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동안 174개의 전시를 봤다. 그중에서 딱 5개만 고른다면?
2022년에 135개의 전시를 봤다는 걸 깨닫고, 좀 과하다 싶어 2023년에는 줄여보자는 다짐을 했었다. 작년을 돌이켜보면서 그래도 좀 덜 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세봤다. 그 결과는 174개. 전년 대비 28% 증가. 투자 수익률이 이렇게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한 달 평균 14개, 일주일 평균 3.3개, 하루 걸러 하나꼴로 전시를 본 셈이다. 각설하고 '내 맘대로 꼽은 2023 전시 TOP5‘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1. 더페이지갤러리 <이수경 :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깨진 도자기 조각들을 금으로 이어 붙여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은 작품들을 보다 보면 가만히 위로를 받는 느낌이 든다. 내가 깨지고, 부서지고, 박살 나고, 산산조각이 나더라도, 이를 귀히 여기고 다시 이어 붙일 의지만 있다면 깨지기 전보다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고 말해주는 것 같아서.
그중 <번역된 도자기 :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은 한눈에 담기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데, 그 크기가 나를 찍어 누르는 느낌보다는 쓸모없어진 것들이 모여 이를 더 크게 전복시킬 수 있다는 희망처럼 느껴졌다.
2. 가나아트센터 <노은님 : 내 짐은 내 날개다>
22년에는 프리즈에서 만난 ‘이배’ 작품에, 23년에는 가나아트센터에서 만난 ‘노은님’ 작가의 작품에 빠졌다. 얼핏 보면 아이가 그린 그림처럼 보이는데 묘하게 시선을 끈다. 초기엔 어딘가 고독과 외로움이 느껴지는 그림에서 점점 천진난만하며 생동하는 그림으로 바뀌는 느낌이었다.
전시장엔 다큐멘터리 영상이 흘러나왔는데 작가님 인터뷰를 보니 그 삶이 만만치 않았다. 그럼에도 아이 같은 순수함과 거침없는 자유로움을 화폭에 담아내는 게 새삼 더 노은님 작품에 빠져들게 되었다.
3. 호암미술관 <김환기 : 한 점 하늘>
리움미술관이 마우리치오 카텔란으로 화제를 달구고 있을 때, 호암미술관 재개관을 기념하여 김환기 회고전을 띄우니 이건 미쳤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김환기의 초기작부터 뉴욕 시기의 점화까지 김환기라는 예술가를 총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전시였고, <우주>, <산울림>, <하늘과 땅> 등 유명한 점화 작품들이 다 모여 있어서 전시 보는 내내 행복했다.
뚜벅이라 셔틀버스를 운행해 준 리움에 절을 하고 싶은 마음이었고, 바쁘다는 이유로 이 전시를 다시 보러 가지 못한 게 유일한 아쉬움이었다.
4. NACT <차이궈창 : 우주 속의 산책-원초적 불덩이 그 이후>
도쿄 겐다이를 보러 도쿄에 갔을 때 배경 지식 없이 봤던 전시. 화약을 활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게 신기해서 한참을 구경했었다. 캔버스나 유리 위에 화약을 터뜨리고 난 다음에 남은 잔해들로 이미지를 표현한 작품들과, 화약으로 하늘에 사다리를 띄운다거나 하는 퍼포먼스를 담은 영상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동일본 대지진 때 피해를 본 이와키 주민을 위해 만든 대규모의 불꽃 퍼포먼스 <하늘이 벚꽃으로 물들었을 때>는 영상으로만 봐도 너무 감동적이었다.
4. 송은 <울리 지그 중국현대미술 컬렉션전>
이 전시 때문에 홍콩에 더 가고 싶어졌다. 울리 지그는 중국에 미술 시장이랄 게 없던 때부터 중국 현대 미술을 컬렉팅하기 시작하여, 2012년 본인 컬렉션의 2/3에 해당하는 1,510점을 홍콩 M+미술관에 기증한다. 국가 단위에서 할 일을 개인이 해냈다는 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아이 웨이웨이 전시 이후로 이번 송은 전시에서 중국 현대 미술이 더 다양하고 흥미롭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홍콩 가고 싶다 노래만 불렀는데 올해는 홍콩 아트바젤 꼭 간다.
작년 봄에 친구랑 대화하다가 “네가 하지 않고서는 못 배기는 일이 뭐야?”라는 질문을 받았다. 거기에 답이 있을 것 같다면서. 전시, 좋아하긴 하는데 뭔가 좀 찝찝하다. 일에서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채우려고, 아귀처럼 전시에 매달리는 거 아닐까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그간 전시를 보러 다니고 소비하기에 급급했는데, 이걸 바탕으로 내가 무언가 생산해 보면 달라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종종 친구들에게 전시를 소개해주고, 같이 보러 가자고 하는 편이었는데, 거기서 좀 더 나아가보고 싶어졌다. 좋은 전시를 좋은 글로 소개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들었다.
그래서 브런치를 시작해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