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관심사 vs 나의 취향

바이올린 연주자 양성 실패기 1

by in a steady way

다음 대화문을 읽고, 보기에서 옳지 않은 내용을 모두 고르시오.


[대화문]

엄마: 우리 이제 1학년이 되었으니 악기를 한번 배워볼까?

아들: 악기요?

엄마: 응! 새로운 걸 배워볼 거야. 잘 다를 줄 아는 악기가 있으면, 나중에 굉장히 멋진 어른이 된단다.

아들: (잠시 고민하다가) 그럼, 엄마가 골라주세요

엄마: 바이올린은 어때? 이번 방과 후 수업에 있던데.

아들: 네, 상관없어요.


[보기]

가. 아들은 어떤 악기라도 배워낼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

나. 엄마는 아들에게 삶을 윤택하게 해 줄 인생의 ’소중한 유산‘을 전해주려 한다.

다. 아들은 아직 관심 있는 악기가 없으니 엄마의 조언을 충실히 따르려 한다.


정답은

.

.

.

.

가, 나. 다.


그럼 보기를 정확한 표현으로 고쳐보자.


가. 아들은 어떤 악기에도 관심이 없다.

나. 엄마는 아들의 관심사 보다 엄마 본인이 원하는 악기를 배우기를 강요하고 있다.

다. 엄마의 눈빛을 보아하니 ‘다 정해진 분위기’인 듯하여 효도하는 마음으로 일단 시도는 해보려 한다.


맞다. 나와 큰 아이의 이야기다.




내 꿈은 <카이스트 교내 오케스트라 바이올린 연주자>를 아들로 둔 엄마였다. 너무 멋지지 않은가? 아들을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한 공학도'로 키워낸 어머니!

@KAIST Orchestra facebook


‘이다’가 아니라 ‘였다’라고 표현했으니, 실현 불가능한 일임이 드러났다. 자세히 표현하자면 ‘바이올린 연주자’로 키워내는 것이 글러먹었다. 아이가 악기를 당근마켓에 내어 놓아 달라고 했다. 확실한 의사표현이었다.




나라고 처음부터 바이올린 배우는 것을 무작정 강요했던 건 아니다. 1학년, 2학년때는 방과 후 수업에서 악기를 접해보는 정도로 시작했다. 바이올린을 제대로 배우려면, 최소 한 타임당 50분, 주당 두 타임 레슨은 받아야 한다는 게 대세 의견이다. 우리 동네에는 악기를 가르치는 학원이 차량 운행을 하는 곳은 거의 없으며, 바이올린 레슨이 가능한 학원들은 도보 접근이 불가능하였다. 아이에게 '자연스럽게 접하게 해 주겠다'는 포장 이면에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 존재했다.



3학년, 4학년 시절은 코로나 직격탄으로 학교 정규 수업은 물론 방과 후 수업도 거의 폐강되었다. 그나마 비대면이 가능한 ‘논술수업’만 열렸기에 바이올린 케이스에는 먼지만 쌓여갔다.



코로나 기세가 조금 꺾일 무렵, 숨고에서 선생님을 모셨다. 선생님은 레슨을 하러 오시는데 악기 없이 작은 손가방만 들고 오셨다. 주말에 다른 일정이 많아서 일요일 아침 9시에 레슨을 부탁드렸는데, 다른 예고 입시생 새벽 레슨과 선생님의 컨디션 난조로 레슨 시간을 변경하는 일이 잦았다. 경기 남부 일대 여러 곳에서 방문 레슨을 하시는 분이라 선생님의 공강 시간과 이동시간을 고려하여 보강수업을 잡기도 쉽지 않았다.




“오늘 선생님 아프셔서 레슨이 없어!”

“엄마 그럼 아침에 농구하러 가도 돼요?”


아이의 표정이 밝아지는 건 그저 일요일 아침에 친구들이랑 놀 수 있는 '보너스'가 주어져서라고 생각했다. 내키지 않는 바이올린 레슨을 받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라고 믿고 싶지 않았다. 엄마랑 같이 일주일 동안 열심히 연습했으니 감히 '땡땡이치거나 레슨을 거부하는 그런 불경한 마음'은 가져서는 안 되었다.



지나서 생각해 보니 내 욕심에 눈이 먼 첫 번째 모먼트였다.



당근마켓에 내놓은 바이올린. 빨리 팔리지 않아서 더 속상한 건 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