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병법(孫子兵法) 제5편 軍形(군형)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凡戰者,以正合,以奇勝。」
(모든 싸움은 정공법으로 맞서고, 기이한 수로 승리한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남자 복식 결승에서 푸하이펑/장난(Zhang Nan) 조는 말레이시아의 고 스웰/탄 웨이킷(Goh/Tan) 조와 치열한 랠리를 벌였다. 중국 팀은 정석적인 드라이브 랠리와 공격(正)로 점수를 쌓아가다가, 결정적인 순간마다 예상치 못한 드롭샷과 기민한 네트 플레이(奇)를 구사했다. 상대는 정석에 익숙해져 있던 만큼, 순간적으로 변칙적인 플레이에 크게 흔들렸다. 결국 정석과 변칙의 균형이 승부를 갈랐다. 중국 팀이 보여준 드롭샷과 네트 플레이는 바로 정석(正) 위에 얹어진 변칙(奇)의 힘이었다.
그리고 같은 해, 바둑판 위에서도 세계는 ‘변칙의 힘’을 목격했다. 이세돌 9단은 구글 딥마인드의 AI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1승 4패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판에서 인간은 패배했지만, 제4국에서 이세돌은 전 세계를 놀라게 하는 “78수의 묘수”를 두었다. 알파고의 예측 알고리즘이 전혀 고려하지 못한 기발한 수였다. 그 한 수로 인해 알파고의 계산은 흔들렸고, 결국 이세돌은 인간으로서 유일하게 승리를 거두었다.
이 사례는 손자의 가르침 「以正合,以奇勝」(정공으로 맞서되 기이한 수로 승리한다)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정석적인 수읽기로는 인공지능의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러나 인간의 창의적 변칙은 기계의 예측을 뛰어넘었고, 승리를 가능케 했다.
정석과 변칙의 조화는 고전 속에서도 빛난다. 『삼국지연의』에서 제갈공명은 죽은 뒤에도 사마의를 속였다. 공명이 죽자 촉군은 퇴각해야 했지만, 단순히 물러나면 추격당할 위험이 있었다. 이에 군사들은 공명의 형상을 수레에 앉히고, 마치 살아 있는 듯 부채를 흔드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를 본 사마의는 “혹시 공명이 죽은 것이 거짓인가?”라며 크게 놀라 추격을 포기했다. 바로 여기서 나온 말이 “死諸葛走生仲達(죽은 제갈공명이 산 사마의를 달아나게 했다)”이다. 이 장면은 정공으로 맞서되 변칙으로 승리한다(以正合,以奇勝)는 손자의 말을 가장 극적으로 드러낸다. 죽음이라는 ‘정(正)’ 위에, 기이한 위장이라는 ‘기(奇)’를 더했을 때, 이미 끝난 싸움조차 다시 뒤집을 수 있었던 것이다.
국제 정치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은 외교 담판에서 약속 시간을 일부러 어기는 방식을 활용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정상회담의 “시간 약속을 지킨다”는 것은 전 세계가 공유하는 정석(正)이다. 하지만 그는 의도적으로 몇 시간 늦게 나타남으로써 변칙(奇)을 쓰고, 상대를 기다리게 하면서 심리적 우위와 기세를 장악한다. 겉보기엔 단순한 ‘지각’이지만, 사실은 정석의 질서 위에서 기습적으로 변칙을 가한 전술인 셈이다.
로버트 그린은 『전쟁의 기술(The 33 Strategies of War)』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정석은 안정감을 주지만, 승부는 변칙에서 갈린다. 상대가 익숙한 패턴에 안주할 때, 기이한 수가 그의 균형을 무너뜨린다.”
이는 곧, 안정은 정석에서 오지만, 승리는 변칙에서 온다는 손자의 가르침을 현대적으로 풀어낸 해석이다. 정석은 신뢰를 준다. 그러나 때때로 승부는 변칙에서 갈린다.
내가 몸담고 있는 법정에서의 기본 역시 정석(正)이다. 증거 제출, 주치의 소견, 법리 해석, 증인 심문 등은 모두 정석적 절차다. 하지만 이 정석 위에 변칙(奇)을 가하면, 흐름을 바꾸고 판세를 뒤집을 수 있다. 대표적인 방식은 다음과 같다.
절차적 허점 공략: 상대가 자신 있게 내세운 IME 보고서가 기한 내 송달되지 않았거나, 사고 부위 검사가 누락되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내용 자체가 아니라 절차의 결함을 강조해, 증거의 신뢰도를 흔든다.
심리적 균형 깨기: 교차심문에서 예상치 못한 질문을 던져 증인을 당황하게 한다. “그 기록을 직접 작성하셨습니까?”와 같이 신뢰성을 근본에서 흔드는 질문이 효과적이다.
타이밍의 변칙: 강력한 논점을 처음부터 내세우는 대신, 결론부에 배치하여 판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익숙한 흐름을 유지하다가 갑자기 방향을 바꾸면 변칙적 효과가 배가된다.
의외의 증거 제시: 소송이 고착화된 순간, 예상치 못한 진술서나 기록을 꺼낸다. 절차는 지키되 타이밍이 예기치 못했을 때 가장 큰 충격을 준다.
연출과 심리 효과: 목소리 톤, 질문 순서, 시각자료 활용도 변칙이 될 수 있다. 예: 조용히 IME 보고서를 들고 “이 보고서는 기한 내 송달되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 법정 분위기는 단숨에 바뀐다.
이처럼 정석과 변칙의 균형은 스포츠, 국제 정치, 외교, 협상 테이블 그리고 법정의 코트까지 아우르는 보편적 원리다.
이 원리를 멋지게 압축한 말은, 영화 〈다크 나이트(The Dark Knight)〉에서 조커가 남긴 한마디일 것이다.
“Introduce a little anarchy… upset the established order, and everything becomes chaos.”
(약간의 혼돈을 불어넣어라… 정해진 질서를 흔들면, 모든 것은 무너진다.)
배드민턴 코트에서도, 법정의 코트에서도, 결국 판세를 바꾸는 것은 안정적인 정석 위에 얹어진 예상치 못한 변칙의 한 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