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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된다는 것의 잔혹함에 대한 이야기

존 코널리의 <잃어버린 것들의 책>을 읽고

by 송알송알

제목만 보고 책이야기인 줄 알았다. <건지감자껍질파이 북클럽>이나 <그레구아르와 책방 할아버지>처럼 책을 둘러싼 따뜻하고 다정한 이야기를 상상하고 책을 펼쳤다가 식겁했다. 아니면 잃어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이니 따뜻하지는 않아도 아련한 그리움이려니 했었다. 거 참, 피비린내가 너무 많이 나는 것 아닙니까요? 존 코널리가 유명한 스릴러 작가인 줄 알았으면 이런 착각을 안 했을 텐데 말이다.


어린 시절, 동화 세상에 가 본 적은 없지만 무서운 꿈을 꾼 기억이 있다. 꿈속에서는 툭하면 이유도 모르고 쫓기고 그랬다. 가뿐하게 담을 뛰어넘고 높은 나무에 올라 숨어있거나 생전 타보지도 않은 말을 타고 하늘을 날아 도망 다녔다. 잡힐까 봐 바들바들 떨었지만 잡힌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스스로 나무나 벼랑에서 떨어졌으면 떨어졌지. 높은 곳에서 툭 떨어지면 잠에서 깼다. 어른들은 그런 나를 보고 키가 크려나 보다 했다.


오랫동안 아팠던 엄마의 죽음, 갑작스러운 아빠의 재혼, 새엄마와 갓 태어난 동생을 12살 소년 데이빗은 받아들이기 힘들다. 두려움, 외로움, 원망과 분노로 데이빗은 현실을 점점 멀리하고 홀로 동화책을 읽으며 지낸다. 어느 날 동화 속 세상으로 가게 된 데이빗은 여러 사건을 겪으면서 어른의 마음과 현실 세계를 조금씩 이해하게 된다.


이야기는 조마조마하고 흥미진진하다. 뚱뚱한 백설공주는 난쟁이들을 학대하고 난쟁이들은 백설공주와 함께 살기 싫어하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이야. 빨간 모자가 늑대를 유혹해서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가 동화 세상의 왕을 몰아내고 자신이 왕이 되려고 한다니 입이 떡 벌어진다. 데이빗은 살인을 2번이나 하게 되는데 자신이 살기 위해서 어쩔 수 없었다. 살다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 생긴다는 것을 받아들이게 된다. 데이빗을 도와주던 숲사람은 죽은 엄마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새로 생긴 가족을 위해 작은 일이라도 하는 것이 훨씬 좋다고 말해준다. 데이빗이 현실로 돌아가기 위해 온갖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데이빗은 사랑, 슬픔, 이별, 두려움, 용기를 배운다. 그렇게 데이빗은 성장한다.


어른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무언가를 잃어버리고 다른 무언가를 얻는 것이다. 얻은 것은 죽음의 공포, 삶의 두려움, 밥벌이의 고단함, 쉽게 믿지 못하는 마음, 이별의 불가피함, 책임감 등등이다. 잃은 것은 무엇일까. 무언가를 잃었다는 인식도 없었다. 한계 없이 꿈을 꾸던 마음, 내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었던 자유, 세상 모든 사람들은 선하다고 믿었던 순수한 마음, 무조건 잘될 거라고 믿었던 대책 없는 자신감 등등은 어른이 된 지금은 가지고 있지 않다. 잃어버린 것들에 비해 얻은 것들을 보니 서글플 정도로 잔혹하다 싶다. 하기사 삶이 바로 잔혹동화다. 안 그런가? 어른이 되어 좋은 점도 많은데. 이 책의 영향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정말이지 잔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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