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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서영 Jul 11. 2023

최선의 팟타이

단짠은 순서가 중요하지

 최근 내 '정신머리'가 문제라는 걸 깨닫고 정신 상태를 바꿔보기 위해 도움이 될만한 정보를 찾아다녔다. 허기진 좀비처럼 잠자는 것도 잊은 채 유튜브와 책과 인터넷 기사들을 배회했다. 


사실 정신의 문제란 건 100명의 사람이 고통받고 있다면 100개의 문제가 존재하고 100명의 사람이 그 문제를 해결했다면 100개의 다른 각자의 해결책이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100명 200명의 사람들이 '나는 이렇게 극복했어요'하며 알려주는 말들을 듣다 보니 상통하는 것들이 있었고 가장 마음에 와닿는 것이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 나의 부분을 바꿔라.'


그래서 나는 몸을 좀 바꿔보기로 했다. 건강하고 탄력적인 몸으로. 좋아하는 술과 탄수화물을 줄이고 하루 한번 땀을 내자. 내가 생각해도 너무 훌륭한 작심이다. 삼일천하로 끝나지만 않는다면. 


그래서 마지막 탄수화물로 '최선의 한 끼'를 만들어 먹고 본격적인 식단과 운동은 '내일부터'하기로 했다.(진짜 내일부터 할 거다 진짜, 최종, 레알, 최종의 최종) 냉장고를 열어 가장 위층부터 훑는다. 훑다 보니 '네가 왜 거기서 나와?' 아이템들도 간혹 있다. 대충 스캔을 하니 머릿속에 할 수 있는 음식 후보 몇 개가 떠오른다. 탄수화물이 주종목인 음식 중에서 냉장고에 있는 걸로 해결되는. 좋았어, 너로 정했다.


<최선의 팟타이>

필수 재료 : 쌀국수면, 계란, 레몬(혹은 라임), 숙주, 

필수 조미료 : 피시소스(혹은 액젓), 설탕, 식초, 간장

있으면 좋은 재료 : 새우, 땅콩분태(다른 견과류 대체 가능), 타마린드, 태국 고춧가루, 고수(혹은 깻잎), 부추(혹은 파), 케첩


내가 처음 팟타이를 만난 건 아마 사회 초년생 때 태국 배낭여행을 갔을 때로 기억한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인터넷 카페에서 찾은 정보를 모아 '맛집 리스트'를 만들어갔는데 그중에서 길거리 노점 팟타이가 있었다. 반드시 특정 구역에 무슨 요일 몇 시부터 몇 시 사이에 가면 만날 수 있는 수레에서 사 먹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국도 수레마다 떡볶이 맛이 다르듯 팟타이도 맛이 천차만별일 테니. 맛있는 팟타이 수레 주인의 인상착의까지 성실히 적어갔지만 결국 찾을 수 없었고 하는 수 없이 눈에 보이는 수레에서 사 먹었었다. 결론은 너무 짰다. 첫 팟타이를 먹고 실망한 나머지 태국에서는 팟타이를 다시 시도하지 않았고 10여 년이 지난 후 한국에서 우연히 먹게 된 팟타이에 반해 그때부터 내 팟타이 사랑은 시작되었다. (역시 한국(화) 음식이 짱이다)


거의 모든 면요리를 다 좋아하지만 특히 팟타이를 좋아하는 이유는 식감과 확실한 맛의 레이어드다. 


들어가는 재료의 조리 시간 차가 식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제대로 익고 섞여야 하는 면과 부추(혹은 파), 계란, 살짝 데치는 수준으로 아삭한 식감과 탱글한 식감을 지켜야 하는 숙주와 새우, 그리고 마지막으로 프레이팅 후 완성 된 음식에 얹어야 하는 땅콩분태와 잎채소(고수나 깻임)를 잊지 않아야 그 식감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조리를 할 때 중요한 점은 계란을 넣을 때 이미 팬에 들어가 있는 다른 재료를 한쪽으로 밀어 놓고 계란을 따로 스크램블 하면서 익혀야 쌀국수면과 붙지 않는다. 계란과 국수면이 엉겨 붙어 버리면 면요리를 먹는 건지 떡 요리를 먹는 건지 알 수 없게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 일어난다. 


