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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귤 Oct 13. 2021

사는 사람

song by 나인뮤지스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겠지만, 내게 있어 군대의 가장 힘든 점은 바로 계속해서 이별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곳에 몰아놓고 살게 해놓으면서 반쯤 강제로 정을 붙여놓고서는, 때가 오면 떠나보내게 만드는 참 웃긴 집단이다. 매일같이 얼굴을 보던 사람들인데 갑자기 없어지니 황량하기만 하다. 그렇다고 해서 누굴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다들 좋은 이유로, 그냥 시기가 왔으니 서로 갈 길을 가는 것이니까. 그런데 더 잔인한 것은, 생각보다 그 사람들의 빈자리에 빠르게 익숙해진다는 것이다. 이미 여기에서 한두 번 경험한 것이 아니니 알고 있다. 하루 이틀 정도는 좀 허전하겠지만 일주일쯤 지나면 금세 이에 익숙해진다는 것. 혼자 이런 생각을 되뇌고 있으니 이 노래가 생각이 났다.


“사는 사람”은 이별 노래라기보다는 이별 후의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다. 끝까지 붙잡고 싶어 지지만 어느새 살며시 흐려지고 옅어져 가는 기억들, 그럼에도 우리는 그것들을 뒤로하고 결국 살아간다. 생각보다 괜찮다는 말은 긍정의 의미지만 조금은 서글픔을 내포하고 있다. 옆에 없는 것이 어색한 사람들이었지만, 언젠가는 결국 내 전화번호부에 남아있어도 차마 먼저 인사를 건네기에는 주저하게 되는 그런 존재가 되겠지. 나중에 몇 번 정도는 만날 수도 있겠고 운이 좋으면 그 이상이 될 수도 있겠지만 뭐, 다들 거기서 거기 아니겠어. 이런 생각에 잠겨 노래를 듣고 있으니 공허하게 맴도는 스트링 멜로디와 잔뜩 꾸며낸 기타 사운드가 내 기분을 조금 더 힘들게 한다.


평론가 이동진이 <토이 스토리 3>를 두고 했던 말이 기억난다. “어떤 이별은 그저 그들 사이에 시간이 흘러갔기 때문에 찾아온다.” 맞다. 내 탓도 너희의 탓도 아니다. 그냥 시간이 흘렀으니까 자연스레 서로 멀어지게 되는 것이다. 너무 청승맞아 보이나? 어차피 시간도 가지 않는 거, 이번 주 정도는 이런 감정에 살짝 잠식된 채로 시간을 좀 보내볼까 한다. 차라리 못된 사람들이었으면 후련하게 보내줬을 텐데, 끝까지 돌아보면서 손을 흔들던 착한 인간들이라서 더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다. 그래도 이제는 내가 보낼 사람들은 거의 없고, 내가 떠나갈 때가 더 근접했으니 차라리 다행인가도 싶다. 기분이 묘하다. 그만 노래를 꺼야겠다.


(원 게시일: 21.05.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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