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출력할, 프린트를 샀다

막시멀리스트의 지름기

인정한다. 나는 알아주는 막시멀리스트다.

유학생활 시작할 때 부터 가구 없는 집에 들어가서, 나올때는 가구가 꽉 채워지곤 했다. 어쩌다보니 그렇게 살아왔다. 제일 첫 집 (엄밀히 따지면, 독일에 살았던 제일 첫 집은 여럿이서 살았으니 딱히 가구를 놓지 않았고, 그로부터 대략 3개월 뒤 정식으로 시작한 혼자살이 유학생활의 첫 집!!!) 은 가구가 있던 집이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가 계속 채워졌다. 이사가는 지인에게서 얻어 온 라디오라던지 등등.

그로부터 지금까지 계속 이고지고, 버리지 못하는 성격도 한 몫 할지어다. 어릴 때 부터 포장 부스러기 하나도 의미 부여! 하면서 어딘가에 쑤셔 박아두곤 했었으니. 세상 모든 물건에 의미를 부여하는 *NPF 스러운 성격이어서 창고는 항상 가득 찼다. 그리고 다음 이사 때가 되면 상자 째로 없어지곤 했지.

블랙 프라이데이에 세일하겠거니 하고 장바구니에 넣어뒀던 프린트는 세일하지 않았지만, 대신 아마존에서 5개월 할부 구매 찬스로 나왔다. 일반적인 프린트가 아닌 무려 사진 전용 프린트!

챗gpt 에게 마음에 들 던 두가지 모델을 묻고 또 물었다. 하나는 출시된 지 조금 더 오래됐지만 그만큼 가격이 쌌고, 출력 잉크도 더 적었다. 하나는 좀 최근에 출시된 모델이었고, 출력 잉크 갯수도 더 많았다. 그만큼 가격은 거의 3배. 사실 사람의 마음이란게...보다보니 조금 더 보태서 "그거 살 바에는 이거 산다" 하고, 또 더 보태서 "이왕이면 조금 더 보태서 이거..." 이렇게 업그레이드 되지 않는가. 이미 내 맘도 정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잉크가 더 많으니 얼마나 더 색을 잘 뽑아내겠냐며!! 챗 gpt 역시 이미 "답정너" 스러운 답이었다- 가까이서 보면 차이가 날 수 있어요, 아니 그렇다면 이왕이면 다홍치마 아니냐며.


집으로 도착한 프린터를 보자마자 남편은 사색이 되었다. 언제나 일단 지르고 보는 막시멀리스트 부인인지라, 극으로 미니멀리스트를 추구하는 남편에게 우리집은 그야말로 꽉꽉 차있는데, 아니 이 사람이 무슨 사람 상반신 만한 길이의 프린트를 배달시켰대? 그러나 막시멀리스트 부인은 그저 뿌듯했다. 낑낑대며 어찌저찌 자리를 만들고, 남편은 그 위에 천을 덮어 가려버렸다. 그야말로 거실에 한자리 떡 차지하고 있었으므로.


테스트를 핑계로 사진을 하나 뽑아보았다. 일반 프린트와 달리 더 많은 잉크 가짓수를 가지고 만들어낸 인화물은 일단, 매우 흡족스러웠다. 이 맛에 사진 뽑는구먼, 싶은 생각이었다. 집 벽에 주렁주렁 걸어둔 액자들을 수시로 바꿀 생각에, 그리고 비어있는 칸에 어떻게 하면 또 액자들을 집어넣지 할 생각에, 막시멀리스트는 벌써부터 신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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