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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Apr 29. 2024

<서평> 코로나 계기로 탄생한 '생물의학보안국가'

정보통신, 감시, 통제, 세계보건기구, 윤리

2020년 초부터 대략 3년여 동안,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자의에 반해 자유로운 삶을 제한받았다. 바로 코로나(코비드-19) 감염증의  세계적인 유행 때문이었다. 

어떤 나라에서는 도시를 봉쇄하는 록다운이 실시됐고, 다른 어떤 곳에서는 정보통신 기술을 활용한 감시와 통제가  엄하게 전개됐다. 공중보건을 위해, 최대 다수의 행복을 위해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는 논리가 횡행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일반 전쟁과는 달리,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사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감염병에 효과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 통제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논리가 자연스럽게 유포됐다. 자유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그런 논리의 수용을 강요받았다.

'최대 다수의 최대 행복'을 모토로 하는 공리주의 철학을 밑바탕으로 하는, 감시와 통제를 통한 코로나 감염 대책이 가장 효과적으로 실시된 나라 중의 하나가 대한민국이었다. 정보기술을 활용해 대량 검사를 실시하면서, 감염자를 추적하고 집단 격리해 감염 확대를 막는 효율적인 시스템을 과시했다.

나도 한국보다 느슨한 일본에서 근무하면서 빠르고 빈틈없이 감염 대책을 하는 조국이 엄청 자랑스러웠다. 2021년 6월 일본에서 귀임하면서, 일사불란하게 돌아가는 공항의 코로나 예방 대책과 보건소의 검사 및 관리 체계에 혀를 내둘렀다. 그러면서도 내가 겪는 불편에 관해 큰 불만을 갖지 않았다. 공중보건을 위해 개인이 치러야 하는 당연한 희생이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비정상>(진지, 아론 케리아티 지음, 서경주 옮김, 2023년 10월)은 이런 생각에 똥침을 날리는 책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어바인 캠퍼스의 임상학 교수(정신과)이자 대학병원의 의료윤리 책임자였던 저자는, 코로나 감염 사태를 계기로 감시와  권위주의로 사회통제를 하는 괴물 '생물의학 보안 국가'가 본격 출현했다고 고발한다.

그는 우선 대학에서 의료윤리 책임자로서 겪었던 경험을 바탕으로 병원을 포함한 사회 전체가 '내용 고지에 입각한 동의', '피해 우선 고려', '정의'라는 의료 윤리학의 기본 원칙을 저버리고 백신 의무 접종을 강행한 비윤리적 행위를 강력하게 규탄한다. 그는 의과대학에서 일률적인 코로나 대책에 저항하기 전까지는 '최고의 교수'였으나, 당국의 차별적이고  부당한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하루아침에 해고됐다.

그는 코로나 감염 사태를 계기로 사람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생체의학 보안 국가'가 탄생한 것이 아니라, 이미 첨단 정보기술을 통해 노동자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통제해오던 시스템이 '생체의학 보안 국가'의 형식으로 전면화했다고 본다. 쉽게 말해, 코로나 사태가 생체의학을 통한 사람들의 감시와 통제를 쉽고 빠르게 보편화시켰다는 것이다.

그는 백신 강제 접종 문제를 비판하면서, 자연 면역을 인정하면 1000억 달러에 이르는 코로나 백신 산업의 순익이 절반 이상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폭로한다. 더 나아가 미국의 공중보건을 다루는 기구뿐 아니라 지구적 문제에 관해 공동 대응을 내세우는 세계보건기구(WHO)와 세계경제포럼(일명 다보스포럼, WEF) 같은 국제기구마저 거대 기업과 특정 재단으로부터 엄청난 자금을 지원받으며 유착관계를 맺고 있는 현실을 고발한다. 

이렇게 유대를 맺은 이익 공동체가 코로나와 같은 사태를 계기로 합작해, 공포를 조장하고 사람의 판단을 흐리게 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꾀하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이런 과정에서 인간의 몸을 건강과 치유의 주체로 보는 전통의학이 무시되고, 인간이 자기 몸에 대한 결정권을 상실하게 된다는 얘기다.

특히, 그는 코로나 비상사태라는 이름 아래 등장한 감시와 통제 체제를 '새로운 비정상', 즉 '생물의학 보안 국가'라고 부르면서, 그것이 공중보건 세력과 감시와 통제의 정보기술 세력, 국가의 경찰 권력의 3자 동맹 체제라는 점을 환기시킨다. 그는 이 체제가 추구하는 것이, 조지 오웰의 <1984>에 나오는 세계이거나 제러미 밴덤이 말하는 파놉티콘의 세계로 귀결할 가능성이 크다면서, 이런 디스토피아에 빠지지 않고 인간다움을 찾기 위해서는 각자 위치에서 치열한 저항을 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는 "기술관료들이 서둘러 만들려는 미래인 새로운 비정상은 팬데믹 이전보다 훨씬 더 불공평하고 비인간적일 것"이라면서 "독재는 인민들이 두려워하기 때문에 유지되고 전체주의는 인민들이 그것을 내면화하기 때문에 유지된다"라는 점을 상기시켰다. 즉, 두려워하지 말고 내면화하지 말고 주체성과 인간다움을 위해 저항할 때 새로운 비정상, 생체의학 보안 국가라는 디스토피아에서 탈피할 수 있다는 메시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우리가 당장의 위험에서 벗어나기 위해 너무나 많을 것을 양보하고 회피한 것이 아니었나 하는 각성이 들었다. 다시 코로나 감염 사태와 같은 비상상황이 발생하면 또다시 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 따르지 않고 저항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저항이라도 꿈꾸려면 그런 사태가 재래하기 전에 이런 책이라도 읽으며 정신무장을 단단히 해 놓지 않으면 안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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