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나 목이 안 좋아서 병원 가야겠어.’
‘그래? 집 근처 이비인후과 찾아 봐.’
‘아니야, 가던 병원 갈 거야.’
‘휴간데 뭘 거기까지 가.’
‘간 김에 성대 상태도 체크하려고.’
‘그럼 혼자 후딱 갔다 와.’
‘같이 가자.’
‘내가 왜?’
‘혼자 있음 뭐해. 우리, 병원 갔다 맛있는 거 먹을까?’
‘… ….’
‘엄마, 흔들렸지?’
‘흔들리긴. 나 바쁜 사람이야.’
‘거기 스시 잘하는 집 있어. 엄마랑 같이 가고 싶었는데, 잘됐다 오늘 가자.’
‘스~시~~이~~?’
‘어때? 좋지? 가자.’
‘몰라. 거기 갔다 오면 또 하루가 그냥 훅 가는데.’
‘엄마, 좀 쉬어. 그동안 너무 달렸어. 숨도 고를 겸 오늘은 쉬어. 그리고 글은 이번 주는 건너뛰고 다음 주에 올려.’
‘좀 있어 봐. 생각 좀 해보고.’
‘생각은, 가려면 빨리 옷 입어.’
‘너 화장은?’
‘나 오늘 화장 안할 거야.’
‘너 화장 안하면 의사선생님이 못 알아보는 거 아냐?’
‘나 화장 안 해도 예쁘거든요? 대학생일 때부터 다녀서 내 민낯을 이미 알고 계시거든요?’
‘오늘 나나 발레 가는 날이야. 늦어도 세시 반까지는 와야 해.’
‘충분하고도 남아.’
‘오케이, 출발!!!!’
나는 가방과 책을 들고 따라 나섰다.
‘그 책은 왜?’
‘너 기다리면서 읽으려고.’
지난 토요일에 딸과 함께 연극 리어왕을 관람했다. 연극을 관람하게 된 동기는 대배우 이순재가 주역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평생 그의 연기를 봐온 대중으로서, 그의 마지막일지도 모를 연극 무대를 직관 하는 것이 평생 연기를 해온 배우에 대한 예우라는 책임을 느꼈기 때문이기도 했다.
-공연 시간 200분. 이순재(85세)는 원캐스팅으로 첫무대부터 마지막 무대까지 리어왕으로 선다. 매일 8시간 연습하는 강행군 중. - <리어왕 기사 내용 中>
-셰익스피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언어 구사다. 비유나 문학적 수식이 많아서 배우가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으면 내용 전달이 안 된다. 연기의 기본은 말이다. - <이순재의 일문일답 中>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나는 이순재는 물론 대부분 연기자들에게 큰 실망을 안고 돌아왔다. 내 생각에는 무대에 선 배우 중 누구 하나 그 중요하다는 언어구사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리어왕이 희극이었나? 공연 중 중간 중간 터져 나온 것은 비통의 탄식이나 울음이 아닌, 웃음 또는 헛웃음이었다.
딸이 운전 중인 차는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날씨 너무 좋다. 올해는 유난히 하늘이 예쁜 것 같아.’
‘스시는 돈만 비싸고 먹고 돌아서면 왠지 뭔가 더 먹어야 될 것 같기도 하고.’
‘뭐야? 난 하늘을 보고 있는데 엄만 먹을 거만 생각하고 계심? 그래서 결론은?’
‘스시 말고 떡볶이 먹을까?’
‘떡볶이?’
‘며칠 전부터 떡볶이가 당기더라고. 사실 오늘 아점으로 떡볶이 배달시켜 먹으려고 했거든.’
‘난 좋아.’
‘병원 근처에 떡볶이 잘하는 집 있어?’
‘서울에 삼대 떡볶이 맛집 찾아볼까?’
‘신당동 떡볶이는?’
‘엄마 거기 안 좋아하잖아?’
‘오늘은 왠지.’
나는 코맹맹이 소리를 냈다.
‘뭐야? 좋아 가자.’
‘병원은 아직 멀었어?’
‘엄마, 병원 안 와 봤구나. 다 왔어. 저기 보이는 저 상가 건물이야. 갔다 올 동안 책이나 읽고 계셔.’
