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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가족이 되는 시간 Nov 13. 2021

나니아 연대기 속으로

1. 우리는 서로의 삶을 위탁하기로 했다


결혼 20년 만에 아파트를 샀다. 애들도 다 키우고 이제 조금 자유를 누리는구나 하며 선물 같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수시로 집 청소를 하고, 오후엔 초등학교에 나가 그림책  방과 후 수업을 했다. 주말엔 도서관에 가서 제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열람실에 앉아 책을 읽었다. 내가 오랫동안 소원하던 꿈, 그래 꿈을 이뤘다. 


그런데 이상했다. 자꾸만 께름칙한 감정이 올라왔다. ‘이렇게 좋은 걸, 혼자 누려도 되나?’ 수시로 자문하는 시간이 잦아졌다. 일찌감치 집 장만하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도 많은데, 나도 이걸 평범하게 받아들이고 조금 더 나은 삶을 꿈꾸면 안 될까? 마음을 다독이며 한차례 눌렀다. 그래도 내 마음 깊은 곳에서는 자꾸만 자문해 왔다. '이렇게 좋은 걸 혼자 누려도 돼?'

   

친정어머니가 그랬다. 부침개 하나를 부쳐도 앞집, 뒷집 다 나눠 주셨다. 어린 나는 접시를 들고 이 집 저 집 심부름을 다니며 나누는 즐거움을 배웠다. 아마 어릴 때부터 배운 것 같다. ‘뭐든 나누는 게 더 행복한 거구나.’ 그게 진짜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면서.


‘좋은 것을 갖는 것=좋은 것을 나누는 것’이라는 공식이 DNA 깊숙이 박혀 버렸다. 아파트를 사고도 자꾸 께름칙한 감정이 올라온 건, 그걸 혼자 누리고 있는 내 모습이 이상해서였다. 조금씩 나를 이해했고, 그다음 생각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됐다.

‘그럼 이걸 어떻게 나누지?’


입양이나 위탁은 예전부터 생각만 하고 있었다. 그런 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사람이 하는 거고, 좀 더 안정된 사람이 하는 거라고 계속 나를 합리화했다. ‘나 같은 사람이 뭘. 그런 건, 아무나 하나?’ '괜히 덤볐다가 포기할 거면 애초에 그만두는 게 나아!' 나는 안 해도 될 이유를 수백 가지 대면서 나를 합리화하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그 용기가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에 내가 먼저 전화를 했다. 담당 직원이 반색하며 설명 차 집으로 찾아왔고, 그때부터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마치 『나니아 연대기』의 장롱처럼 난 새로운 세계의 문을 열고 한발 한발 들어가고 있었다.


위탁 부모가 되려면 가족 전체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기적으로 열리는 기본교육, 심화교육, 자조모임에도 참석해야 한다고 했다. 센터와 긴밀히 연결되어서 지속적으로 교육받고, 관리를 받아야 한다는 설명이었다. 


‘그렇구나, 내가 모르는 게 많네. 교육도 계속 받아야 하고.’ 

그땐 먼 훗날의 일이라고만 생각했다. 교육만 받고 상황이 되면, 키울 만한 아이와 연결이 되면, 그때 할 수 있는 거라고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그리고 조금은 편안해진 일상으로 돌아왔다.



가정 위탁은 가족 모두의 동의가 있어야 시작할 수 있다. [사진 제주가정위탁지원센터 제공]


신청서를 작성하고 한 달쯤 지났을까, 가정위탁지원센터로부터 전화가 왔다. 일곱 살 남자아이를 맡아 키워줄 수 있냐는 전화였다. 얼마나 급했으면 나에게 전화했을까, 준비도 안 된 나에게. 그렇게 사람이 없나 하면서도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아이의 친부모는 사별했고 아빠는 선원이라 배를 타고 나가면 몇 달씩 돌아오지 못한다고 했다.


사실 위탁 부모를 만나 새로운 가정에서 생활했었는데 그분들 상황이 안 좋아져서 두 번째 위탁 부모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운전대를 잡은 손이 자꾸만 떨려왔다. 하얀 머릿속을 헤집으며 정중하게 거절할 문장을 만들었다, 지우고, 만들었다, 지웠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이 안에 친부모와 첫 번째 위탁 부모에 대한 거절감이 있지 않을까? 그걸 내가 품을 수 있을까? 아이는 곧 초등학교 입학인데 내가 학부모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고개를 흔들었다. 난 위탁 부모 교육도 더 받아야 하고 마음의 준비도 더 해야 할 것 같았다. 미안함을 누르고 어렵게 거절했다. 문제는 그날 밤부터였다. 나도 남편도 마음이 무겁고, 찜찜하고, 걱정스럽고, 울렁거리기까지 했다. 차라리 몸이 힘든 게 낫다고 생각될 만큼. 


그러면서 결심한 게 있다. 다음엔 어떤 의뢰가 오든 무조건 받아들이자고. 어떤 아이든, 어떤 조건이든 따지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그 약속을 잊을 때쯤 다시 전화가 왔다. 11개월 여자 아기인데 친엄마와 미혼모 시설에 살고 있다고 했다. 퇴소 시기가 지났는데 아기 때문에 퇴소를 못 하고 있다고. 그러면서 조심스레 한마디 덧붙였다. 


친엄마가 지적장애예요.



별생각이 다 들었다. 그럼 유전 아닌가? 할 수 있는 건 하고, 할 수 없는 건 정직하게 거절하는 게 맞는 거지. 나는 일을 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기를 키워? 다시 거절할 문장을 만들었다, 지우기를 반복했다.


은지가 처음 신발을 신고 흙을 밟았다. 2015년 어린이날 (제주 한림공원에서)



가족들과 함께 1주일간 생각하며 기도할 시간을 갖기로 했다. 그리고 1주일이 지난 주말 온 가족이 모여 앉았다. 

"난, 우리에게 보내주신 아이 같아. 지난번에 약속했잖아. 다음엔 어떤 아이든 받아들이자고. 그 약속이 생각나더라고." 

그래, 그렇게 약속했었지. 그런데, 그런데 말이야. 난 지금 일을 하고 있고, 이제 겨우 눈곱만큼의 여유를 느낄 것 같다고. 그런데 다시 아기를, 그것도 돌쟁이 아기를.


우리가 아이를 선택하면 안 될 것 같아.
우리가 맞춰야지.



“엄마, 주말엔 내가 친구들이랑 아기 봐 줄게요.”

“그럼 전 아기가 어린이집에서 오면, 놀이터 가서 놀아줄게요.”

가족들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사실 내 안에도 두려움보다 조금 더 큰 기대가 있었다. 혼자 할 순 없지만 함께라면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단, 체력이나 시간이 문제였다. 


하얀 눈의 나라 『나니아 연대기』 속으로 들어가는 건 두려움과 설렘, 기대의 행보였다. 두리번거리며 낯선 세계를 탐색하고 그 안에서 싸우고 사랑하는 사이, 우린 분명 성장할 것이다. 그래 해보자. 함께라면 할 수 있다. 장롱문을 힘껏 열고 새로운 세계로 한발 한발 걸어 들어갔다.



** 가정위탁제도란? 

친부모의 사정(사망, 이혼, 질병, 수감 등)으로 친가정에서 자랄 수 없는 아동에게 

다른 가정을 제공하여 보호하는 아동복지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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