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경이 Feb 23. 2024

짧지만 강렬한 시작

 2. 남의 덕에 산다- 진짜영국영어!

내가 좋아하는 영국 억양, 또록또록한 목청으로 거침없는 진행자의 목소리. 이런저런 잡생각할 새도 없이 흐르는 영어. 권주현의 말길을 따라 머릿속에 영어의 물결이 작게 일어나기 시작했다. 단어를 바꾸며 반복되는 리듬에 이끌렸다. 해보지 않을래? 해봐. 싫어? 그럼 그냥 듣기만 해요. 재밌지 않나요, 하고 싶었잖아요~, 즐거운 강요, 권유와 초대. 마음이 움직인다. 이 반복은 견딜 것 같은 느낌.     

  

점점 집중하게 되었으며 누워서 듣다가 일어나기를 시도한다. 비뚤배뚤 끄적거리다가 공책에 잘 쓰고 싶어진다. 연필로 마구 받아썼다가 복습하며 고친 다음에 볼펜으로 예쁘게 쓰기, 영어를 붙잡아 앉히는 감각. 머리와 손을 통해 의미가 형상화되는 느낌, 에구 재밌어. 그리고 교재를 사야지. 배우는 자의 기본. 강의에 대한 감사이자 공부하는 자가 지불해야 할 아름다운 대가. 솔솔 뿜어나오는 재미, 맛으로 우러나는 즐거움, 자미滋味! 그냥 사는 거다, 공부가 아니라. 삶의 일부.  

   

하지만 내 입으로 제대로 영어를 발음하여 알맞게 소리내기까지는 훨씬 시간이 걸렸다. 심리적으로 영어라는 것이 완전히 받아들여져야 입으로 나오기 때문. 각자의 영어 역사가 다르기 때문이다. 인연 혹은 관계맺음의 정도, 숨어 있는 미움과 혼란스런 사랑이 합의를 보는 시간이 필요하다. 마침내 가랑비에 젖듯 발음은 점점 또렷해지고 소리는 커진다.  나-지진아-영어바보의 EBS듣기. 랄랄라~    

 

그리고 아름다운 것; 방방곡곡에서, 외국에서도 함께 들으며 게시판을 채워가는 사람들, ‘반디게시판'과 공부 친구들이다. 강의를 들으면서 그들이 곧장 써서 올리는 단어, 구절 또는 문장 들, 그 말없는 격려는 참 도타웠다. 이렇게 공부가 재미났던 적은 결코 없었다. 조용히 느끼는 감사는 세상에 대한 믿음.  종종 오가는 가벼운 인사, 보이지 않는 사람들의 숨소리, 은은히 전해지는 마음. 무언으로 대화에 참여하는 것이 난 참 좋았다. 남의 집 열린 창문에 서성거리는 내 앞에 누군가 놓아준 한 잔 커피향기 같은. 아하, 이런 거였어? 어쩌면 반디님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이 글을 시작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특히 ‘김*범’님. 매일의 주제 구문을 다양하게 활용한 대화문을 만들어서 공부의 재미를 배가시켰다. 일요일 복습시간마다 그것을 옮겨쓰면서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즐겁고 소중했는지. 영어로는 이렇게 표현하는구나... 그의 영어실력에 놀라고 자랑을 비치지 않는 면모에 존경심이 일었다. ‘차*자’님은 언제나 게시판을 지키듯 공부하는 선배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당신을 통해 힘을 얻는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계실 거다. ‘사람은 (서로) 남의 덕에 산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그건 이미 진리였던 것! 그리고 권주현과 함께 내용에 알맞은 재미난 상황을 만들어낸 진짜영국영어 팀원들! 기발한 상상력으로 자주 나를 놀래켰다. 터지는 즐거움! 얼마나 힘들고도 신났을지. ‘보람’이란 말뜻이 훤히 보였다. 애쓰셨어요, 고맙습니다.   

   

2022년 2월말, 그렇게 몇 달 사랑에 빠졌던 이 진짜영국영어 방송이 끝난다는 걸 알았을 때... 나는 화가 났다. 다른 강좌는 몰라도 이것만은 살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영어공부로 유혹하기 좋은 강의인데...하며 안타까웠다. 그러나, 그건 내 생각일 뿐. 비슷하지만 어느 부분 전혀 다른 게 사람인걸. 운영은 EBS의 몫, 전체 상황에 대한 판단과 편성은 내 몫이 아니니. 안녕~ 짧지만 강렬한 시작! 권주현샘, 땡큐여유~, 증말로 고마뷰~! 상쾌하게 맘껏 달리고 흐르는 목소리의 힘, 알고 있었죠? 당신 멋쟁이~!      

작가의 이전글 영어는 나와 무관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