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를 보러 가는 일은 소개팅과 비슷하다
너는 전시장에서 작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
내가 1년에 전시를 100개 이상씩 보러 다니는 걸 아는 친구들은 종종 내게 이런 질문을 한다. 자기는 전시를 보러 가면 작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해야 될지 모르겠다면서. 혹은 내가 전시를 같이 보러 가자고 제안을 하면 이런 말을 하며 걱정을 한다. 자기는 예술을 잘 몰라서 너랑 같이 보러 가도 될지 모르겠다고. 그때마다 나는 "그냥 보는 거지. 거창한 생각 안해."라고 대답한다.
'전시 보는 걸 왜 어렵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을 하다가, 나도 처음부터 미술관과 갤러리를 뻔질나게 돌아다녔던 게 아니라는 걸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가장 큰 문제라는 생각에 다다르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술 사조나 작가의 생애 같은 걸 잘 알아야 작품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는 그 생각에 부담감을 느끼지 않았을까.
전시 보는 건 소개팅이랑 다를 게 없어
전시를 제대로 보려면 공부를 하고 가야 될 것 같다는 친구들에게 내가 하는 말이다. 소개팅하러 가듯이 전시 보러 가라고 권한다. 우리가 소개팅을 받을 때, 그 상대방에 대해서 모든 정보를 알고 가는가? 사진, 나이, 키, 직업 정도의 정보만 갖고 우리는 이 사람을 만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일이 대다수이다. 만나서 사람이 괜찮으면 애프터를 하는 거고, 아니면 마는 거고 하는 정도의 마음으로 그 자리에 간다.
전시도 마찬가지이다. 그 작가와 소개팅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 작가의 작품이 내 마음에 들지 안들지도 모르는데, 벌써부터 공부해야 할 것 같고 좋아해야 될 것 같은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그리고 다들 괜찮다고 하는 사람이 막상 내게는 와닿지 않는 경우가 있는 것처럼, 다들 최고라고 하는 피카소 작품도 내 눈에는 감흥이 없다면 굳이 옆사람처럼 감탄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
전시 보는 건 그저 여가 생활 중에 하나인데
왜 전시를 볼 때 생산성과 인사이트를 따질까
수다를 떨거나, 영화를 보거나, 운동을 하거나, 공연을 보거나, 경기를 보거나, 음악을 듣거나 등 다른 방식으로 여가 시간을 보낼 때는 그걸 하면서 어떤 인사이트를 얻어야 된다는 강박을 느끼는가? 그런데 전시를 보면서는 무언가를 느끼고 알아가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시를 보는 것도 그냥 재밌자고 하는 건데, 거기서 뭘 더 얻으려고 해야 될까?
처음에는 나도 그래도 좀 공부를 하고 전시를 봐야 하지 않을까라는 마음이 있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전시 하나 보는 것이 버겁게 느껴지고, 그 다음에는 미술관에 발걸음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 다음엔 도슨트 시간에 맞춰서 보러 갔다. 도슨트가 설명해 주니 딱히 알아보지 않고 보러 가도 돼서 편했다. 그러다가 도슨트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보러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매년 100개 이상의 전시를 보러 다닌다.
좋아하는 작가가 있어서 전시를 보러 다닌 게 아니라,
전시를 보러 다니다 보니 좋아하는 작가가 생겼다
소개팅 한 번에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는 말처럼, 전시를 볼 때마다 매번 푹 빠져서 보지는 않는다. 이 전시 저 전시 보다보면 눈길이 가는 작품을 만나게 되고, 그 작가의 전시가 열린다면 한 번 더 찾아가게 되고, 작품 설명을 읽거나 도슨트를 들어보고, 더 마음이 가면 인터넷에서 작가를 찾아보고, 그렇게 좋아하는 작가가 한두 명 생기기 시작한다. 처음부터 취향이 있었던 게 아니라, 보다보니 좋아하는 작가들이 생겼고, 그들을 모아놓고 보니 내 취향이라고 할만한 게 보이는 느낌이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전시에 재미를 붙이는데 도움이 되는 말도 아니다. 흥미가 생겨야 알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겠는가. 그간 주변 사람들에게 전시 얘기를 꺼냈을 때, 가장 많이 들었던 얘기라서 한번은 꼭 얘기해보고 싶었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는 그냥 별 생각없이 가봐도 좋은 곳이라고. 기대 없이 봤을 때, 내가 이런 작품을 좋아했구나 하고 알게 되는 즐거움이 있다고.
그래서 이 글은 전시 보러 가자고 영업하는 글이다. 이번 주말에 같이 전시 보러 갈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