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족이 길어서 슬픈 동물
오늘은 중요한 날이다. 남들은 매년 1월 1일이 되면 뭔가를 크게 다짐하고 다이어트나 영어공부를 다이어리에 적어 넣지만 내 달력은 좀 다르다. 1월 1일 대신 7월 1일이 시작이다. 연말 시상식이며 종각이며 각종 매체가 시끌벅적한 연말연시에는 오히려 별 감흥이 없는데 한 해의 중간 허리, 그러니까 상반기에서 하반기로 넘어가는 6월의 끝자락이 되면 아무도 떠들지 않는 고요함 속에서 마음이 싱숭생숭해진다. 올해도 벌써 반절이 지났구나 하는...... 남들보다 경각심이 반년 느리게 오는 건지 반년 일찍 오는 건지 모르겠지만 여하튼 오늘이 딱 그날(캐나다 기준)이다. 게다가 7월 1일은 캐나다데이로 법적 공휴일이라 싱숭생숭한 마음을 오롯이 느낄 시간적 여유가 많다는 것도 문제다.
매년 6월 30일이 되면 나는 '안 하던 짓'을 도모한다. 엄근진(엄격하고 근엄하고 진지하게)한 마음가짐(과 표정)으로 수첩에다 선포를 하는데 그 선포라는 것은 무의식 세계의 나에게 일언반구도 없이, 동의나 설득 따위의 모종의 절차도 없이 무차별적으로 진행되는 것이다. '이렇게 살다 간 정말 후회하겠다'는 경각심이 들자마자 의식적 자아가 무의식적 자아에게 상황 보고도 하지 않은 채 혼자 결단하고 통보를 하는 것이다. 선포의 내용은 매년 조금씩 다르지만 사실 떠올려 보면 다 비슷비슷했다. 비슷한 선포를 매년 해오고 있다는 것은 아직도 이렇다 할 성공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지 뭐겠어. 올해는 입 밖으로 내뱉기도 무시무시한 그것, 사자성어로 '많을 다, 이로울 이, 배부를 어, 던질(버릴) 투' 즉, 배부른 것을 버리면 이로운 것이 많아질 바로 '다이어투(트)'다. 신선하지 않은가. 다이어트라니.
쇠뿔도 당김에 빼랬으니 내일부터 당장 시작하기 위해서 오늘은 방탕한 한 끼를 나에게 선물해야겠다(라고 하지만 그냥 마지막 발악, 혹은 구실 갖다 붙이기라고 지적해도 딱히 반박할 논리는 없다).
오늘 어떤 한 끼를 만들어 먹을지 이야기하기 전에 '최선'에 대한 이야기를 좀 풀어야겠다. 유튜브에는 엄청난 요리 솜씨를 뽐내는 요리 유튜버들이 넘쳐난다. 내가 그들의 콘텐츠를 보는 것을 즐기기 때문에 유독 내 피드에 많이 뜨는 것 같지만 어쨌든 참 많다. 그들이 만드는 건 최고의 음식이다. 해외에 사는 1인 가구로서(그것도 현직 백수로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나의 최선 아니, 냉장고 사정의 최선일뿐이다. 일부러 재료를 사지도 않고, 레시피의 모든 재료가 충족되지도 않으니 정량의 계량 따위도 없다. 내가 가진 것 안에서 해결하되, 최선을 다할 뿐. 지금껏 그런 식(?)으로 해왔지만 먹기에도 보기에도 나름 그럴싸한 한 끼들이 차려졌다.
다이어트를 시작하기 전 마지막 방탕한 음식으로 선별한 음식은 탄수화물이어야만 했다. 신중한 고려 끝에 마지막 탄수화물은 바로 면요리ㅇㅇㅇ로 정했다. ㅇㅇㅇ가 먹고 싶어서 그것으로 정했다기보다는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식재료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음식을 떠올려 보다 그중에서 가장 구미가 당기는 것을 정한 결과가 ㅇㅇㅇ가 된 것이다. 음식쓰레기 배출을 13년(자취 이래)째 0% 가까이 유지하는 비결이다. 그게 어떻게 가능하냐며 진실여부에 대해 혹자는 의심을 품을 수도 있겠다. 내가 말하는 음식쓰레기는 미처 사용하지 못해 썩혀 버리는 식재료나, 만들어 놓고 다 먹지 못해 남아서 버리는 음식, 혹은 상해서 버리는 음식에 국한한 것이지, 뼈, 씨앗, 껍질처럼 대게 섭취되지 않는 부분은 나도 어쩔 수 없이 버린다.(그러니 오해 없길 바란다) 그러면 또 이런 질문을 하겠지.
"네가 한 음식이 형편없거나 실패해서 버린 적이 한 번도 없다는 거냐?"
응, 없다. 내 요리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내 비위가 대단해서다. 고기에서 홍시맛을 느낀 대장금의 천재적인 미각까지에는 못 미치더라도 맛에 대해 어느 정도 일가견은 있다 자부하나 그렇다고 또 까다롭지는 않아서 '이건 상한 맛이 나는데?' 정도의 수준만 면했다면 웬만해서는 음식 쓰레기통으로 보내지 않을 수 있는 비위가 있어 가능한 성취다(심지어 상한 맛이 나는 음식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조리해서 먹는다). 어쨌거나 오늘 이 글을 시작으로 지금껏 내가 만들어 먹은 그리고 먹고 있는 해외 1인가구의 최선의 한 끼를 내 멋대로 소개해볼 생각이다. (인기가 없으면 작심삼일도 불사할 예정이다.)
아, 사족이 너무 길어서 정작 '마지막 탄수화물'은 다음 편으로 넘겨야겠다. 노파심에 다시 한번 짚고 넘어가자면 '최고' 아닌 '최선'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요리 레시피가 아니라 음식 이야기를 곁들인 단상의 나열쯤 될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