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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흐름 ing Jan 08. 2024

모든 관계는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시작된다.

프로 깔짝러 인생에 갑자기 찾아든 이변, 꾸준히 써온 일기가 어느덧 일상으로 자리 잡았다.


6개월간 매일 일기를 써보았다. (brunch.co.kr)


처음 시작한 계기는 4년째 연애 중인 내 짝꿍 B였다. B의 회사 동료 중 한 분이 10년 넘게 꼬박꼬박 일기를 쓰고 있는데, 무척 멋있어 보였다는 칭찬을 지나는 말로 흘린 것이다.


우리가 연애를 시작하던 즈음, 나 또한 침대 곁에 메모장을 겸한 일기장을 늘 놓아둔 사람이었다. 그런 내 모습에 한 번 더 반했다던 B. 하지만 언젠가부터 내 손에선 필기구가 멀어진 지 오래였다.


다행히 마음까지 사그라들진 않았던지, 얘기를 듣는 순간 다시금 일기를 쓰고 싶은 욕구가 확 일었다. 그렇게 목표도 계획도 없이 무작정 기록을 시작했다.


B에게 멋진 사람으로 보이고 싶다는 욕구에서 출발했으나, 아이러니하게도 초반에 적은 내용은 대부분 B를 향한 불만이었다. 차마 직접 전하지 못한 말들을 일기장에 써 내려간 것이다.


2023년 여름, 그 당시 우리 관계는 한창 암흑기의 늪에 빠져 있었다. 대화만 시작했다 하면 날이 서서 다툼으로 이어지고, 꽁하게 참고 있자니 마음이 체한 것만 같았다. 게다가 속에서 곪아버린 생각들이 얼마 못 가 더욱 모난 방식으로 튀어나가기 일쑤였다.


그래서 일기장(a.k.a. 욕받이 노트)에다 속풀이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오히려 부정적인 감정을 키우는 행위가 아닐까 걱정했지만, 세상 가장 안전한 장소에서 맛본 해방감이 신선했다. 친한 친구한테 속풀이를 할 때와는 차원이 다른 느낌이었다.


애초에 다른 '사람'에게 험담을 할 때는 단 한 번도 B와의 관계 개선에 도움이 된 적이 없었다. 일시적으로 받은 유치한 위로 또한 찰나의 착각으로 날아갈 뿐, 남은 것은 결국 내 얼굴에 침 뱉기란 자괴감과 죄책감이었으니. 또한 상대의 반응을 유도하기 위해 다분히 의도성을 가지고 늘어놓는 험담이 진솔할리 만무했다.


하지만 일기장은 달랐다.


있는 그대로 솔직한 속내를 표현하면서 '진짜' 내 생각을 직면할 수 있게 되었고, 마침내 그 생각이 몹시 왜곡되어 있었음을 자각했다. 왜곡된 생각에서 감정 또한 이해받을 수 없는 방식으로 분출되었던 것이다.


어긋난 우리 관계가 전부 B의 탓이라고 은연중에 떠넘겼던 나는 결국 우리 불화가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말미암은 것임을 깨달았다. 스스로를 향한 불만을 B에게 투사하고 있었던 거다. 그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고 대화를 시작하자 엉킨 실타래 같던 관계가 조금씩 회복되었다.


사실 일기를 쓰기 이전에도 모든 관계의 시작이 나에게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다만 머리로만 알던 지식을 이제는 일기 쓰기란 작은 실천을 통해 온전히 내 것으로 만든 기분이다.


물론, 요즘도 가끔 B와 자잘한 말다툼을 벌인다. 그때마다 나는 일기장으로 먼저 달려가서 내 생각을 솔직하고 명료한 언어로 표현해 본다. 그러면 자연스레 좀 더 중립적인 시선으로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게 되고, B의 입장 또한 생각해 볼 여유를 얻는다. 당연하게도 그 과정에 감정의 골이 생길 틈은 없다.


내가 사람들에게 일기 쓰기를 강력하게 추천하고 싶은 첫 번째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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