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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Dec 09. 2024

서평 : '고발 사주'의 범인을 고발한다.

정치 검사, 고발 사주, 한동훈, 윤석열

윤석열 정권의 등장과 함께 각 분야에서 '사주'가 난무하고 있다. 대검찰청의 '고발 사주',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의 '민원 사주', 김대남 전 대통령실 행정관의 '보도 사주' 등이 그것들이다. 


모두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신종 민주주의 파괴 수법이다. 수사를 담당하는 기관이 고발을 사주한 뒤 고발이 들어오면 피고발인을 법으로 옭아매고, 방심위 위원장이 친인척에서 민원을 사주해 민원이 들어오면 해당 보도에 징계를 때리겠다는 발상에서 나온 수법이다. 상대를 음해하는 정보를 은밀하게 제공한 뒤 보도를 사주하는 것도 같은 부류다. 목적만큼 절차를 중시하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납할 수 없는 만행이다. 절차와 수단을 악용한 아주 교활하고 악랄한 민주주의 파괴 행위다. 


여러 사주 사건 가운데 어느 것 하나 심각하지 않은 것이 없지만, 그중에서 가장 질이 나쁜 것을 택한다면 '고발 사주'일 것이다. 고발 사주는 여러 사주 사건의 원조 격인데다가 스스로 '정의의 사도'임을 자임하는 검찰이 직접 관여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다행스러운 것은,  정권에 부담이 되는 상대를 감쪽같이 해치우려고 했던 여러 사주 꼼수가 시간이 흐르면서 하나 둘 폭로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하늘의 그물망은 성긴 것 같지만 하나도 새는 것이 없다'라는 말을 증명해 주기라도 하듯 말이다.


물론 이런 폭로는 거저 이뤄진 것이 아니다. 용기 있는 고발자, 공익 신고자의 힘이 크다. <정치검사-누가 '고발 사주'를 덮었나>(해요, 조성은·전혁수 지음, 2024년 10월)는 고발 사주 사건을 폭로함으로써 윤석열 검찰의 타락상을 알리는 데 의기투합한 제보자 조성은 씨와 최초의 보도 기자 전혁수 씨가 공저한 책이다.


고발 사주 사건은  2020년 4월 15일 제21대 총선을 앞두고 대검이 당시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에 유시민, 최강욱, 황희석 등 진보 인사와 <문화방송>, <뉴스타파> 기자들을 고발하도록 사주한 것이다. 이들이 허위 사실 공표와 보도를 통해 윤석열 검찰총장과 그의 부인 김건희, 한동훈 검사장을 명예훼손했다는 게 고발장 내용의 요지다. 구체적으로 1) 김건희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연루 2) 윤석열 장모의 범죄 3) 한동훈의 <채널에이> 검언유착 의혹은 사실이 아니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 이들 사건은 모두 윤석열 정권 내내 정국의 한복판을 가로지르고 있는 최대의 정치 쟁점이다.


이 사건은 총선 뒤인 2021년 9월 2일 당시 <뉴스버스> 기자로 있던 전혁수 씨의 보도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친분이 있던 조성은 씨와 대화를 하던 중 총선 전에 왔던 고발 의뢰 운운하는 이상한 내용이 담긴 텔레그램 통신이 화제가 되면서, 그것이 대검 발 고발 사주임을 간파했다. 이 텔레그램 통신은 검찰 출신으로 송파에 출마를 준비하던 김웅 전 의원을 통해 당시 미래통합당 선거대책위 부위원장이었던 조 씨에게 전달됐다. 그런데 김웅한테 이 내용을 보낸 사람의 이름이 손준성이었고, 그가 전 기자의 확인을 통해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임이 드러났다.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은 검찰총장의 '눈과 귀'로 불릴 만큼 총장과 밀접한 자리다. 총장과 총장 부인, 그리고 그의 아바타 한동훈을 명예훼손했다는 이유로 야권 인사와 기자들을 무더기 고발하는 고발장이 그의 이름으로 전달됐다면, 당시 총장이었던 윤석열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고 보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그런데 보도 당시 검찰총장을 사퇴하고 대선 준비를 하던 윤석열과, 검찰은 오히려 제보자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식으로 빠져나가려 했다. 메시지가 불리할 때는 메시지가 아니라 메신저를 공격하라는 전형적인 수법을 썼다. 더 한심한 건 당시 미디어가 이런 희대의 검찰 타락상을 파헤치는 일은 외면한 채 윤석열 사단과 힘을 합쳐 제보자를 공격하는 데 힘을 쏟았다는 사실이다. 사건의 크기에 비해 여파가 크지 않았던 이유였다.   


