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오의 햇살을 스케치하다
첫 키스를 하는데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멱살을 잡고 했대요. 브레이크를 밟고 신호를 기다리는데 며칠 전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갑자기,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킥킥대는 소리가 밖으로 새 나갈까 봐 창문을 올렸지만 한번 터진 웃음은 쉽게 멈춰지지 않았다. 신호가 바뀌자마자 핸들의 방향을 마트가 아닌 도서관 쪽으로 틀었다.
'나중에 우리 아이도 그럴까?'
열아홉. 학교를 다녔으면 고등학교 3학년인 나이. 아들은 사복을 입고 아침마다 도서관으로 등교를 한다. 열람실과 멀티미디어실에서 공부를 하고, 외국어 자료실에 앉아 책을 읽는다. 도서관 식당에서 밥을 먹고, 도서관 앞에 있는 작그마한 잔디밭에서 햇볕을 쬔다.
아들 생각에 도서관으로 갔다. 연한 새순이 돋은 녹나무 아래 주차를 시켰다. 온통 초록빛인 잔디를 쳐다보다가 바람보다 풀이 먼저 눕는다던 어느 시인의 말이 떠올랐다. 도서관의 풀은 지적(知的)이라서 더 꼿꼿하지 않을까 싶어 실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봤다.
'풀과 바람의 관계는 어떤 것일까?'
4년 전이다. 나는 바람보다 먼저 눕는 풀이되고 싶었다. 학교를 그만두고 싶다는 아이의 말은 거센 바람처럼 들렸고 그것이 바람이라면 그냥 지나가기를 간절히 바랐다. 엎드려 기도했고 수시로 이야기했다. 하지만 아이는 결국 학교 밖으로 나왔다. 내 엎드림이 낮지 못했는지, 바람의 색깔이 달랐는지, 아이는 도서관에서 혼자 공부하는 걸 선택했다.
열람실 한쪽에서 아이의 등을 발견했다. 찰싹, 예의 없는 행동을 할 때면 불그스름한 손자국이 남을 만큼 세게 때렸던 등이다. 이제는 제법 널찍하고 꼿꼿해졌다. 그 등 위로 정오의 햇살이 위로하듯 쏟아지고 있었다. 책상 옆에는 반듯하게 챙겨놓은 외국 원서가 눈에 띄었다.
지난주에 내게 제출한 리포트에는 요즘 들어 학교 가는 꿈을 자주 꾼다고 했다. 인생의 하이킹을 하고 있다는 말과, 군데군데 박힌 ‘외로움’이라는 단어가 내 눈을 아프게 잡아맸었다. 여물지 않은 입에서 터져 나온 ‘외로움’은 어느 정도의 중량감일까. 아들의 말대로 이 과정이 하이킹이라면 앞으로 얼마나 더 페달을 밟아야 할까.
따끈한 등을 멀리서 바라보다가 밖으로 불러내 맛있는 거라도 사줄까 생각하다가 집중하는 아이에게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아서 그만두었다. 머리부터 어깨 등으로 이어지는 아들의 굴곡이 마치 제 자신의 인생곡선인 듯해서 한참을 바라보았다.
'그래, 나는 이렇게 뒷모습만 바라보는 거지.'
서가를 지나며 다시 힐끗 쳐다봤다. 아이는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내가 몇 권의 책을 대출받는 동안에도 묵묵히 자리에 앉아있었다. 열람실을 나오면서 한 번 더 뒤돌아봤을 때는 펜을 잡고 무언가 열심히 쓰고 있었다.
‘아들아! 이제 갈게, 널 믿어.’
인사를 하고 출입문 손잡이를 돌리는데 눈앞 유리창에 뽀얀 입김이 피어났다. 순간 내 얼굴은 사라지고 어린 아들의 얼굴이 보였다. 유난히 눈이 컸던 아이, 순하고 무던했던 아이다. 영특했다느니, 반듯했다느니 하는 식상한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 나는 지금 도서관에 앉아 있는, 학교 밖으로 나온 내 아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훈련을 하고 있으니까.
홈스쿨링 합니다. 집에서 공부해요.
솔직하게 말할 때마다 야릇한 시선들이 나를 조각했다. 다니던 학교에 학습 유예 신청서를 낼 때도 그랬다. 사유를 쓰는 란에는 학교 부적응이나, 교우관계의 어려움이라고 적어야만 했다. 자기만의 공부를 하기 위해서라는 이유는 인정되지 않았다.
답답한 마음에 아들을 변호하고 싶었던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떤 아이인지, 왜 학교를 그만두었는지… 가끔은 지나가는 사람들을 붙잡고 얘기하고 싶은 날도 있었다. 하지만 꾹꾹 눌러가며 소화시켜야 했다. 이 시간을 이기고 넘어서고 나면 그땐 내가 이야기할 날이 올 거라고. 혼자 수 백번 수 천 번을 되내었다.
학교 밖 청소년이 늘고 있다. 이유야 다르겠지만 전국적으로 7만 명 이상을 추정하고 있다. 내가 살고 있는 제주도에도 약 400여 명이 있다고 하니 그 수가 꽤 많은 것이다. 그래서 한국 청소년 상담원에서는 ‘해밀’이라는 이름으로 학교 밖 청소년들을 돕고 있다고 한다.
글쓰기 강좌를 함께 수강하는 열일곱 살 K도 학교 밖 청소년이다. 긴 파머머리에 뽀얀 화장을 한 첫인상은 도강을 듣는 대학생처럼 보였다. 혼자 검정고시를 준비한다고 해서 관심 있게 지켜봤는데 지난 4월에 전 과목을 합격했다.
예술 고등학교에 진학하려는 K나, 미국 교과서(SOT)로 홈스쿨링을 하는 아들에겐 공통적인 요구가 있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해 달라는 것이다. 이해를 구하는 아이들에게 그러마, 하고 선뜻 답해 주고 싶지만 자꾸 머뭇거리게 된다. 내가 진심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 확신이 서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understand)는 밑에 서서 생각하는 것이다. 밑에 서서 생각하면 이해되지 않는 것이 없는데 나는 습관적으로 위에서 내려다본다. 뭔가 훤히 아는 것처럼 잔소리를 늘어놓으며 답답해한다. 나도 이해받기를 원하면서.
오늘 밤엔 아들과 함께 외로움의 숲길을 걸어봐야겠다. 걷다가 들꽃 한 송이를 꺾어 귓가에 꽂아 주고 나란히 어깨를 붙이고 가야겠다. 그러다가 멱살을 잡고 뽀뽀를 해주면 어떨까. 벌써 아들의 표정이 그려진다.
(2017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