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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Feb 25. 2024

낯선 땅에 새 뿌리를

3. 넘치는 자신감-진짜미국영어?

진짜영국영어가 끝나고 시작된 강좌는 ‘진짜미국영어’였다. 진짜미국영어? ‘진짜’를 붙이는 걸 보니 이거 가짜 아니야? 영국영어 앞에 ‘진짜’는 강조,로 봐줬지만... 자신감 넘치는 젊고 새로운 두 목소리에 기대감을 담아 가끔 들어보았으나 집중하기 어려웠다. 경쾌 발랄하다 싶은 말과 커다란 웃음소리는 갈수록 소음이 되고, 거듭되는 자찬의 말들은 불편했다. 이건 나랑 인연이 없는 걸까. 나는 아직 가짜미국영어 수준인가 보다, 듣기 싫은 나는 안 들으면 된다. 누구나 어떤 것이나 시작은 어설픈 데가 있기 마련이며 호불호는 개인적이니. 그러나 EBS에서 기회를 얻은 두 진행자는 얼마나 설렐 것인가, 맘껏 열심히 하기를!     

 

나중에 간간이 듣게 될 때마다 진행자 김교포와 로라의 우리말이 무척 자연스럽고 정확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로라의 한국어는 정말 뜻도 발음도 정확했다. 종종 똑부러진 설명으로 때맞춰 김교포를 보충하면서도 자신을 보조의 자리에 놓으며 그를 돋보이게 할 때면 대단하다 싶었다. 비슷한 단어들의 명확한 구별, 세분화시킨 해석, 특정 상황에 딱 맞는 예문들은 자주 고개를 끄덕이며 재미를 느끼게 했다. 그들이 강조하는 ‘원어민만이 알고 있는 뉘앙스’라는 걸 맛보기도 했다. 아무리 듣고 읽고 공부해도 아리송 답답한 언어의 틈새들을 채우고 연결시키는 순간을 잡아채며 기쁨을 더하는 면이 적지 않았다. 다른 몇 강좌를 넘나들며 영어의 말맛을 꽤 아는 이들, 초보는 완전히 넘어섰다 할 만큼 영어의 바탕이 갖춰진 청취자들에겐 더 유익할 것이다.   

   

강의의 흐름을 끊고 집중을 방해하는 부분들은 여전하지만 그들만의 색깔이려니 했다. 그들의 열정과 애씀에 고개를 끄덕이기도. 하지만 학습자에게 불편을 참고 견디도록 요구하는 부분이 많고 그것이 지속된다면, 모든 빛은 바래고 공부는 힘들어진다. 내용상 필요하더라도 개인적 이야기는 짤막하게, 일반화시킬수록 편하게 스며든다. 자신의 생생한 경험도 청취자의 의지를 북돋울 만큼만 간단히, 가끔이면 족하다. 더욱이나 자신을 드러내기 위해 다른 대상을 깎아내리는 부정적인 말은 피로감 속에 의심을 일으킬 뿐. 그런 말도 영어로 한다면 덜 피곤할 듯.    


교사는 강의에서 일반적으로 방해요소가 될 수 있다고 여겨지는 부분을 살피며 그것을 줄여나가야 한다. 한 강의를 반복해서 듣는 학습자들을 생각한다면 당연한 요구다. 특색이란 자신의 색깔을 적절히 사용하여 공감과 신뢰를 넓힐 때 드러나는 것. 개인 교실도 아니고 더욱이나 나이와 계층이 천차만별인 EBS라는 공공 강의실이 아닌가. 강사에 대한 인정과 믿음은 본인의 입에서가 아니라 청취자들로부터 나오는 것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나는... 

미국으로 이민간 사람들의 삶에 대해 생각해 보았더랬다. 남의 나라에서 남의 말을 하며 살기란 어떤 것일지. 어떤 가면을 써도 드러날 수밖에 없는 ‘다름’의 명백한 표지인 언어. 그 땅의 사람이 아님을, 그들과 다름을 수시로 드러내면서 살아가기. 혹은 다름을 숨기려 은연중 애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을 겪으며 살기,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일상적으로 자신을 증명해야 할 때마다 교차되는 어떤 열등감 혹은 우월감의 무게에 대해, 다름의 층들이 교차하고 겹치며 만드는 파장과 그 변화에 대해 생각해 보았더랬다. 또한 그들이 한국으로 삶을 (다시) 옮겼을 때 그 우월감 또는 열등감의 파도와 춤 들은 또 어떨지. 자신이 지닌 영어의 권력을 알고 있다면... 미국 시민권을 '획득'했다면? 이중언어 사용자인 한국계 미국인이 영어를 자신의 '모국어'로 생각한다면? 아직 썩 괜찮다 싶은 답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낯선 땅에 새로운 뿌리를 내리는 이들의 용기에 대하여 상상을 이어나갈 뿐. 재즈 연주자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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