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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Jun 10. 2024

서평 : 한국의 국제뉴스, 무엇이 문젠가?

<글로벌 미디어로 읽는 세계>, 문해력, 저널리즘, 국제뉴스

교통수단과 정보통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세계는 더욱 좁아졌다. 세계 구석구석에서 벌어지는 일이 눈 깜박할 새에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가는 시대가 됐다.

냉전 체제가 해체되기 직전인 1989년, 대우그룹 회장이었던 김우중씨가 쓴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책이 꿈 많은 청년을 자극하며 공전의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무려 150만 부 이상이 팔렸다는 전설이 있다. 지금과 같이 정보와 물건, 사람이 자유롭게 넘나드는 지구촌 시대였다면, 벌어지기 어려운 현상이었을 것이다. 책 제목부터 현실과 동떨어진다는 비판에 직면했을 것이다.

요즘 세계는 김우중씨가 그 책을 썼던 시대와 확연하게 다르다. 돈이 있고 관심이 있으면 극히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직접 가지 않더라도 인터넷을 뒤지면,  아무리 먼 지역이라도 예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세계화·정보화의 물결 속에서 세계가 명실상부한 지구촌이 됐다.

세계는 이렇게 좁아지고 가까워졌지만, 세계 소식을 다루는 한국 미디어의 국제뉴스는 어떨까? 모르면 몰라도, 국제뉴스에 대한 평판은 예전보다 훨씬 낮아졌다.

몇 가지 원인이 있을 것이다. 가장 큰 원인은 기자와 독자 사이의 정보 격차가 크게 축소된 데서 찾을 수 있다. 독자들은 점점 똑똑해지는 데 비해 국제뉴스를 다루는 기자들의 수준은 과거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과거에는 기자들이 정보를 독점하면서 이를 가공해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해 줬는데, 지금은 독자들도 기자들과 같은 시간에 같은 정보를 접할 수 있다. 더욱이 일부 독자들은 기자보다 먼저 정보를 발신하기도 하고, 기자보다 전문적인 지식을 과시하는 경우도 많아졌다. 한마디로, 똑똑한 독자 앞에서 예전처럼 국제뉴스 기자 노릇하기가 쉽지 않아진 것이다.

또 한 가지는, 세계는 아무리 좁아졌어도 다양성은 그대로인데 한국 미디어의 국제 뉴스는 획일화로 역주행을 하고 있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예를 들자면, 전쟁의 양 당사자가 있는데 한국의 국제뉴스는 한쪽에서 나온 정보만을 주로 전한다. 이른바 반러 진영인 미국과 서방의 시각과 정보만이 판을 친다. 이런 부분은 독자와 기자의 정보 격차 축소와 관련이 없다. 미디어가, 기자들이 다양한 정보를 모아 해석하고 전달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탓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양쪽의 정보를 두루 섭렵할 수 있는데 게으르기 때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글로벌 미디어로 읽는 세계>(초록비책공방, 채영길 등 8명 지음, 2024년 4월)는 한국 국제 뉴스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살펴보면서 국제 뉴스를 잘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책이다.  한국외국어대학교 미디어 외교센터에 소속된 여덟 명의 저자들이 한국언론진흥재단, 한국언론학회, 한국연구재단의 후원을 받아 실시한 미디어 리터러시 교육 내용을 토대로 책을 냈다.

 이 책이 제기하는 문제의식은 프롤로그의 다음과 같은 대목에 올곧이 나타나 있다.

"과거의 국제 뉴스가 자국의 이익과 안보를 위한 뉴스를 주로 생산했다면 오늘날의 국제 뉴스는 국가를 넘어 국제 및 지구적 차원으로 사회적 책임의 범위와 수준을 확대할 것을 요청받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뉴스 미디어가 자국의 이익과 안보를 우선 고려하는 자국가·자민족 중심주의를 넘어서기 어려우므로 국제 뉴스의 생산과 유통에 해당 국가와 사회의 특별한 관심과 투자가 요구된다."

