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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새로운백년 Sep 08. 2023

첫 번째 거절 메일을 받았다

첫 번째 거절 메일을 받았다. 원고 투고를 시작한 지 약 2주 만이었다. 원고를 보낼 당시 몇몇 출판사에선 곧장 회신이 왔었다. 원고를 보내줘서 고맙고 검토 과정을 거칠 것이며 출판 진행이 어려울 시 답변이 없을 수 있다 등등… 복사와 붙여넣기 사이에 내 이름과 제목을 끼워 넣어 보낸 메일이었다. 처음 원고를 투고해 본 작가 지망생의 입장에선 그마저도 감사할 따름이었다. 출판사님들께서 내 원고를 검토해주신다니.. 혹시나.. 뭐 그런 잠깐의 기대에 부푼 꿈도 꾸긴 했었다.

그리고 2주의 고요한 시간이 흘렀다. 그 사이에 몇몇 출판사에 더 메일을 넣긴 했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투고 전 다른 작가 지망생들의 후기를 찾아봤을 때, 대부분 원고 검토에 2주에서 길게는 몇 달씩 걸린다는 이야기를 읽어봤던 터라 조바심을 갖지 않으려고 했다. 게다가 수십 군데에서, 많게는 100군데 이상 연락을 돌려도 한두 군데 연락이 오면 다행이라는 글을 익히 봐왔기에 큰 기대를 하지 않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게 어디 사람 말처럼 쉬운 일일까. 자꾸 메일함을 열어봤고, 출판사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소식 등을 주기적으로 찾아봤다. 고작 2주에도 피가 말리는 듯했다.


저기… 2주 정도 지나지 않으셨나요..

이제 그만 답을 주세요… 거절이라도 좋으니 무슨 답이라도…


넉넉한 마음으로 기다리겠다고 다짐했다가, 갑자기 조바심을 갖게 된 데는 아무래도 공모전이 큰 영향을 미쳤지 않았나 싶다. 8월 말에는 ‘지하철 시 공모전’ 수상작 발표가 있었다. 다소 가벼운 마음으로 큰 고민 없이 시 1편을 써서 내긴 했었지만, 글에 들인 노력과는 달리 나는 꽤 무거운 상상을 했었다.


당선되면 과연 어떤 역에 내 시가 걸릴까 

아무리 먼 지하철역이라도 찾아가서 반드시 인증샷을 찍어야지

지인들이 우연히 지하철역에서 내 시를 발견하면 얼마나 뿌듯할까?


헛된 희망이 내 안에서 자꾸만 부풀었다. 이건 아무래도 입으로 불어 넣는 수준이 아니라 공기주입기 같은 기계로 거대한 바람을 불어넣는 수준이었다. 온몸이 커다란 풍선이나 열기구처럼 부풀어서 두둥실 떠오를 것처럼 기대는 몸집을 부풀렸다. 그리고 드디어 공모전 발표 당일. 이 사실을 알고 있는 지인에게는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아침부터 심장이 터질 것 같았다. 한 오라기의 희망도 없는 것처럼 평온해지려고 했지만, 잔뜩 부푼 마음은 쉽게 바람이 빠지질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당선작이 발표되고, 리스트를 10번 가까이 뒤지고서야 내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직시하게 됐다. 물론 저녁에 날 위로하기 위해 찾아온 지인 앞에서도 기대하지 않은 척했다. 솔직히 기대한 적 없었다고. 그렇게까지 열심히 작품을 쓴 것도 아니었다고. 그냥 경험 삼아 해본 거였다고 허세 아닌 허세를 부렸다. 하지만 오직 나만 알았다. 열심히 쓴 게 아닌 건 사실이었지만 그 외엔 모두 거짓말이었다. 너무 큰 기대를 했었다. 나를 과대평가했었다.

글을 제대로 써보겠다고 호기롭게 회사를 때려치웠다. 요즘 세대가 많이들 그러하듯, 꿈을 찾기 위해 회사를 떠났다. MZ세대니, 갓생이니, N잡러니 하는 것들이 좋아 보였다. 나도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다는 작은 희망이 있었다. 화창한 백수 생활을 꿈꿨지만, 내가 맞닥뜨린 건 38도에 육박하는 뜨거운 여름과 좀처럼 손에 잡히지 않는 뜬구름뿐이었다. 처음엔 뜬구름 잡는 심정으로 허무맹랑한 꿈을 놓지 않고 살아야지 다짐했지만, 이미 직장생활로 안정적인 삶의 달콤함을 맛봤고 당장 부양해야 할 고양이와 여기저기 매달 빠져나가는 돈을 생각하니 자꾸 생각이 현실로 곤두박질치는 느낌이었다. 그런 데다가 공모전에서 떨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나니 순간 휘청였다. 마치 처음 받는 성적표에서 굉장히 안 좋은 성적을 받은 느낌이었다.

이런 일들이 겹치다 보니, 여유롭게 기다려 보겠다고 다짐했던 출판사 소식도 자꾸 조바심이 생겼다. 뭐라도 좋으니, 손에 잡힐 만한 결과를 얻고 싶었다. 무소식이 희소식이랬지만, 출판사에선 어차피 무소식이 곧 출판 거절의 의미였다. 차라리 무소식으로 거절당하는 게 덜 상처가 될까 생각도 했지만, 막상 영영 오지 않을 소식을 기다리는 일이 막막했다. 그게 좋은 성적이든 나쁜 성적이든, 어떤 결과라도 있어야 당장 마음을 놓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출판사 정보는 안 보이게 캡처했으니 문제 없겠지…



그 와중에 드디어 첫 번째 거절 메일이 온 것이다. 대단한 성의가 느껴지는 답변은 아니었다. 원래 만들어 둔 예쁜 템플릿에 내 이름과 책 제목을 끼워 넣은 의례적인 메일이었다. 그것만으로도 좋았다. 드디어 제대로 된 첫 번째 성적표를 받은 기분. 그다지 정성스러운 답변도 기다리던 답도 아니었지만, 답변받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숨이 쉬어지는 기분이었다.

망망대해를 표류하듯 길을 잃은 것 같았던 2주였다. 여전히 이루어진 건 없고 앞으로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그래도 작은 결과가 또 다른 시작이라 생각하며, 거절도 답이라 여기며.

아, 이럴 시간에 원고나 더 고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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