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아이들은 무언가를 많이 본다
다만 그것은 책의 형태를 한 텍스트라기보다는,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나 자막, 짧은 영상을 통해 얻는 정보의 단편들에 가깝다. 어떤 의미에서 이 시대의 독서는 ‘정독’보다는 ‘스캔’에 가깝고, 텍스트의 맥락보다는 결론만을 필요로 하는 방식이다.
교사로서 ‘독서’ 과목을 가르치는 내게 이 변화는 당혹스러움 그 자체였다. 읽는다는 행위가 그저 정보를 얻는 수단으로만 소비되는 풍경 속에서, ‘생각을 구성하고 재구성하는 독서’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그 책임은 아이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읽고, 생각하고, 쓰는 과정에서 그 느린 사고의 경로를 지켜주는 어른이 우리 곁에 있었는지, 나는 스스로에게 먼저 묻게 되었다. 교사인 내가 여전히 내 학창 시절의 학습 방식을 기준으로 수업을 설계하고 있지는 않은지, 과거의 성공 경험을 현재의 아이들에게 무심코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지.
아이들의 사고는 훨씬 더 유연해졌고, 세계와 연결되는 방식도 다양해졌다. 그리고 그 곁에는 인공지능이라는 새로운 존재가 어느새 익숙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인공지능이 학생들의 글을 대신 써주는 것이 아닐까, 아이들의 사고마저 대행해버리는 건 아닐까 걱정했다. 하지만 곧 방향을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중요한 건 그 도구를 ‘어떻게 쓰느냐’였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글을 썼을 때, 인공지능은 그 글에 대한 질문을 던질 수 있다. 단순히 문장의 길이나 표현의 수려함을 평가하는 대신, “왜 이렇게 생각했을까?”, “이 문장의 의도는 무엇일까?”, “같은 주제를 다르게 바라보면 어떻게 될까?” 하는 질문을 만들어낼 수 있다.
나는 이 질문들을 학생들에게 그대로 돌려주었다. 처음엔 당황해하던 아이들도, 점차 자신이 쓴 글을 다시 읽고, 다시 쓰기 시작했다. 답을 늘어놓기보다는 질문을 곱씹게 하는 피드백, 그것이 아이들을 주체적인 독자로, 또 필자로 성장시키는 데에 생각보다 깊은 영향을 주고 있었다.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외로운 작업이다. 그러나 누군가의 물음이 던져졌을 때, 그 문장은 다시 살아나고, 생각은 또 한 번 숨을 쉬게 된다. 결국 나는, 아이들이 쓰는 글 위에 질문이라는 숨을 얹는 일을 하고 있었던 셈이다.
교실에서도 이런 관계를 조금 더 확장해보고 싶었다. 학기 초, 학생들이 스스로 정한 목표를 매일 기록할 수 있도록 온라인 공간을 만들고, 그 기록 하나하나에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오늘도 해냈구나’, ‘조금 지쳐 보이지만 괜찮아, 내일은 다시 시작하면 돼.’ 아주 짧은 말들이었지만, 그 말이 쌓여서 아이들은 자기 글을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그리고 그 글 아래, 또다른 아이들이 자신의 생각을 조용히 적어가기 시작했다.
어느 날, 한 학생이 남긴 글을 읽고 가만히 눈을 감았다.“내가 계속 쓸 수 있었던 건, 누군가가 날 지켜보고 있다는 감각 때문이었다.”그 문장은, 내가 아이들에게 해주고 싶었던 거의 모든 말이었다.
누군가는 기술의 발전이 교사의 자리를 위협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나는 오히려 그 기술을 통해 아이들과 더 자주, 더 가까이 연결되고 있다는 걸 체감한다. 나는 더 많이 묻고, 아이들은 더 많이 생각하고, 함께 다시 쓰고 있다.
그렇게 교실은 조금씩 다시 쓰여지고 있다.학생들이 질문을 멈추지 않도록,그리고 나 역시 쉽게 익숙해지지 않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