‘많이 기다려야해?’
‘오늘 월요일이라 환자 많을 듯.’
‘배고파.’
‘나도.’
딸은 주차를 한 후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차에 남은 나는 책을 폈다. 대사를 읽을 때마다 각각의 역을 맡았던 배우들의 말과 몸짓들이 떠올랐다. 머리가 좌우로 흔들렸다. 나는 대사 한 마디 한마디를 곱씹어 읽었다.
‘엄마!’
‘빨리 왔네?’
‘환자가 없더라고.’
딸은 운전석에 앉더니 네비게이션으로 길을 찾았다.
‘신당동으로 고고!’
‘얼마나 걸려?’
‘사십 분.’
‘뭐? 그냥 이 근처에서 맛있는 거 먹을까?’
‘그만! 일단 정했으니 끝. 자꾸 딴소리하려면 책이나 읽어.’
‘달리는 차에서 어떻게 읽니?’
‘그럼 자.’
‘잠이 와야 자지?’
‘그럼 조용히 눈 감고 있어.’
‘쳇!’
때마침 휴대폰 벨이 울렸다.
‘하이~~~! 어쩐 일이야?’
‘내일 모임 장소 어디에요?’
‘얘. 내가 지난번에 명함 찍어서 카톡 단체방에 올려놨잖니.’
‘그래요? 확인해 볼게요. 뭐하고 계세요?’
‘딸 휴가여서 같이 병원 갔다가 신당동 떡볶이 먹으러 가는 중.’
‘좋으시겠다. 부러워요. 재밌게 맛나게 잘 다녀오세요.’
‘오케이. 내일 봐.’
통화를 끝내자
‘엄마, 조용히 좀 말해. 시끄러 죽겠어. 목으로 말하지 마. 엄마 목소리 듣고 있으면 내 목이 더 아파.’
‘안 들으면 되지. 가만, 내일 모일 장소 사진이 어디 있더라? 여기 있네. 그럼 이 사진을 다시 한 번 올려 주고. 됐다. 화우 여러분!!!! 내일 열한 시에 만나요.’
나는 손과 입으로 카톡 단체방에 사진과 공지 사항을 올렸다.
‘엄마, 엄마는 카톡도 시끄러워.’
딸은 농담 반 진담 반을 말했다.
‘너도 내 나이 되면 알게 될 거다. 아 그때 엄마가 이래서 그랬구나 하고. 그때 가서 아이고 엄마 미안해서 어쩌나 울고불고 후회하지 말고 지금 잘 해.’
‘나같이 잘하는 딸이 어디 있다고.’
‘내 나이엔 그렇게 말을 중얼중얼하면서 행동을 해야지만 빠진 거 없이 잘 마무리 할 수 있단 말이야. 알겠냐? 딸아!’
‘같이 그림 그리는 분들한테 딸이 엄마는 카톡할 때도 시끄럽다 했다고 말해 봐. 엄청 좋아할 걸?’
딸에게서 시선을 돌리니 차창으로 예술의 전당이 보였다.
‘너 사람들한테 그 셰프 얘기 했어?’
‘아니.’
‘그 날 사인을 받았어야 하는데, 펜도 없고 종이도 없어 갖고.’
‘그 날, 지금 생각해도, 쥐구멍이라도 있음 들어가고 싶다.’
“왜?‘
‘왜는 뭐가 왜야, 엄마 때문이지.’
‘내가 뭘?’
나는 딸에게 입을 삐죽이며 양 쪽 어깨를 올려 보였다.
연극 리어왕을 보러 간 날이었다. 딸과 이른 저녁을 먹고 여섯 시 공연을 보기 위해 토월극장으로 가던 중이었다.
오페라 하우스로 가려고 에스컬레이터를 탔는데 뒤에서,
‘옷자락이 걸려서 다칠 것 같은데요.’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 딸은 뒤를 돌아보았다.
‘네? 어머나! 감사합니다.’
딸은 뒤돌아서 인사를 한 후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엄마, 오셰프야.’
‘뭐?’
‘뒤에 오셰프라고.’
