연기, 방금 스쳐간 낯선 향수와 어제의 슬픔이 뒤엉켜 홍콩의 밤을 만든다. 카메라는 숨 가쁘게 흔들리고, 네온사인과 좁은 골목, 지하상가와 시장의 소음, 흐릿한 유리창 너머로 흐트러진 환멸의 실루엣들 속에 홍콩이 정서적 미로처럼 펼쳐진다.
누군가 끈적하게 남겨놓은 홍콩을 닮은 서울의 여름이 어지럽다. 한 계절의 추억을 잊고 싶어, 벌써부터 다음 봄을 기다리는 심정이 된다.
이 모든 건 다 오늘 시작된 장마 때문이다.
소담스레 핀 노르망디 정원의 봄꽃이 촘촘하게 인쇄된, 소박한 수채화풍 하늘색 띠지를 걷어내자, 호크니 특유의 강렬한 파란색 표지 위로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는 희망의 선언 같은 글귀가 내 시선을 자극한다. 다행이다. 드디어 이 책이 마음에 들기 시작했으니까. 사실 유년의 동화적 색감과 표현들로 가득한 저 이미지에 살포시 거부감을 느끼던 차였다.
그의 작품 A Bigger Splash에서 감각되던 선명한 블루의 청량감, 그리고 화폭에 감도는 고요한 정지와 도발적 움직임의 상반된 무드를 한 화면 속 동시에 느낄 수 있다는 이질적인 모호함과 긴장김이 바로 '호크니'라고 정의 내린 터였기에, 단순히 예쁘기만 한 이미지로는 영 마음에 차지 않았던 거지.
한 장 한 장, 질 좋게 두꺼운 종이를 조심스레 넘기며, 책 속 가득한 다양한 도판에 경탄을 이어간다.
'앗, 내가 애정하는 크라나흐잖아. 나중에 찢어서 벽에 붙여야겠다. 굉장해! 점점 더 마음에 들어."
물론 책의 내용 그 자체라기보다는, 책이 지닌 물리적인 형태와 인테리어적 효능감에 관한 것이기는 하지만, 이래저래 내게는 특별하게 각인될 수 있는 인상적인 책이 된 셈이다.
기분 좋은 질감의 페이지를 넘기며 문장들을 평온히 따라간다.
아, 이 책은 호크니의 작품에 중점을 둔 이야기라기보다는 그의 '작업실'에 더 방점을 두고 있구나. 그를 둘러싼 작업실의 환경이 변화됨에 따라 그의 작품세계도 다채롭게 변모해 왔다. 호크니의 작업실들은 저마다 독특한 특성을 갖고 있었기에 그의 개성과 습관, 그리고 작업을 반영하며 어느 화파에도 예속되지 않는 그만의 작품세계를 창작해 낸 원형질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브리들링턴에서, 파리의 크르 드 로앙에서, 할리우드힐스에서, 말리부에서 그리고 노르망디 전원 지역에 자리 잡은 지금의 이 작업실에서.
호크니 : 내 마음속에는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의 <화가의 작업실>이 있습니다.
제이퍼드 : 미술가의 작업실은 그 자체가 풍부한 주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제작, 이미지, 외관, 리얼리티의 생산 등 온갖 종류의 주제를 엮지요.....
호크니 :........ 그리고 안과 밖을 엮어 줍니다.
작가의 작업실은 (공간의 주변부를 포함해서) 그 자체가 작가와 작품의 정체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곳이기에, 내겐 언제나 흥미로운 주제이다. 어떤 창조성의 원천이 숨어 있는 곳일까. 그림을 그리는 곳이지만 그림이 구상되는 곳이자, 이전에 제작한 그림으로부터 다음 그림이 발전되는 곳이기도 한 작업실. 호크니는 그의 작품과 그의 작품의 주제들에 둘러싸여 있다.
미술가의 집이 작품 안에 녹아드는 경우는 상당히 많다.
고흐다웠던 아를의 노란 집과 북쪽 빛이 들어오는 나무로 둘러싸인 폴 세잔의 엑상프로방스 작업실, <게르니카>를 위한 피카소의 파리 그랑 오귀스탱 거리의 작업실, 일본식 목판화에서 영감을 받은 모네의 지베르니 정원, 그리고 이곳 호크니다운 노르망디의 작업실까지 그들의 작품이 지닌 비밀은 이 탐나는 공간들에 있었다.
"레몬빛으로 빛나는 태양과 맑은 코발트빛 하늘 아래의 집과 그 주변환경"은 그리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반 고흐는 바로 그 이유 때문에 그 풍경을 정복하고 싶었다. "햇빛이 비치는 노란색 집들, 그리고 비할 데 없는 생생한 파란색 하늘, 이것이 굉장하기 때문이지."
1888년 5월 그는 이 집을 빌렸고, 그다지 많이 바꾸지 않았다. 그저 외벽만 '신선한 버터'와 같은 크림색이 감도는 노란색으로 칠했고 초록색의 목조 부분을 추가했으며 해가 저문 이후에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작업실에 가스등을 설치했다."