사실 동남아의 음식들은 대부분 맛의 층이 확실히 구분되는 특징이 있다. 더운 나라라 음식이 상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생긴 문화인지 레몬이나 라임을 뿌려 먹는 음식이 많은데 주로 조리된 음식이 그릇에 담긴 후에 뿌리기 때문에 가장 처음 느끼는 맛은 역시 신맛이다. 아, 아니다 음식이 입에 들어오기도 전에 가장 먼저 느끼는 감각은 꼬릿한 피시소스의 향이다. 팟타이의 탑노트(?)랄까? 그리고 재료 전체에서 느껴지는 짭조름한 맛, 마지막으로 단맛이 올라온다. 정리하면 새콤 짭조름 달콤이다. 단짠의 조화를 이뤄야 하는 모든 음식은 짠맛을 담당하는 조미료보다 단맛을 담당하는 조미료가 먼저 들어가야 하는데 설탕 분자가 소금보다 크기 때문에 재료에 먼저 침투해 다른 양념들이 스며들게 해 줄 공간을 확보해 놓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입자가 작은 소금은 혼자 잘 먹고 잘 살겠다는 놀부처럼 재료 속에 들어가 다른 양념이 들어오지 못하게 한다. 그러니까 인색한 사람을 두고 하는 '짜다'라는 표현은 분자구조로 설명되는 과학적인 이야기였군. 달콤한 디저트를 먹은 날이 그렇지 않은 날보다 너그럽고 친절해지는 것도 혹시......?


나는 팟타이를 위한 쌀국수면을 불릴 때 미지근한 물에 단 맛의 조미료(대표적으로 설탕)를 녹여 그 물에 담가 놓는다. 재료에 양념에 좀 더 잘 배게 하려는 목적이다.


식감과 맛의 레이어드를 200% 즐기기 위한 마지막 한수는 음식의 온도다. 후후 불면서 먹어줘야 제맛인 국밥이나 포(베트남 쌀국수) 같은 국물 음식은 식도에 무리가 가지 않는 한 높은 온도를 유지하며 먹는 것이 가장 좋지만 팟타이는 팬에서 막 꺼낸 직후보다 조금 식혀서 먹는 것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이것은 순전히 내가 쌓아 올린 맛의 레이어드를 온전히 느끼기 위함이며 특히나 신맛이 가미된 새콤달콤한 맛이 나는 음식은 펄펄 끓을 때 먹는 것보다 식었을 때 먹는 것이 더 맛있다. 그래서 떡볶이도 종류에 따라먹을 때의 온도를 다르게 한다. 감칠맛과 매운맛이 메인인 국물 떡볶이의 경우 뜨거울 때 먹지만 토마토케첩이 들어간 새콤달콤한 떡볶이는 일부로 한 김 아니 두 김 정도 식힌 후 먹는다.


사람마다 관계의 온도가 다르듯 음식도 저마다 나에게 가장 맞는 온도가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먹는 사람의 취향에 따라 달라지기도 한다. 내가 찾은 팟타이의 가장 좋은 온도는 김이 날만큼 뜨거울 때보다 입에 들어갔을 때 약간의 온기가 느껴지는 딱 그 정도다. 음식이 너무 뜨거우면 새콤하고 짭조름하고 달콤한 맛이 제대로 느껴지지 않는다. 감정이 너무 달아오르면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현상과 증상들을 제대로 바라볼 수 없듯.



유튜브 [무작정 그리고 황서영] 

최선의 팟타이 편

https://youtu.be/UMWKMNeVe4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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