나는 빠르게 고개를 돌렸다. 청바지에 빨간 후드티를 입은 오셰프가 뒤에 있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저 팬이에요.’
‘아, 네, 감사합니다.-
오셰프는 겸연쩍은 표정을 보였다.
‘저 셰프님 것만 사 먹어요. 떡갈빈가? ……, 뭐더라? 불고기? 소고기 떡갈비? 아니다, 소고기 한 판?’
급하게 말하려니 혀가 꼬였다.
‘아, 네. 감사합니다.’
‘엄마, 그만해. 사람들 보잖아.’
딸은 내 옷을 잡아당겼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 쪽을 바라보며 수군거리고 있었다.
‘참, 있잖아요, 저도 오씨에요. 00 오씨.’
‘아, 네.’
‘가만 보자. 0면, 항렬이 제 할아버지뻘이네요.’
‘하 하. 아, 네, 제가 할아버지라니.’
'저희 리어왕 보러 왔는데 셰프님도? '
'아뇨. 저는 다른. '
'그러시구나. 아쉽지만. 이만, 안녕! '
나는 오셰프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셰프 일행은 내가 앞을 내주자 성큼성큼 걸어 음악당으로 들어갔다.
‘그때 사인을 받았어야 했는데.’
‘됐어.’
‘나 사진 찍자고 하려다가 전에 △△△한테 거절당한 기억 때문에 안했어.’
‘잘했어.’
‘아직 멀었어?’
‘다 왔어.’
딸은 전에 자주 갔던 떡볶이집 앞에 차를 세웠다. 가게 안에서 아주머니 한 분이 나왔다.
‘주차는 어디에 하나요?’
‘차키 두고 내리시면 돼요.’
딸은 아주머니의 말대로 차키를 두고 차에서 내렸다. 점심시간 전이라 그런지 손님은 두 테이블밖에 없었다.
‘뭐로 드실래?’
‘글쎄’
나는 벽에 붙어 있는 메뉴판을 눈으로 읽었다.
‘그냥 기본 시킬까?’
‘기본에 만두랑 김말이 추가할까?’
‘그래.’
‘엄만 닭발 안 좋아 하지?’
‘좋아하진 않는데, 너 먹고 싶으면 시켜.’
‘한 번 먹어 봐. 맛있어.’
‘그러지 뭐.’
닭발이 먼저 나왔다.
‘와~~~~~! 맛있겠다! 이건 이렇게 먹는 거야.’
딸은 일회용 장갑을 내게 건넨 다음 장갑 낀 손으로 닭발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양념이 장난 아닌데? 진짜 맛있다. 엄마도 먹어 봐.’
순간 딸의 모습과 내 모습이 오버랩 되었다. 처음이었지만, 나도 장갑 낀 손으로 과감히 새빨간 닭발을 집어 입안에 넣었다.
‘어때? 맛있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딸의 말대로 매콤달콤하니 맛있었다. 이어 떡볶이가 넘치도록 담긴 냄비가 식탁 가스레인지에 얹혔다.
‘와!!!!!’
딸과 나는 탄성을 질렀다.
‘떡볶이엔 볶음밥이 진리지. 엄마, 다 먹고 밥도 볶아 먹자.’
‘그래그래.’
딸과 나는 본격적으로 먹방에 들어갔다.
‘나나 흰 티셔츠하고 흰 블라우스 사야 하는데.’
배가 불러 오자, 할 일이 생각났다.
‘그럼 먹고 잠실 갈까?’
‘여기서 잠실까지?’
‘시간 충분해.’
‘그래.’
‘아! 배불러. 볶음밥은 못 먹겠다. 엄마는?’
‘나도.’
‘갈까?’
‘응.’
‘커피는 나가면 카페 있어.’
‘좋아.’
딸은 계산대로 갔다.
‘어머니하고 오셨나 봐요?’
‘네. 저도 오년 만에 왔어요.’
‘너무 보기 좋아요. 차는 저기로 나가서 왼쪽에 있어요.’
아주머니는 딸과 내가 들어 온 반대쪽 문을 가리켰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 커피 사가지고 와서 갈게요.’
나는 딸과 아주머니의 대화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러세요.’
‘커피 드실래요?’
‘아니에요. 괜찮아요.’
