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겠다. 재미있게 읽었는데 작가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도통 모르겠다.
모르겠다. 하나.
이 소설집을 왜 연작소설집이라고 하는지 이해가 안 된다. 연작소설은 영화로 치면 옴니버스라고 할 수 있다. A작품의 조연이나 엑스트라가 B작품의 주인공이 되고 그러면서도 일관된 주제를 이야기하는 걸로 아는데 아니었나? 일단 주제는 같아 보인다. 등장인물의 연결이 전혀 없어 보이는데 왜 굳이 연작소설이라고 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꼼꼼하게 살펴보니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뉴욕 헌터칼리지에서 어학연수를 했던 수진은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에 나오는 로언의 먼 친척이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는 이혼한 작가가 등장한다. 그의 전 부인 이름이 수진이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의 주인공 수진과 동일인물인지 아닌지는 확실하지 않다. 소설 4편의 배경이 모두 뉴욕이라는 것 말고는 연결고리가 없다. 그래 뭐, 연작 소설인지 아닌지가 뭐가 중요하겠나. 그야말로 뭐시 중헌디.
모르겠다. 둘
소설의 모든 배경을 왜 뉴욕으로 했는지 궁금하다. 작품의 주인공들은 모두 떠나고 싶어 한다.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의 승아는 잡지사의 계약직 사원이다.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을 밀어낸다고 생각한 그는 자신의 상황에서 벗어나려 한다. <장미의 이름의 장미>의 수진은 자신을 둘러싼 세계뿐 아니라 수동적이고 소심한 자신에게서 도망치고 싶었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의 현주는 영어공부와 잘 써지지 않는 글을 쓰겠다는 핑계로 뉴욕에 여러 번 온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는 작가의 뉴욕행에 동행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젊은 나이에 남편을 잃고 두 아이를 키운 어머니는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고 사는 나날이 지겨워서 다 팽개치고 도망이라도 가고 싶다’고 일기에 쓴 적이 있다.
뉴욕은 동경의 도시이다. 뉴욕은 모르지만 알고 있는 듯한 착각을 준다. 소설, 영화, 드라마와 뉴스 덕분에 낯설지만 익숙하다. 뉴욕은 이방인들을 품는 도시인가? 예전에는 그랬는지 몰라도 지금은 아니다. 동경했던 뉴욕에서 부딪치는 불편함, 소통의 어려움, 인종차별이 소설 곳곳에서 볼 수 있다.
나도 가끔은 다 던져 버리고 낯선 공간으로 떠나버리고 싶을 때가 있다. 어디가 어디인지는 확정할 수 없지만, 뉴욕은 아닐 것 같다. 뉴욕은 너무 멀고 돈이 많이 필요하고 영어를 해야 한다. 떠나고 싶다고 휙 하고 쉽사리 갈 수 있는 곳이 아닌 뉴욕이 배경인 이유를 잘 모르겠다.
모르겠다. 셋
작가는 무슨 말을 하고 싶었을까.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사람들이 뉴욕으로 도망(?)을 갔고, 막연히 동경했던 뉴욕은 한국에서의 상황보다 더 나을 게 없다. 도리어 불편하고 불합리해 보인다. 최첨단 도시 뉴욕의 오래된 집들은 집에서 빨래를 할 수 없다. 집에서 세탁기를 돌릴 수 없다니?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다른 곳에 가면 내 삶이 조금은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는 기대에 그친다. 이 것이 작가의 메시지일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은 아닐 테고, 우리가 상상하고 동경하는 뉴욕의 본모습을 보여주려고 했나? 글쎄다.
4 편의 소설에서 뉴욕으로 간 등장인물들은 한결같이 영어를 잘하지 못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 소통이 쉽지 않다. 게다가 한국어를 쓰는 이들과도 소통이 힘들다. <우리는 얼마동안 왜 어디에>의 승아와 민정은 자신의 이야기를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다.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서 수진과 어학원에서 만난 마마두, 두 사람 모두 모국어를 두고 영어로 대화를 하니 영어회화책에 나올 만한 대화를 주고받을 뿐이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의 현주도 연인과 친구들과 술 마시며 알아들은 척 웃고 떠들 뿐이다. <아가씨 유정도 하지>에서는 동일한 단어의 의미를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장면이 나온다. 그렇다면 소통의 부재가 이 작품의 주제일까.
취한 현주는 자신이 앞으로 무엇을 쓸 수 있을까 생각했다. 이 도시에 대한 이야기는 쓰지 못할 게 확실했다. 이곳은 모두에게 열려 있는 듯 하지만 문이 하도 많아 좀처럼 안쪽으로 들어갈 수는 없는 도시. 언제까지나 타인을 여행객으로 대하고 이방인으로 만드는 도시였다. 처음에는 환대하는 듯하다가 이쪽에서 손을 내밀기 시작하면 정색을 하고 물러나는 낯선 얼굴의 연인 같았다.
<양과 시계가 없는 궁전>중에서
“ 여기서 오래 혼자 살다 보면 그냥 친절한 건지 특별한 감정인지 잘 구별 못하게 돼. 자기들이 선을 그어놓고 그 바깥에 있는 사람함 테 친절하게 보이려는 사람들이 좀 있거든.” 승아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디 살든 다 마찬가지 같아. ” 다음 순간 승아의 얼굴에도 웃음이 떠올랐다. “그럴 때면 말이야. 왜 얼마 동안 어디에를 생각해 봐. 거기에 대답만 잘하면 문을 통과할 수 있어. ”
<우리는 왜 얼마 동안 어디에>중에서
”김선생님이 잘 아는 사람이라고 하지 않았나요?” “그 정도면 잘 아는 사람이죠. 여긴 교민. 커뮤니티예요. “ 김 선생의 말투는 변명보다 훈계조였다 “여기는 각자가 알려주고 싶은 만큼만 알면서 살아요. 그게 잘 아는 거예요.”
<아가씨 유정도 하지> 중에서
마음에 들어오는 문장 몇 개를 정리하다, 관계라는 공통점을 찾았다. 잘 알고 있는 줄 알았는데 아무것도 아닌 관계, 나는 배려를 담은 호의였는데 상대는 간섭으로 여기는 관계, 때와 장소에 맞춰 변하는 관계 등등이 읽힌다. 공허한 관계를 말하고 싶었나? 그렇다면 굳이 뉴욕을 배경으로 하지 않았어도 되었을 텐데 말이다.
모르겠다. 넷
재미있게 읽은 작품이다. 생각할 거리도 있었다. 그럼에도 나는 작가의 메시지를 잘 모르겠다고 징징댄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뉴욕을 배경으로 한 여행 연작소설이라는 말엔 뉴욕 구경을 실컷 하나 싶어 솔깃했는데 그렇지 못해 심술인가? 그럴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