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을 흐릿하게 만들던 여름의 열기가 사그라지고,
그 빈자리를 채우는 건 어김없이 스산한 늦가을이었다.
11월.
그 이름만으로도 가슴이 조여오던 달.
수능 디데이 10일.
달력에 빨갛게 표시된 숫자 하나가 하루하루를 무겁게 눌렀다.
누군가에게는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이면 끝나는 시기였겠지만,
나에겐 유독 길고 지독했다.
수능이 끝나면 두 주 뒤엔 임용시험.
긴장이 채 가시기도 전에 다시 숨을 조여야 했다.
도서관 복도에 앳된 얼굴들이 진득하게 쌓인 공기 속에 섞여 있었고,
그 옆엔 나처럼 조금은 지쳐 보이는 이들도 있었다.
11월 중순이 지나면 어린 수험생들은 자취를 감추었고,
남겨진 우리들은 더 조용히, 더 단단히 마음을 조였다.
11월은 늘 그런 식으로,
조용히 긴장을 높이며 나를 잠식했다.
임용을 끝낸 이후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첫 학교부터 고3 담당.
수능 감독관이라는 무거운 명찰을 매년 달아야 했고,
그날이 가까워지면 아이들의 눈빛 하나하나가 내 마음을 찌르듯 와 닿았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건 따뜻한 교사이기 이전에,
정확하고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존재였다.
나는 그 긴장감을 대신 짊어져야 한다고 믿었다.
11월이 되면 이유 없는 두통이 찾아오고,
심장이 뛴다는 느낌조차 희미해졌다.
몸은 늘 열이 많았지만, 이상하게도
11월은 내게 냉기와 오한으로 다가왔다.
감독관 차량 스티커를 붙이며 새벽에 집을 나서고,
학교에 다녀와 밤이 되어서야 돌아오면
남편의 생일은 어느새 저녁 그림자 속에 묻혀 있었다.
그날이 그의 생일이었다는 걸
다음 날에야 기억해낸 적도 있었다.
나는 그저 학부모들의 떨리는 표정을 어렴풋이 떠올릴 뿐,
어떻게 하루를 보냈는지조차 선명하지 않았다.
그렇게 말했던 적이 있다.
“나, 11월이 너무 싫어.”
남편에게 처음 그렇게 말했을 때,
그는 조금 어색하게 웃으며 조용히 말했다.
“근데 내 생일이 11월인데...”
그 말이 너무 다정해서, 괜스레 미안해졌다.
그 뒤로 남편은 매년 11월이면 작은 시도를 해왔다.
꽃다발을 건네주고, 내가 좋아하는 음악이 흐르는 카페로 데려가 주었다.
창작을 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차를 몰아 나를 데려다 주었고,
글쓰기 공모전이 있으면 내가 망설이기 전에 신청부터 함께 해주었다.
작년 11월의 어느 날, 남편은 조용히 꽃을 건네며 말했다.
“11월의 기억이, 조금은 바뀌었으면 좋겠어.”
그 말 때문일까.
작년의 11월은 조금 달랐다.
좋아하던 책을 내고, 작은 음반 작업을 하며
차가웠던 그 계절의 감각이 조금씩 흐려졌다.
아마 고3을 맡지 않은 것도 한몫 했겠지.
어쩌면 11월은, 이제 완전히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긴장과 고통의 그림자만 드리우던 달이
작은 꽃 한 송이와 따뜻한 음악으로 채워지기 시작했으니까.
이제 나는 이 계절을 조금은 다르게 맞이할 수 있을 것 같다.
한때 숨이 막히도록 싫어했던 이 달에
새로운 온기를 불어넣어 준 사람 덕분에.
11월을 마주한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그때의 두통과 추위도 결국 지나갔고,
지금의 너는,
그 고단했던 계절을 스스로 어루만질 수 있을 만큼 자랐다고.
그리고 너는 이제,
누군가의 다정으로 다시 피어나고 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