‘아이스? 핫?’
‘아니에요. 아니에요.’
아주머니는 손사래를 쳤다.
가게를 나와 카페를 찾아 걷는데, 길 양쪽으로 다양한 떡볶이 가게들이 즐비했다.
‘여긴 완전 기업이네.’
‘그럼. 여긴 그냥 떡볶이 집들하고는 차원이 달라.’
‘앗, 여기, 그때 유00이 여기 와서 먹었구나.’
눈을 사방으로 돌려가며 구경하다 보니 카페에 도착했다.
‘네 잔 다 아이스로 할까?’
‘아니. 두 잔은 아이스, 두 잔은 핫. 핫으로 주면 아이스 먹고 싶으면 얼음 넣어서 먹으면 되지만, 아이스 주면 핫 먹고 싶어도 방법이 없잖아.’
‘오! 똑똑한데?’
‘내가 좀 많이 똑똑하지.’
딸과 나는 커피를 들고 왔던 길을 되돌아 떡볶이 가게에 도착했다.
‘어머나! 진짜 사오셨어요?’
‘핫으로 사왔는데 아이스 드시고 싶으면 얼음 타서.’
‘아, 네. 핫으로 먹을래요. 고맙습니다.’
‘갈게요. 또 올게요.’
딸과 나는 아주머니가 주차 해 놓은 차를 탔다.
‘그럼 롯데 타워로 고고 합니다!’
‘조으다조으다! 이런 게 행복이지 행복이 뭐 별거야? 만 원도 안 되는 돈으로 나도 행복 그들도 행복!’
‘맞아!’
딸과 나는 쉬지 않고 이야기꽃을 피우며 롯데타워 지하 주차장에 도착했다.
‘알지? 시간이 촉박하니, 속도전으로 골라 담아야 해.’
‘알겠어. 어른 옷도 볼 거야?’
‘당연. 이왕 왔으니 봐야지.’
딸과 나는 매장 지하에 있는 아동복 코너로 돌진했다. 이것도 이것도 이것도를 연발하며 딸과 나는 쇼핑 가방에 마구 집어넣었다.
‘그만. 너무 많아. 이제 어른 코너로!’
‘오케이!’
딸과 나는 어른 옷이 진열되어 있는 일층으로 올라갔다. 바쁘게 옷 진열대 사이를 누비다가 딸과 나는 서로를 보며
‘화장실 가고 싶어!’라고 속삭였다.
딸은 들고 있는 매장 쇼핑백을 가리키며
‘이거 어쩌지?’
‘카운터에 맡기자.’
‘안 돼.’
‘왜?’
‘화장실 갔다 온다고 맡아 달라 하면 뭐라겠어?’
‘창피해서? 이리 줘. 내가 말할게.’
나는 딸이 들고 있던 쇼핑 가방을 뺏어 들고 카운터로 직진했다.
‘미안한데 이것 좀 잠시 맡기고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매장 직원은 살짝 놀란 눈으로 나를 살폈다.
‘떡볶이를 먹고 왔는데, 배가 아파서. 이건 손녀 옷이고 내 옷도 살 건데 화장실이 급해서.’
나는 아동복만 가득 찬 매장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아, 네. 원래는 안 되는데 지금 손님이 안 계셔서. 얼른 다녀오세요.’
‘고마워요.’
나는 뒤를 돌아 딸에게 오케이 사인을 보냈다. 딸이 보이질 않았다. -어디 간 거야? - 딸은 매장 밖에 서 있었다.
‘엄마, 창피하게 뭘 그리 시시콜콜 다 얘길 해. 그냥 화장실 다녀오겠다고 하면 되지.’
‘잔소리 좀 그만해. 얼른 가자.’
화장실에서 나온 딸과 나의 걸음걸이는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확연하게 차이 났다.
나는 매장 안으로 들어가며
‘나 깔깔이 코트 살 거야.’
‘엄마, 코트 많잖아.’
‘나나 버스 태우러 갈 때나 발레 갈 때 가볍게 걸쳐 입을 거가 없어.’
‘없긴 왜 없어. 안 돼. 사지 마.’
‘싫어, 살 거야.’