형사적으로 이 사건은 용두사미에 머물고 있다. 아직까지는 그렇다. 사건의 핵심 인물로 추정되는 윤석열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제보 내용이 워낙 탄탄해 그냥 넘어가기가 어려웠던지 손준성 한 명만 2024년 1월 31일 열린 1심 재판에서 공무상비밀누설,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형사사법절차전자화촉진법 위반으로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12월 6일, 윤석열 친위 쿠데타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속에서 열린 2심에서는 1심을 뒤집고 손준성에 무죄가 선고됐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무죄 판결을 내리면서 상급자, 즉 윤석열 등의 지휘 가능성을 언급했다. 수사를 더 철저하게 했으면 윗선이 드러날 수도 있었다는 암시다. 윤석열이 사퇴하거나 탄핵 당해 추가 수사가 진행된다면 이 사건의 전모가 드러날 가능성이 있다. 기대한다.    


이 사건에 깊이 관여했을 게 분명한 한동훈은 법무장관을 마친 뒤 국민의힘 대표로, 중간 전달자였던 김웅 전 의원은 불기소 되어 정치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지금 이 둘은 마치 그 사건과 전혀 관련이 없었던 것처럼 후안무치의 언행을 하고 있다. 한 대표는 윤석열의 쿠데타 실패 뒤 마치 대통령 대행이라도 된 듯 나대고 있고, 김  전 의원도 두꺼운 얼굴을 한 채 '여당 내 야당'인 것처럼 논평 활동을 하고 있다.


진실의 법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부실한 형사 소추와 달리 기록되고 저장된 사실이 너무도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조 씨가 공익신고자로서 대검 감찰부에서 조사받은 기록, 조 씨가 검찰 수사를 받으며 녹취한 7시간의 녹음 기록, 공수처의 수사 기록 등 수많은 자료가 윤석열의 시간이 끝난 뒤 고개를 들고나올 공산이 크다.


이 책을 보면, 공익 신고를 결심한 조 씨가 얼마나 치밀하고 대담하게 기록을 남기려고 했는지 알 수 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라는 걸, 이 책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은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마치 추리소설을 쓰듯이 두 사람의 공저자가 서로 번갈아 등장하면서 각자의 시각으로 사건의 전개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전달하고 있다. <한겨레>의 이춘재 논설위원이 <검찰 국가의 배신>이라는 책에서 김학의 긴급 출금 문제 하나로 검찰의 치부를 폭로했다면, 이 책은 고발 사주 한 건으로 검찰의 타락상을 해부했다. 검찰 독재가 도를 더할수록 검찰 고발도 더욱 구체적이고 정교해진다는 걸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조 씨는 에필로그에서 이렇게 말했다.


"진실은 늦더라도 반드시 드러나게 마련이다. 고발 사주 사건은 그 자체의 진실 못지않게 관련된 사건들의 진실과 맞물려 정치검찰의 파렴치한 범죄행위를 낱낱이 드러낼 것이다. 그 점에서 고발 사주 사건은 야권에서 추진하는 한동훈 특검 및 김건희 특검과 밀접한 관련이 있으며, 이들 사건의 진실은 검찰 정권이 켜켜이 쌓아 올린 범죄의 탑을 무너뜨릴 것이다."


세상이 바르게 흘러간다면 반드시 그렇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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