이 책은 우선 프롤로그에서 국제 뉴스에 대한  리터러시가 왜 필요한지를  총괄적으로 살펴본 뒤, 우크라이나 전쟁, 미얀마 사태, 난민, 이슬람,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아프리카, 튀르키예 등 7개 분야로 나눠 그 영역에서 한국 미디어가 어떻게 뉴스를 다루는지를 분석했다. 7개 분야는 각기 장을 나눠 그 지역을 전공한 연구자가 집필했다. 따라서 한국의 국제 뉴스가 놓치고 있고, 보완해야 할 부분을 잘 짚어주고 있다. 

집필 팀의 좌장 격인 채영길 교수는 프롤로그에서 한국 미디어의 국제 뉴스 보도 경향에 관해 몇 가지 뚜렷하고 반복적이며 지속적인 편향을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으로 한국의 국제 뉴스는 지정학적 편향성, 선진 편향적 위계성, 오리엔탈리즘 등의 문화적 편향성, 이념적 정파성, 서구 매체에 대한 정보 의존성의 경향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뉴스 보도의 관행적인 생산 방식에 기인하는 것이 아니라 국내 언론사들의 조직 구조와 문화 때문이기도 하다"라고 따끔하게 말했다. 비용이 많이 드는 특파원을 줄이고 클릭 수를 늘리기 위해 흥미 위주의 기사를 양산하면서 국제 뉴스를 저급한 돈벌이 수단으로 취급하다 보니 국제 뉴스의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채 교수는 "국제 뉴스의 재정립을 위한 뉴스 취재와 보도의 혁신을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라면서 "국내 언론들이 일국적 국가주의 차원에서 일국적 공중을 대상으로 국내 공론장에 스스로를 가둔다면 언론의 신뢰는 더욱 악화될 수 있으며, 결국 언론으로서의 역할도 의문시될 가능성이 있다"라고 경고했다. 

이어 각 장에서 한국의 국제 뉴스가 구체적인 사안을 보도하면서 어떤 문제를 노정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뜯어봤다. 예를 들어, 1장 '우크라이나 전쟁과 루소포비아'에서는 우크라이나에 파견 취재도 거의 하지 않고 서방 외신에 일방적으로 의존해 기사를 남발하는 문제, 우크라이나 지역에 대한 역사 및 지정학적 맥락과 지식이 결여된 기사를 버젓이 내놓는 문제 등이 거론된다. 2장 '한국과 태국이 바라보는 미얀마 사태'와 4장 '타자화된 이슬람, 두려움을 키우는 미디어', 5장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을 바라보는 서구의 눈'에서도 이 지역을 다루는 한국의 보도가 얼마나 일면적이고 피상적이며, 왜곡돼 있는지 보여준다. 이들 장뿐 아니다. 전 분야에서 프롤로그에서 지적한 한국 국제뉴스의 편향이 춤을 추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

물론 한국 뉴스 중에서 국제 뉴스만 유독 문제가 있는 건 아니다. 다른 분야 뉴스가  더하면 더했지 절대 덜 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점 국제화하는 세계에서 균형 되고 입체적으로 세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안내하는 국제 뉴스의 중요성은 다른 분야에 견줘 훨씬 커졌다.

나는 국제 뉴스가 해야 할 역할 하나를 꼽으라면, 독자를 객관화, 상대화해 줄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하겠다. 지금 한국의 국제 뉴스는 독자들에게 독자를 상대화, 객관화하는 힘을 제공하기는커녕 오히려 '우물 안의 개구리'로 만들고 있지 않나 자성할 필요가 있다. 이 책은 국제 뉴스를 다루는 사람들이  갖춰야 할 소양과 자세가 무엇이고 어떠해야 하는지를 사례를 통해 담담하게 알려준다. 국제 뉴스를 생산하거나 즐겨 소비하는 사람들이 꼭 읽어 볼 만한 유익한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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