나는 카운터에서 쇼핑 가방을 찾아 깔깔이 코트가 걸려 있는 쪽으로 빠르게 걸었다.
‘잠깐.’
나는 뒤따라오는 딸을 불렀다.
‘왜?’
‘지난 번 네 신랑 신규가입 쿠폰 썼니?’
딸은 잠시 휴대폰을 뒤지더니
‘썼나? 찾아볼게.’
나는 딸이 쿠폰 확인을 하는 동안 깔깔이 코트를 입어 보았다.
‘썼네.’
‘나 어때? 괜찮아? 괜찮지?’
‘그래. 사. 사. 근데 이 중에서 필요 없는 건 빼자.’
딸은 쇼핑백을 들어 보였다.
‘그래. 난 이 코트면 돼.’
‘난 살 거 없어. 계산하러 가자.’
‘오케이!’
나는 신이 나서 앞서 걸었다.
딸은 카운터에 쇼핑백을 올려놓았다.
‘할인 쿠폰 있으세요?’
매장 직원은 쇼핑백에 든 옷과 신발 등을 꺼내며 물었다.
‘없어요. 아쉽게도.’
매장 직원은 미소 띤 얼굴로 계산을 시작했다.
‘요즘 카톡으로 뭐가 오던데.’
나는 딸에게 말했다.
‘그래?’
딸은 내 휴대폰을 뒤지더니,
‘있다. 두 장이나 있어!’
매장 직원은 확인 후,
‘쿠폰 한 장에 삼천 원씩 할인 돼요.’
‘와! 좋다좋아! 두 장이니까, 육천 원이네. 그게 어디야. 나 잘했지?’
‘잘했어 잘했어.’
‘어, 확인해보니까 제품 당 삼천 원씩 할인 되네요.’
‘정말요?’
‘그럼 신규가입 쿠폰보다 더 좋은 거네.’
‘조으다조으다! 왠지 더 사야 될 것 같은 책임감이 생긴다!
내가 외쳤다.
‘죄송한데요, 다시 확인해보니까 한 번만 할인 되는 거래요.’
매장 직원의 얼굴은 홍당무가 되었다.
‘그 그래요? 괘 괜찮아요.’
나도 모르게 말을 더듬거렸다.
딸은 영수증을 확인하더니,
‘잠깐, 영수증에는 이십 팔 만 원인데, 통장에서는 십 팔만원만 빠졌어요.’
매장 직원도 딸도 나도 놀라 잠시 동안 서로의 얼굴만 쳐다보았다.
‘십 팔 만원인가? 아냐, 이 십 팔만 원이 맞는데.’
딸은 영수증과 휴대폰을 번갈아 보며 확인을 거듭했다. 나는 매장 직원이 보지 못하게 딸의 허벅지를 계속해서 찔러댔다.
-그냥, 빨리 가자. 십 만원이야, 십 만원. 공돈 십 만원이 생겼다고. 십 만원 더 내야 한다는 말 나오기 전에 빨리 가자고. -
나를 보는 딸에게 눈으로 말했다.
‘뭐지?’
‘이상 없는데…….’
딸은 딸대로 매장 직원은 매장 직원대로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나는 매장 직원의 눈치를 살피며 매장 밖을 향해 잰걸음을 걸었다.
‘엄마 어디가? 같이 가.’
딸은 앞서 가는 나를 쫓아 와 붙들어 세웠다.
‘붙잡을까 봐 그러지. 넌 눈치도 없이 왜 자꾸 확인하는 거야? 어련히 알아서 돈 빼갔으려고. 십만 원 더 내라고 쫓아오기 전에 빨리 가자 빨리 가!’
‘근데, 엄마 왜 속삭여?’
‘저기 들릴까 봐 그러지.’
‘분명 이십팔만 원인데 통장에서는 십팔만 원만 빠졌단 말이야.’
‘그만 말하고 빨리 좀 걸어.’
나는 헉헉 숨을 내쉬었다.
‘뭐야? 걸음아 나 살려라 야?’
딸과 나는 차에 탄 후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웃기 시작했다. 웃음은 쉽게 그치지 않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딸은 휴대폰을 보며 물었다.
‘엄마, 상생소비지원금이 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