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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태규 Dec 16. 2024

서평 : 침팬지만도 못한 윤석열의 정치력

<침팬지 폴리틱스>, 유시민, 드 발, 영장류

일본의 교토대는 영장류 연구로 유명하다. 내가 오사카 총영사로 있을 때 영장류의 일종인 고릴라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인 야마기와 쥬이치 교수가 교토대 총장을 하고 있었다. 

부임 인사차 오사카총영사관 관할지에 있는 대학을 순방하면서 야마기와 총장을 만난 적이 있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사전에 공부를 한 때문에 그가 고릴라 연구의 일인자라는 걸 알았다. 총장 접견실로 들어가니 여기저기 고릴라 모형들이 진열되어 있고, 사진들이 붙어 있었다. 자연스럽게 고릴라를 화제로 얘기를 나눴다.

대화 도중에 그가 <나는 어떻게 교토대 총장이 되었나>라는 책을 들고나와 줬다. 한국말로 번역된 책이다. 면담을 마치고 돌아와 바로 읽어 보니, 이런 얘기가 있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일본 총리가 2002년 북일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방북했을 당시, 고이즈미 총리가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함께 식사를 했다면 북일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을 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고릴라도 친한 상대에게는 먹이를 나눠준다는 점을 지적하며, 서먹한 사람들이 같이 식사를 하는 것의 중요성을 거론했다. 식사를 같이하면 서먹한 사람도 친하게 된다는 게 요지였다. 더 일반화하면, 영장류의 행동에 인간 행동의 원형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침팬지 폴리틱스>(바다출판사, 프란스 드 발 지음, 장대익·황상익 옮김, 2024년 2월 개정판 5쇄)는 영장류의 또 다른 종류인 침팬지의 권력 투쟁을 연구한 책이다. 내가 이 책을 알게 된 것은, 유시민 작가가 윤석열 대통령의 운명에 대해 쓴 <그의 운명에 대한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란 책을 통해서다. 유 작가는 <그의 운명~>에서 드 발의 이 책을 거론하면서 침팬지의 우두머리 수컷(알마 메일)이 권력을 쟁취하는 방법이 인간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설명한다.

드 발은 이 책에서 매우 섬세한 관찰을 통한 침팬지의 행동을 서술하고 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말에 잘 요약되어 있다.

"아른험에서의 연구가 내게 가르쳐 준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치의 기원이 인류의 역사보다 더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혹자는 내가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인간의 행동 패턴을 침팬지에게 투영한 것이 아니냐고 비판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런 비판은 옳지 않은 것이며, 오히려 그 반대가 진실에 가깝다. 침팬지들의 행동에 대한 지식과 경험이 인간을 또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해주었기 때문이다."(311쪽)

쉽게 말해, 침팬지의 행동을 관찰하면 인간의 행동을 유추할 수 있다는 얘기다. 인간을 침팬지로 격하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행동은 더욱 오래된 동물의 행동의 범위 안에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침팬지의 정치 행위와 인간의 정치 행위에는 큰  차이가 있다. 인간은 정치 행위를 하면서도 자신의 의도를 은폐하는 데 달인이지만, 침팬지는 자신의 동기를 숨기지 않고 아주 적나라하게 표출한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는 침팬지의 적나라한 정치 행위를 통해 인간의 정치행위 뒤에 감춰진 내숭을 더욱 생생하게 파악할 있다는 것이다.

드 발은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영장류학자이자 대중 저술가다. 그가 혈기왕성했던 30대 초보 과학자 시절에  네덜란드 아른험 지방에 있는 뷔르허스 동물원 야외 사육장 안에 들어가 수년간 침팬지 행동을 관찰하면서 쓴 이 책이 명성을 불러왔다.

책의 주요 등장인물은 모두 침팬지다. 이에룬, 라윗, 니키, 단디 4마리의 어른 수컷이 어떤 행동을 통해 침팬지 집단의 우두머리가 되는지를 그리고 있다. 이들의 권력 투쟁에는 암컷의 지도자 마마를 비롯한 암컷들이 어떻게 수컷의 권력투쟁에 관여하는지도 나온다.

이 책을 보면, 동물의 세계라고 해서 우악스럽게 힘을 쓰는 것만으로 우두머리가 될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다. 뷔르허스 동물원의 야외 사육장에 있는 침팬지 집단의 우두머리는 이에룬에서 라윗, 니키, 단디로 차례로 바뀐다. 중간에 니키가 라윗에게 잠시 우두머리 자리를 빼앗긴 때도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들 수컷 사이의 권력 교체가 한두 번의 싸움이 아니라 수개월 이상의 끈질긴 노력 끝에 이뤄진다는 것이다. 이때 권력을 빼앗으려는 침팬지는 다른 수컷과 꾸준하게 연합을 꾀하고, 암컷 침팬지의 지지를 끌어모으려고 노력한다. 도전자가 권력자가 저항할 수 없을 만큼의 세력을 확보하면 권력자는 도전자에게 굴복하는 뜻으로 인사를 한다. 예를 들어 1대 이에룬에서 2대 라윗으로 권력이 교체되기까지는, 드 발의 관찰에 따르면 꼬박 72일이 걸렸다.

침팬지 사회는 동물의 세계인지라 권력자가 일인자에서 물러나면 바로 비참한 최후를 맞을 것 같지만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이에룬은 라윗과 니키가 일인자가 된 뒤에도 시종 다른 경쟁 상대와 연합해 일인자를 견제하면서 영향력을 유지했다. 공식적인 서열은 뒤지지만 암컷과의 관계를 비롯해 침팬지 집단에 대한 영향력은 일인자에 못지않았다.

물론 현명하지 않은, 즉 덕이 없는 추락한 일인자는 불행한 최후를 맞기도 했다. 일인자 시절 사납게 군 라윗은 일인자 자리에서 2번째로 쫓겨난 뒤 이에룬과 니키의 공격으로 고환까지 잘리면서 죽었다. 3대 우두머리 니키도 이에룬과 단디의 연합 공세에 몰려 도망가다가 강물에 빠져 죽었다. 침팬지 집단의 이런 권력투쟁을 보면, 공자가 말한 '덕불고, 필유린'이란 말이 동물 세계에서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다.

이 책을 덮으면서 역시 유시민 작가가 독재자 윤석열의 운명을 얘기하면서 '침팬지 정치'를 끌어들인 것은 매우 적절한 비유였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물며 침팬지도 자신의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연합을 하고 동지를 규합하고 이웃에게 덕을 베풀며 다수 공작을 하는데 윤석열은 어떤가?  갖은 악행과 위법, 불법 행위가 나오고 있는데도 부인과 버티기로 일관하며 고립을 자초하면서 파멸했다. 

침팬지 정치는 연합하지 않는 지도자,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지도자의 최후가 어떤 것인지를 너무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정치를 잘하려는 자, 정치 세계에서 오래 살아남으려고 하는 자는 다른 것보다 침팬지로부터 정치를 배울 필요가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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