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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경이 Mar 11. 2024

용서한다 늘·항상·언제나

10. 오만과 기품을 뿜는- 모닝스페셜Morning Special

세상에 이런 목소리가 있나... EBS영어 강좌들을 하나하나 늘려가며 듣다가 '모닝스페셜'을 만나게 된 날. 그 새로우며 풍부한 목소리에 반해버렸다. 도무지 모르겠는 영어 속에 두 시간 계속 나를 머물게 한 목소리, 최수진. 영어의 모든 말맛을 품은 발음, 영국영어의 오만과 기품을 살그머니 뿜는 음색. 그 목소리가 시처럼 읽어주는 팝송과 해석을 들었던 주말, 나는 노래를 따라 먼 시공간으로 날아갔더랬다. 그 어조의 부피와 가락이 일으키는 새로운 의미를 더듬으며 불러보는 노래, 놀이. 주말의 공백을 고요로 완성시키던.      


모닝 스페셜Morning Special에서 다루는 것은 뉴욕타임즈 뉴스와 기사다. 이른바 시사영어를 배우는 시간, 내가 세상의 소식을 듣는 유일한 시간이다. 길고 복잡하며 형식성 강한 문장들은 한층 다른 재미를 가져다주었다. 힘든 줄도 모르고 공책에 옮겨쓰는 뉴스와 기사문. 내 손을 통과하며 형상을 갖는 영어를 다시 읽는 즐거움. 그것은 막강한 팔운동이기도 했다. 손목이나 팔 힘이 심각할 만큼 없는 나-빌빌이에게 하루치의 팔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노동.^^      


어떤 목소리와도 균형을 맞추고 조화를 이루는 최수진의 목소리. 캐런의 날카로움을 살짝 문지르고 제이슨의 멋진 목소리에서도 근육 1g을 덜어내어 알맞은 윤기와 명료함이 빛나게 한다. 유머 가득한 폴의 명확한 음성, 그 화려함을 조금 떼어 신바람으로 바꾼다. 참 좋다. 레이와의 진행은 집중하여 듣기에 딱 알맞다. 편히 듣기에 꼭 필요한 여성적/남성적 음성의 특징을 가진 두 목소리가 만났다고 하면 어떨지. 처음에 너무 평범하다 싶던 레이의 목소리는 들을수록 원어민 영어 발음·어조의 필수요소를 가진 것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해설 중에 종종 그가 사적인 일화나 감정을 얹을 때마다 영어적 현실감과 재미를 느끼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감사함으로 이년 넘게 들었던 EBS라디오 영어관련 아침 프로그램들. 진행자들이 우리말을 잘 사용하지 못할 때면 정말 안타까웠다. 틀리거나 부정확한 단어, 엉성한 문장이 적지 않다. 한국계 미국인이거나 이민자로서 우리말을 잘 습득하지 못하고 성장했음을 이해한다면, 문제는 그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때다. 고치며 나아지려고 애쓴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다. 우리말의 긴소리와 짧은소리, 높낮이에 따라 뜻이 달라지는 말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는 정말 많다. 높임말, 존칭이나 ‘-시’의 과다한 사용도 문제다. 거듭되는 어색한 높임말들은 불편감과 함께 의미전달을 방해할 뿐. EBS 안에서도 이런 문제를 고민하는지, 담당자는 있는지. PD의 역할은 어디까지며 그들도 영어만 잘할 뿐인지 궁금하다. 청취자들은 그저 ‘영어’만 배우면 되는 걸까. 우리는 궁금해야 한다.    

   

최수진의 우리말에 대한 아쉬움이 왜 없으랴. 그 비교불가의 좋은 목소리로 우리말의 장단음과 고저 강약을 정확하게 할 수 있다면... 흠... 그가 노력하지만 쉽지 않은 거라고 믿기에 나는 그를 용서한다. 늘, 항상, 언제나! 그가 단어를 헷갈리거나 숫자를 잘못 읽을 때도 미소 지을 뿐. 가르치는 자의 빈틈은 언제나 배우는 자들로 하여금 어쩔 수 없는 인간의 작은 불가능성들에 관하여 겸허하게 생각할 기회를 주기 때문이다. 최수진이 감기나 휴가로 자리를 비울 때면 아! 편안함에 젖어 잠시 잊고 있던 그 목소리의 아름다움과 그리움이 감사를 일으키며 일시에 몰려온다. 나는 이때를 정말 사랑하는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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