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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허정 Apr 24. 2024

삶은 그렇게 살아낸다

각각의 계절을 읽고

 6년 전, 동생의 입에서 이혼이라는 단어가 나왔을 때 깜짝 놀랐다. 그동안 그런 기색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부모님과 같이 놀러 가거나, 명절에 봤을 때도 동생 부부는 아무 문제없어 보였다. 조카들이나 매제의 표정이 안 좋아 보일 때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동생은 늘 명랑했고 아무 내색도 없었기에 둘 사이의 관계를 눈치채지 못했다.     


  ‘더 같이 살면 죽을 것 같아’라고 말하는 동생에게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바람을 피우는 것도, 돈을 못 벌어 오는 것도 아니지만, 남편의 이기적인 삶에 끌려 지쳐 있었다. 16년을 살면서 혼자 가슴앓이하며 버틴 동생이 대단하게 여겨졌다. 오빠에게 귀띔이라도 했었으면 놀라지는 않았을 텐데, 걱정할까 봐 동생은 아무 말하지 않았다.     



 가톨릭 신자인 어머니는 이혼을 절대 반대했다. 그 옛날, 여자는 결혼하면 시댁의 귀신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계신 분이다. 성당에서 이혼에 대한 부정적인 말들을 하도 많이 들어서인지 거부감은 상상을 넘었다. 어머니는 남자는 어린애와 같다며, 바람을 피우는 것도, 노름하는 것도 아닌데 애들을 봐서 참고 살라고 했다.      

 

동생은 이혼하기 위해 겪어야 할 고통 이외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써야 했다. 어머니의 신념 어린 반대를 보면 인간의 생각이 얼마나 무서운지 느껴졌다. 자신의 딸이 같이 살면 죽을 것 같다는 말에도 어머니는 끝내 공감하지 못했다. 동생은 자신의 결단에 대해 어머니의 지지와 위로 없이 홀로 맞서며 세상과 살고 있다.      



 

권여선의 ‘각각의 계절’이라는 단편 소설집을 읽었다. 여러 소설 중에 ‘실버들 천만사’가 공감이 갔다. 동생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코로나 19 팬데믹으로 일상이 멈춰진 시기에 두 모녀는 1박 2일 여행을 간다. 딸은 시집을 가지 않았지만, 엄마와 살지 않는다. 아빠와 살고 있다. 엄마는 딸이 고등학교 2학년 때 집을 나가 이혼을 했다. 사춘기 딸은 떠나간 집에서 엄마의 부재를 느끼며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다.     

 

 소설에서 엄마의 이혼 사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다. 펜션에서 딸은 엄마의 성향에 대해 듣는다. 엄마는 너무 순해서 부모가 하라는 대로, 시키는 대로 했다고 한다. 자신의 의견을 강력히 주장하고 싸워서 무엇을 얻어내지 못한 성격이었다. 아무것도 못 바꾸고 아무것도 안 바뀌는 상황을 타개하는 방법으로 도피를 택했고 그것이 엄마가 결혼한 이유였다.      

 

 엄마는 스물다섯에 결혼을 했다. 18년 결혼 생활을 했지만 이렇게 살면 죽을 것 같아서, 죽기 전에 자신을 회복하고 싶어서 이혼했다. 친정 부모는 이혼을 결사반대했다. 복에 겨워 돈 잘 버는 남편과 잘난 아들을 내팽개치고 이혼한다며 이해하지 못했다. 동생의 이혼이 겹쳐졌다. 동생도 바뀔 수 없는 사람과 바뀌지 않는 상황을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고 결국, 살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엄마는 딸과의 대화 중에 자신의 머리를 젤처럼 반투명하게 변화시킨 물고기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 물고기는 깊은 곳에 살며 자신의 위로 다니는 큰 물고기에 먹히지 않기 위해 스스로 머리를 투명하게 바꾼다고 했다. 생존을 위해 물고기는 변신하였지만, 엄마는 도피하였다. 인간은 바뀌지 않기 때문에 도피가 현실적일 수 있다.

     

 딸은 엄마의 이혼으로 혼란스럽다. 사춘기 시절 겪은 부모의 이혼, 엄마가 없는 상황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했다. 이혼 당사자인 부모도 감당하기 어려운데 하물며 자식은 어떠할까? 딸은 엄마를 이해한다고 하지만 원망과 안타까움의 혼란 속에서 살았다. 불안한 그녀의 생각이 미래완료처럼 되는 현실을 불안하고 두려워했다. 엄마의 부재에서 오는 외로움과 나아가 죽음까지 걱정하며 아파했다.  

    

 엄마는 아파하는 딸을 생각하며 도피하고 끊어내며 살았던 자신을 돌아본다. 고통스러워 피하며 살았지만, 이제는 딸과 악몽이라도 같이 꾸고, 머리도 반투명하게 젤리화 하려고도 한다. 끊어내고자 했던 인연의 실을 단단히 동여 매, 딸의 아픔을 같이 이겨내려는 새로운 다짐을 한 것이다.      



 

 소설에서 엄마의 선택이 도피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고 자신의 삶을 찾기 위한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여겨진다. 모성애 강한 여성이 이혼을 선택하는 것을 이기적으로 볼 수 있지만, 집단주의적 사고에 갇힌 우리는 더 잔인하게 대했는지 모른다. 이혼이 최상은 아니지만, 과거의 사상과 종교, 세계관에 갇혀 개인의 행복이 억제되고 인내되어야 하는 것이 더 이상 미덕이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주인공인 엄마는 나이 들어 육체적으로 힘든 시기에 들어섰다. 비정규직으로 사는 삶은 경제적으로 고단하게 느껴지지만 자신만의 방식으로 살아가고 있다. 좋은 음식 솜씨를 발휘하여 반찬 가게에 음식도 납품한다. 딸은 그러한 엄마를 대단하게 여기며 지지하고 사랑한다.      

 

 동생도 딸들의 지지를 받으며 잘 살아내고 있다. 머리로 생각할 때 사는 것이 어렵지 살면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이 우리네 삶이다. 드러나지 않지만 서로에 대한 사랑이 각각의 계절을 나게 하고 삶은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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