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처음
청해
‘처음’이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살짝 떨리면서도 설렘과 긴장이 동시에 찾아오는 느낌이 들어요. 낯설고 어색하지만 동시에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와 가능성이 담겨 있죠. 어떤 문이 열리기 직전의 그 미묘한 순간, 무언가를 처음 마주하는 순수한 순간의 빛 같은 느낌도 떠오르고요. 그래서 ‘처음’은 늘 불안하면서도 아름다운, 시간 속에서 반짝이는 한 점 같아요.
저는 그랬어요. 시를 처음 배울 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라고 생각했습니다. 이 말이 파블로 네루다의 시, 「시」의 구절임을 알게 되었을 때 ‘아, 나만 이런 생각을 하는 게 아니었구나’ 하고 놀랐고, 네루다의 시를 가끔씩 꺼내어 읽으며 ‘시를 쓰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가’ 하는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찼습니다
시
파블로 네루다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나를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
언제 어떻게 왔는지 모르겠어,
아냐, 그건 목소리가 아니었고, 말도 아니었으며, 침묵도 아니었어,
하여간 어떤 길거리에서 나를 부르더군,
밤의 가지에서,
갑자기 다른 것들로부터,
격렬한 불 속에서 불렀어,
또는 혼자 돌아오는데,
그렇게 얼굴 없이
그건 나를 건드리더군.
나는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어, 내 입은
이름들을 도무지
대지 못했고,
눈은 멀었어.
내 영혼 속에서 뭔가 두드렸어,
열이나 잃어버린 날개,
그리고 내 나름대로 해보았어, 나름대로 해보았어,
그 불을
해독하며,
나는 어렴풋한 첫 줄을 썼어
어렴풋한, 뭔지 모를, 순진한 난센스,
아무것도 모르는 어떤 사람의 순수한 지혜;
그리고 문득 나는 보았어
풀리고
열린
하늘을,
유성들을,
고동치는 논밭
구멍 뚫린 어둠,
화살과 불과 꽃들로
들쑤셔진 어둠,
소용돌이치는 밤, 우주를.
그리고 나, 이 미소한 존재는
그 큰 별들 총총한
허공을 위해,
신비의
모습에 취해,
나 자신이 그 심연의 일부임을 느꼈고,
별들과 더불어 굴렀으며,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시를 쓰게 된 동기는 제가 하던 일을 접어야 할 때였던 것 같아요. 그러니까 ‘도태’라는 말이 어울리는 데, 저는 88년도부터 집에서 학생들을 가르쳐왔습니다. 그 일 밖에 몰랐던 제게 어느 날부터 학생들이 줄기 시작했습니다. 나이에 밀린다는 건 참 서글픈 일이지요. 아마 학생들에 대한 이해도, 경험의 깊이가 학생들을 더 깊고 넓은 시각으로 나눌 수 있겠다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은 오산이라는 것을 하루하루 느끼며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혼자만의 시간이 늘어나면서 저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우울증에 걸리게 되었죠. 하루 종일 잠에 취해 있었고, 깨어있는 동안에도 눈이 떠지지 않았습니다. 불에 올려놓은 음식들을 태우는 것은 흔한 일이 되었고, 많이 먹지 않던 사람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은 먹을 것을 찾지 못하고 여기저기 뒤지다가 냉장고를 열고 김치를 꺼내 먹고 있는 나를 발견했습니다. 얼마나 울었는지 몰라요. 그 순간에도 손에서 김치를 놓지 않고 있었어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서 ‘혹시 내가 치매가 걸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동네에 있는 보건소를 찾아갔어요. 간단한 검사였는데, 100에서부터 7을 계속해서 빼라고 하거나, 오늘은 무슨 요일이냐고 묻거나, ‘백문이 불여일견’의 뜻을 물어보는 등, 그런 검사였어요. 그런데 그 ‘백문이 불여일견’이 무슨 뜻이냐고 묻는데 쭈뼛거리며 한참 대답을 못하고 있더라고요. 제가. 아직 치매는 아니다는 답을 가지고 보건소 밖을 나오긴 나왔는데 그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말의 뜻을 주저했다는 것이 얼마나 창피했는지, 어처구니없는 마음으로 집을 향하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제 눈에 ‘문화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저는 그곳에 들어갔어요. 접수처에서 제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 프로그램 책자를 읽고 있는데, 저는 활동적인 사람이 아니라서 글 쓰는 것이 눈에 띄었습니다. ‘수필’과 ‘시’였는데, 어느 것을 수강하시겠냐고 묻는데 제가 손으로 가리킨 것이 바로 ‘시’였습니다. 이것이 제가 시를 배우게 된 동기입니다. 평생 아이들과 씨름하다 보니 책을 접하는 것은 교과서와 문제집이 전부였던 제게 ‘시’라는 엄청난 파도가 몰려오기 시작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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