- page 135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모네는 담을 두른 정원이 딸린 농가를 구입했죠. 그는 담을 두른 정원을 바랐습니다. 넓은 정원을 원했죠. 집을 개조해 편안하게 만들긴 했지만 그는 건축물의 원상태를 보존했습니다. 부엌은 훌륭합니다. 모네는 아침 식사로 베이컨과 달걀을 먹었습니다."
모네의 집에서 여흥은 단순했다. 점심을 먹고 난 뒤 정원 주변을 거닐었고 그 뒤 작업실을 방문했다. 즉 음식을 먹고 미술가와 대화를 나누고 그가 다루는 주제를 보고 난 뒤 그림을 보았다. 그 여정은 바뀌지 않았다.
- page 130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피카소의 작업실 역시 가까운 그랑오귀스탱 거리에 있었다.
"피카소는 1930년대에 거의 매일 밤 레 돼 마고와 플로르 카페에 가곤 했습니다. 그의 작업실이 몇 분 거리에 있었죠. 하지만 그는 항상 밤 10시 50분이 되면 자리에서 일어났고 11시에는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는 결코 술을 많이 마시지 않았습니다. 스페인 사람치고는 좀 이상했죠. 나는 피카소가 분명 정해진 일과를 따랐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평생 매일 작업을 했기 때문입니다. 나처럼 말이죠."
- page 56, 58. [봄은 언제나 찾아온다]
책 속에서, 어느샌가 호크니는 '아름다운 흔적', '프랑스식 흔적'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나는 이 표현이 너무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 보아도 이 '좋다'는 시시한 표현만큼 명징한 단어는 없는 것 같다. 호크니는 프랑스 사람들, 그러니까 훌륭한 프랑스 화가들에게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아름다운 흔적을 보았다. 마르케의 작품에서도, 모네의 작품에서도, 피카소의 작품에서도, 라울 뒤피와 앙리 마티스의 작품에서도 이 유연하고 우아한 매력의 프랑스식 흔적이 자유롭게 흐르는 것을 발견한다.
영국 출신의 호크니는 영국 생활의 청교도적인 제약을 견딜 수 없어했다. 그는 약간의 안락함이 있는 보헤미안의 삶을 원했다. 그런 그가 지금 노르망디에 작업실을 만들기도 훨씬 전인 1970년대 중반 파리를 근거지로 삼았을 때, 오래된 보헤미안 파리의 끄트머리 시기를 만끽하는 행운을 가진다. 플로르 카페에서 아침 식사를 한 다음 아파트로 돌아가 점심때까지 그림을 그리고, '근처 소박한 곳들' 중 한 곳에 가서 점심 식사를 한 뒤 오후 5시부터 6시까지 다시 작업을 하고, 이후 다시 플로르 카페나 레 돼 마고 카페에 가는 일과로 파리의 보헤미안적 풍경의 잔향 속으로 녹아들었다.
프랑스가 옹졸한 잉글랜드에 비해 흡연자에게 훨씬 우호적이라는 사실도 호크니를 매혹시켰음이 분명하다.
그런 걸까.
프랑스적인 삶이라는 건, 파리에서 보내는 여유로운 아침 찬연한 햇살의 낮부터 잔잔한 밤까지... 지난 파리의 예술가들로 북적이던 영광스러운 이미지들이 내 머릿속에서 과거의 꽃이 되어 만개한다. 그런 흐드러진 자유분방함 속에서 호크니는 특유의 성격대로 흐트러지지 않는 내적 규율 속에 프랑스적인 보헤미안의 생활을 이어간다. 정말이지 파리에서 그 프랑스식 흔적을 내 몸 내 감각 어딘가에라도 묻혀오고 싶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상상을 한다. 나다운 작업실을 하나하나 완성해 나가는 상상, 책 속 발튀스의 <코메르스생 앙드레의 작은 길> (P.55) 이 있는 페이지를 복층 계단 벽에 붙이는 상상, <나이팅게일의 노래 중 '황제와 신하들'> (P. 233) 이미지로 내 이슬람풍 주방 타일 위에 이질적인 흔적을 남기는 장면을 시뮬레이션해본다.
호크니의 이 책이 미적 흥분으로 가득하길 바라는 나의 공간에도 아름다운 흔적을 남기게 될 것이다. 그 또한 호크니가 이야기한 프랑스식 흔적일 수 있을까?
나는, 호크니 특유의 이 파란 색감에서 일종의 해방감을 느낀다. 과장된 듯 강렬하고 풍부한 원색은 현재를 일탈하고픈 숨겨진 내 관능마저 자극한다. '나의 서사를 만들어 가는 중이다'라며 짐짓 호기로운 척 앞서 지내온 몇 년의 시간들 속에 어제와 다른 잎사귀가 발밑에 바스락거린다.
내 삶에 익숙했던 시절과는 다른 풍경이 찾아왔기 때문일까?
덧대어 책 속에 수록된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던 어떤 '선善'이라는 개념은 '호크니'라는 한 사람이 지닌 '인성'에 기반한 것이 아닐까 싶은 느낌이 내내 들었다. 평생을 걸쳐 자기 관리를 하며 성실히 작품 활동을 해 온 그에게서 진정한 아티스트의 면모를 엿본 것도 같다. 그의 작품보다도 생生의 태도에 존경을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