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드라마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보고
MBC에서 방영한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재미있게 보았다. 본방사수라는 말이 어색한 요즘이지만 나는 종영할 때까지 본방사수했다. 재미있는 드라마는 왜 동시에 방영할까? 처음에는 <지옥에서 온 판사>와 <정년이>와 방송시간이 겹쳐 고민했고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를 선택했다. 이 드라마는 딸이 사람을 죽였다고 의심하는 베테랑 프로파일러 장태수 ( 한석규 분)와 다른 사람들과 조금 다른, 거짓말이 공부만큼 쉬운 딸 장하빈( 채원빈 분)의 이야기다.
연기가 (유행어로 말하자면 ) 찢었다. 좋아하는 한석규 배우 보려다가 새로운 얼굴 채원빈을 발견했다. 23세의 어린 배우가 관록 있는 배우에게 전혀 밀리지 않는 연기를 하더라. 대단하다, ’ 부녀스릴러’에 걸맞게 아버지와 딸의 장면은 매번 팽팽한 긴장감을 느꼈다. 이 드라마 방영후 ‘한석규가 한석규 했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한석규 배우의 연기는 여전히 최고였다. 눈빛과 몸짓만으로 그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알겠더라. 뒷모습도 연기를 하더라. 대사 한 마디 하지 않는데도 말이다. 자칫 상대의 연기가 미숙하면 한석규 배우가 연기하는 캐릭터만 보여 모양새가 이상해질 수 있는데, 딸 역할을 한 채원빈의 연기도 뛰어났다. 무표정하고 서늘한 연기, 정말이지 최고였다. 아마 채원빈 배우가 연말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지 않을까? 두 배우뿐만 아니라 다른 출연자들의 연기도 다 좋았다. 배우들의 연기에 속아 등장인물들을 돌아가며 한 번씩은 의심했다. 드라마를 볼 때는 한예리 배우의 연기가 조금 아쉬웠는데, 종영 후 다시 생각해 보니, 배우는 역할에 충실했고 나는 그 역할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 같다. 피의자의 사정은 고려하지 않고 매뉴얼대로 수사하는 모습이 정 없어 보였다. (형사는 그래야지. 암만)
영상도 좋았다. 본래 어두운 영상을 좋아하지 않는다. 잘 보이지 않아 뭔가를 놓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실제로 놓치는 부분이 많다. 놓치지 않으려고 신경 쓰다 보면 눈이 빨리 피로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드라마는 그런 생각이 전혀 들지 않았다. 어찌나 몰입하고 보았던지 어두운 화면을 불평할 새도 없이 시간순삭이더라. 사건은 매번 어두운 밤에 일어나고, 주인공 부녀의 집은 밥이 코로 들어가도 모를 정도로 어둡다. 도리어 장태수 형사의 일터인 경찰서가 집보다 더 밝았는데 주인공의 심리를 표현한 연출인 듯하다. 마지막 회에 밝아진 주인공의 집을 보여주는데 깜짝 놀랐다. 온통 거무튀튀하고 칙칙한 가구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저렇게나 밝고 환하게 밝은 집이었다니. 크고 기다란 식탁의 양 끝에 앉아 밥을 먹는 두 부녀의 모습, 딸의 방문 앞에서 차마 문을 열고 들어가지 못하는 아버지의 뒷모습은 영상만으로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미친 연기와 영화 같은 영상은 연출의 힘이다. 배우의 연기와 연출에 속아 등장인물들을 돌아가며 의심했다. 초반에는 누가 범인일까? 설마 장하빈이 주인공인데 범인은 아니겠지? 드라마를 볼 수록 장하빈이 진범 같아서 한숨, (범인 아니길 진심으로 바람) 하빈이 엄마가 죽였다고 설마? 하빈의 학교 박준태 선생님도 의심스러운데? 중반부터 특별출연한 유오성 배우가 범인인가? 유오성 배우는 악역 전문 배우니까 범인 맞나? 하빈이 아빠이자 형사인 장태수는 딸이 범인이라면 잡을 수 있을까? 그건 그렇고 하빈이는 프로파일러 아버지의 피를 고대로 물려받았구나. 무슨 고등학생이 이렇게나 치밀하냐? 어느 정도 범인의 윤곽이 잡히고 나서는 죽인 이유가 궁금했다. 왜 죽였을까? 이유가 있나? 미필적 고의인가? 하빈은 엄마를 자살로 몰고 간 사람들을 찾아내 복수하려고 하는 건가? 복수가 끝나면 하빈도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것 같아 조마조마했다. 연쇄 살인범의 범인이 가출팸 아이들이 살고 있는 집주인아주머니일 줄은 몰랐다. 의심스럽기는 했지만 설마설마했다. 진범의 조력자이거나 범인을 알고도 모르는 척한다고 추측했다가 뒤통수를 세게 맞았다.
10부작인 게 다행이었다. 보통 드라마처럼 16부작으로 했으면 느슨해질 뻔했다. 아버지 장태수와 딸 장하빈이 화해한다. 하준이의 죽음에 하빈이 연관되었다고 의심했던 아버지는 그때 진실을 물어보지 못해 미안하다고 한다. 범인 찾기에 온통 집중했던 나에게 드라마가 메시지를 툭 던진다. 소통과 신뢰. 서로 신뢰하고 소통했으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건이었다. 의심이 가더라도 넘겨짚지 말고 추측하지 말고 내 마음대로 해석하지 말고 물어보면 좋았을 텐데. 재미와 메시지가 잘 어우러진 멋진 드라마였다.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근데 궁금한 게 몇 가지 남았다. 범인 김성희와 가출팸의 대장 최영민, 박준태 선생님의 관계가 이해되지 않는다. 어떻게 만났고 무슨 관계일까. 김성희는 최영민의 돈을 뺏기 위해 그를 죽이는데, 평소에는 최영민에게 툭하면 얻어맞고 시키는 대로 하며 꼼짝도 못 했다. 그래서 조력자인 줄 오해했지 뭐야. 박준태 선생이 김성희에게 보여주는 지고지순한 사랑도 당체 이해가 되지 않더라. 불우했던 어린 시절과 연관이 있나? 아~ 도대체 뭔데? 구대홍 형사(노재연 분)가 왜 그렇게 감정적으로 피의자 편에 서서 수사하게 되었는지는 잘 설명해 놓고는 김성희, 최영민, 박준태의 서사는 시청자의 몫으로 남겨 놓았을까? 나쁜 놈의 서사를 보거나 읽으면 이해하는 마음이 들 때가 있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한 연출이었나. 어머나, 그래? 역시 대단한 연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