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귤 Oct 13. 2021

B.B.B (Big Baby Baby)

song by 달샤벳

몇 년째 내 아이튠즈 보관함에서 버티는 아이돌 노래들이 몇 곡 있는데, “B.B.B”가 그중 하나다. 이유는 간단하다. 케이팝 걸그룹 음악 중에서 이 정도 수준으로 80년대 팝을 충실히 재현하는 노래가 또 있을까? 물론 내 리스닝 풀이 넓은 것은 아니지만, 여태 들어온 아이돌 음악 중에서 이렇게 그 시대 팝의 분위기를 재현해낸 곡은 별로 없었다. 이 노래 전에도 달샤벳은 “Bling Bling”이라던 있기 없기 같은 노래로 디스코 음악을 낸 적 있지만, “B.B.B”는 보편적인 아이돌스럽던 이들이 다른 그룹처럼 보이게 만든다. 속도감 넘치는 비트와 치밀하게 들어간 신스 리프가 80년대 서구권 팝을 절묘하게 포착하고 있고, 그러면서도 신사동 호랭이 특유의 “뽕끼” 담긴 후렴은 노래에 케이팝의 국적성을 적절하게 입히면서 자칫하면 너무 멀리 갈 법도 한 거리감을 적당히 좁혀온다.


장르상 보컬을 두드러지게 만드는 노래는 아니지만, 그럼에도 멤버들의 소화력은 곡은 내실 있게 다지고 있다. 브릿지에 등장하는 (안타까울 정도로 어설픈) 랩을 제외하면, 나머지 네 멤버는 본인의 역할을 출중하게 소화해낸다. 수빈은 벌스를 담당하면서 곳곳에 포인트로 자리한 고음으로 노래가 가진 매력을 살려주고 있고, 각각 후렴과 훅을 담당하는 우희와 세리의 음색은 곡을 참으로 기깔나게 만들어준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가은이라는 멤버의 파트다. 프리코러스에서 싱잉-랩을 펼치는 보컬은 큰 개성을 뽐내는 것은 아니지만, 빠르게 쏟아내는 목소리로 후렴 직전에 노래를 딱 알맞게 가속하고 있다. 노래가 뜯어볼수록 참 영리하다.


오랜만에 이 노래를 들으며 달샤벳의 앞뒤 노래를 살짝 훑어봤다. “Supa Dupa Diva”라는 곡으로 발랄한 이미지와 함께 데뷔했던 그룹은 “내 다리를 봐”라는 노래로 천천히 섹시를 곁들이더니 이 앨범에 와서는 아예 싹 달라진 농도 짙은 섹시 콘셉트를 받아들였다. 재밌는 것은 이런 그룹이라면 필히 멤버들의 곡 소화력이 어색할 법도 한데 생각보다 그런 면이 없다는 것이다. 컬러풀함을 싹 빼고 어두운색으로 채워진 콘셉트가 오히려 그전보다 팀에게 더 잘 맞는 옷을 입은 기분이다. 여기에 가사는 또한 꽤 담대하게 성적인 은유를 담아내고 있는데, 충분히 여지를 주는 단어들이지만 그렇다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노골적인 느낌 없이 적당히 뜯어보면 재밌는 수준이다. 물론 이 노래를 부르는 가수들이 직접 가사를 쓴 것은 아니기에 이런 식의 평가가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이 노래 만큼은 여타 해외 팝과 비교했을 때 전혀 꿇리지 않는다고 감히 말해본다.


(원 게시일: 21.05.04.)

작가의 이전글 I Need Some of That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