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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위의 손자병법 – 제4장.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

by 뉴욕 산재변호사

손자병법(孫子兵法) 제3편 모공(謀攻)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上兵伐謀,其次伐交,其次伐兵,其下攻城。」

(최상의 병법은 적의 계책을 꺾는 것이고, 그 다음은 외교 관계를 끊는 것이며, 그 다음은 군대를 치는 것이고, 가장 하책은 성을 공격하는 것이다.)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은 전투를 피한다는 소극적 태도가 아니다. 오히려 정면 충돌 전에 이미 상대의 의지를 꺾고, 스스로 무너뜨리도록 만드는 전략이다.


2017년 세계선수권 여자 단식 결승에서 노조미 오쿠하라(Nozomi Okuhara)는 인도의 P.V. 신두(P.V. Sindhu)와 역사적인 장기전을 치렀다. 랠리가 70~80샷을 넘기는 긴 교환이 이어졌고, 오쿠하라는 화려한 공격보다 끝없는 랠리 유지와 체력전으로 상대를 지치게 했다. 결국 신두는 체력 한계에 부딪혀 스스로 무너졌고, 오쿠하라는 큰 공격을 하지 않고도 승리를 거두었다. 이 경기는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을 스포츠에서 구현한 대표적 사례였다.


배드민턴에서 반드시 강력한 공격으로만 승리할 필요는 없다. 긴 랠리를 통해 상대를 지치게 만들고, 스스로 실수를 유발하게 하는 것도 하나의 승리 방식이다. 체력이 떨어지면 스매시의 위력이 약해지고, 집중력이 흔들리면 단순한 리턴에서도 에러가 발생한다.


손자가 말한 ‘싸우지 않고 이김’은 체력 관리와 멘탈 유지로 상대를 소모시키는 전략과 맞닿아 있다.

『삼국지연의』에도 손자의 원리가 생생히 드러난다.


적벽대전에서 오나라의 주유와 촉나라의 제갈공명은 조조와 정면 충돌하지 않았다. 대신 강과 바람, 시간을 아군으로 삼아 지구전을 펼쳤다. 수전에 익숙지 않았던 조조의 대군은 배멀미와 피로, 전염병 이미 전투력이 상당 붕괴되었고, 마지막에는 오촉 연합군의 화공작전에 제대로 싸워보지도 못하고 대패했다.


칠종칠금에서 제갈공명은 남만의 맹획을 일곱 번 잡았다가 일곱번 풀어주며 그의 기세와 자존심을 조금씩 소모시켰다. 결국 맹획은 진심으로 항복했고, 더 이상의 전투는 필요 없었다.


이 두 장면은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의 전형이다. 상대가 스스로 지쳐 물러나도록 만드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승리다.


로버트 그린은 『전쟁의 기술(The 33 Strategies of War)』에서 이렇게 강조한다.

최고의 승리는 전투에서가 아니라, 전투 이전에 이미 적의 의지를 꺾는 것이다.”


즉, 싸움이 벌어지기 전에 상황을 설계해 상대를 스스로 지치게 만들고, 선택지를 봉쇄하는 것이 진정한 전략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산재 실무에서도 이 원리는 그대로 적용된다. 예를 들어, 상대 보험사가 강력한 증거를 들이밀었을 때 정면으로 다투면 불리할 수 있다. 그러나 굳이 본안에서 끝까지 충돌하기보다, 의기양양한 태세로 상대 보험사의 기운을 충분히 뺀 후 Section 32 합의로 방향을 전환하면 싸우지 않고 사건을 효과적으로 종결지을 수 있다.

의뢰인은 불확실한 판결 대신 확정적인 보상을 받는다.

보험사는 장기 소송 비용과 위험을 피한다.

결과적으로 협상 테이블에서 양측 모두가 만족할 만한 해답을 얻는다.


이는 손자가 말한 “성을 공격하는 것은 하책”이라는 교훈과 같다. 법정에서 굳이 모든 것을 소모전으로 끌고 가지 않고, 지혜로운 협상으로 스스로 무너지는 균형을 이끌어내는 것, 그것이 곧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이다.


『도덕경』에서 노자는 이렇게 말한다.


「夫唯不爭,故天下莫能與之爭。」

(진정으로 다투지 않기에, 천하 그 누구도 그와 다툴 수 없다. – 도덕경 22장)


노자의 부쟁(不爭)은 단순한 회피가 아니다. 다투지 않음으로써 상대가 다툴 근거 자체를 잃게 만드는 힘이다. 손자의 “싸우지 않고 이기는 법”과 노자의 “부쟁”은 서로 보완하며, 진정한 승리는 무력의 충돌이 아니라 충돌을 무력화시키는 지혜임을 말해 준다.


영화 〈WarGames, 1983〉 속 슈퍼컴퓨터는 마지막에 이렇게 결론짓는다.

“The only winning move is not to play.”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싸우지 않는 것이다.)


배드민턴 코트에서든, 삼국지의 전장에서든, 오늘날 법정의 코트에서든, 최고의 승리는 싸움을 통해 얻는 것이 아니라 싸움 없이 이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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