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매직 240909
“매 년 백중 기도를 끝내고 나면 여름은 다 갑니다.”
2시간의 기도를 끝내고, 마이크를 잡은 주지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불교에서 말하는 백중기도란,
음력 6월 1일부터 7월 15일까지 49일간 조상님들을 천도해드리는 기도다.
올해는 양력 7월 6일부터 8월 18일까지가 백중날에 해당했다.
한참 더울 7월부터 8월 중순까지 매주 하는 기도.
절기 상 처서가 8월 22일인 거 보면, ‘여름은 다 간다’라는 스님의 말씀이 틀린 것도 아니었다.
7월의 대구는 타들어가는 햇살이 따갑게 일렁였고, 이내 아스팔트에는 아지랑이가 모락모락 피어나고 있었다.
속절없이 흐르는 땀방울은 속옷을 흠뻑 물들이고, 납작 엎드렸다가 일어나는 108배는 이내 정신을 아득하게 만들었다.
북소리에 맞추어 기도하다보면 2시간은 금방 흘렀다.
그런 게 뭣이 중하리.
- 구례 쪽에도 좋은 사찰이 얼마나 많은데! 그냥 거기서 기도해! 고속도로 타지 말고!
주지 스님은 나를 볼 때마다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하셨다.
그러나 스님의 잔소리 또한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스님을 통해 아빠의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그저 온 맘 다해 잘 가시기를, 빌고 또 빌었다.
백중 기도가 이루어지는 7주 동안, 매주 남해고속도로와 경부 고속도로를 타고 긴 시간을 거쳐 절에 들렀다.
마지막 인사도 못하고, 너무 갑자기 조상님이 되어버린 아빠에 대한 나의 약속이자 만남이었다.
백중 기도하는 동안에는 남편도, 남동생도 오지 말라고 했다.
누구에게도 강요하고 싶지 않았고, 오로지 아빠에게 가장 큰 사랑을 받았던 내가 당연히 해야 하는 셀프 효도였다.
한 3주 차나 되었을까.
나는 ‘여수 댁’이라고 불리며 신도들을 안내하고 봉사하는 역할까지 하였다.
정수리로 새하얀 세월이 내려앉은 할머니들께 도움이 된다면, 그걸로 충분했다.
미천한 내가 실천하는 이 작은 공덕이 아빠에게 닿아 천상으로 인도되기를, 빌고 또 빌었다.
- 사대육신 허망하여 결국에는 사라지니 / 살아생전 애착하던 이내몸은 무엇인고 한순간에 숨 거두니 주인 없는 목석일세 /
인연 따라 모인 것은 인연 따라 흩어지니 태어남도 인연이요 돌아감도 인연이라
위의 내용은 ‘영가 전에’라는 이름을 가진 염불이다.
매주 반복되는 이 염불의 독송이 시작되면, 나는 어김없이 눈물을 흘렀다.
- 이발하여 출근길에 잘 빗어 넘긴 머리카락, 깨끗하게 면도한 코와 입 주변.
그리고 잘 먹어 통통하게 살이 오른 볼과 촉촉한 피부 결이 입관 때 봤던 얼굴인데, 어떻게 몸에 애착하지 않겠어.
부지런히 절하고, 염불하는 2시간의 기도가 끝나고 나면,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는 아빠의 안녕을 기도했으나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상태, 어쩌면 그걸 원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정처 없이 흐르는 땀방울에 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다.
쉴 새없이 몸과 입을 움직이고서야 먹는 사찰음식은 말 그대로 ‘꿀맛’이었다.
음식을 먹고 나면 나는 봉사를 하고 싶다며 주방을 기웃거렸다.
설거지 하나 제대로 하지 못하는 나를, 할머니들은 손녀딸을 보듯이 예뻐해 주셨다.
그저 구석에서 마른 행주로 젖은 식기나 닦는 일감을 주시며 소외되지 않도록 잘 챙겨주셨다.
그들은 한쪽 벽면을 채우고 있던 아빠의 영정사진과 나의 기도에 대하여 안타까워하지도, 사연을 묻지도, 그렇다고 가벼이 말하지도 않았다.
그저 한 명의 구성원으로 맞아주시며 여수가 얼마나 아름다운 도시인지를 서로 떠들어댔다.
백중 기도의 3주차가 되었을 때, 아빠의 단독재이자 막재를 먼저 치렀다.
영가를 보시는 주지스님에게서 듣는 아빠의 모습은 아빠의 원래 성격 그대로를 담고 있었다.
자신의 제사상에 다양한 연령의 영가들을 많이 데리고 와서 배불리 먹이시고, 특유의 깔끔한 성격으로 쿨하게 하늘로 훨훨 날아가셨다는 그 이야기를 나는 참 좋아한다.
아빠 옆에는 아빠 또래의 또 다른 여성분의 영정사진이 49재를 기다리고 있었다.
매주 아빠를 보러 와서 막걸리를 흔들어 놓는 나와는 다르게, 그 아주머니의 가족들은 바쁜지 잘 오질 않았다.
아빠에게 잔을 한잔 올리고나면 나는 아주머니의 잔을 함께 올려드리고, 매번 밥을 꽂아드렸다.
신기하게 그 아주머니께서 꿈에 나오셨다. 이 세상을 떠나는 막재가 시작하기 전에 내 꿈에 나와 ‘고맙다’며 꾸벅 인사를 하시고 떠났다.
내가 아빠에게 바친 과자 몇 개를 들고 훨훨 날아갈 준비를 하셨다.
그렇게 우여곡절을 거듭했던 내 2024년의 여름이 지나갔다.
딸의 더위도 같이 가져가신 건지, 올해의 여름은 그렇게 더운 지도, 어떻게 지나간 지도 모르게 훌쩍 처서가 와버렸다.
이제 음식을 차 안에 잠깐 두어도 괜찮다. 에어컨을 잠깐 끄고 창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해도 되는 가을이 성큼 다가오기도 했다.
해가 제법 어둑해지면 살랑거리는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흩날리고, 스님의 말씀대로 백중 기도를 하고 나니 여름은 다 갔다. 이것 또한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