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토요일에 심리상담 두 번째 시간을 가졌다. 겉으로 보기엔 멀쩡히 회사 잘 다니고 아이들 뒤치다꺼리하며 눈에 띄는 변화 없이 하루하루 평범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지만 보이지 않는 '내 마음속의 나'는 반지하에 살다가 지상층으로 이사를 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빛도 잘 안 들어오는 데다 비라도 내리면 천장에서 물이 새기 일쑤고 벽지에는 곰팡이도 피어오른 그런 집에 살던 내 가난했던 마음. 실제로 돈 드는 일도 아는데 내 자신에게 선심 쓰는 일이 뭐가 그리 어려웠던 걸까.
상담중 내가 겪었던 인간관계에서 받은 상처들을 꺼내 보이며 상대방은 그럴 의도가 아니었으나 순전히 나의 오해에서 비롯된 일이었을 가능성, 내 인내심의 한계 같은 것들을 언급하며 스스로에게 인색한 사람임을 들켜버렸고, 상담사분께 본인의 장점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숙제 아닌 숙제를 받게 되었다.
문득 유년시절에도 남이 면전에서 내 칭찬을 하면 빈말이건 아니건 그것이 부끄러워 부정하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물론 '겸손함'도 살아가는 데 있어 중요한 덕목이지만 자칫 스스로에 대해 과소평가하게 되고 이것이 습관화되면 자존감은 저 바닥으로 떨어질 수 있겠다 하는 것도. 이토록 야박해진 마음에 세 들어 살았던 감정들은 '우울', '무기력', '열등감' 따위의 것들이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화려하게 치장하고 크고 좋은 집에 살아도 그 사람이 진정으로 행복하지 않다면 마음의 집은 초가삼간일 것이오, 실제로는 다 쓰러져가는 집에 살아도 마음이 너그럽다면 보이지 않는 마음의 집은 대저택과도 같을 것이다. 현실에서 궁전 같은 집은 돈이 없어서 짓기 힘들다고 치더라도 내 마음을 어찌할 수 있는 건 순전히 내 의지와 선택에 따른 일인데 나 자신을 너무 열악한 환경에 둔 것 같아 왠지 미안한 마음까지 들었다.
막내딸이 좋아하는 '아기돼지 삼형제' 우화에서 처럼 늑대 입김 한 번에 날아가버릴 가벼운 지푸라기 집이 아니라 셋째 돼지처럼 좀 오래 걸리더라도 벽돌 한 장 한 장 정성껏 쌓아 올려 나를 해치려는 늑대무리가 들이닥쳐도 끄떡없는, 심지어 다른 가족들도 내 울타리 안에서 보호해 줄 수 있는 그런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한편, 격주로 상담을 진행하는 동안 나를 괴롭히던 현직 교사는 아동학대 혐의로 재판을 받아 대부분 혐의가 인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고, 개인적인 일로 돌연 전화번호를 바꾸면서 연락이 끊겼던 오랜 친구와도 반가운 통화를 했다. 내가 간식이나 옷 같은 것을 가끔 강원도에 계신 할머니께 보내드리는데 90세가 다 되신 할머니께서 "네가 누나인데도 동생 용돈 더 많이 챙겨주고 했던 게 아직도 미안하다"는 말씀을 해주시기도 했다.
이렇게 뭔가 어긋났던 일들이 조금씩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안정감, 만족감, 감사함, 행복함 같은 이름의 벽돌을 매일 쌓아 올리는 중이다. 아직은 미완성의 집이라 늑대가 나타났을 때를 대비해 임시 벙커라도 지어야 할 것 같아 당분간 '평정심'을 사용하기로 했다. 도종환 시인의 시구처럼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언젠간 아름다운 꽃을 피우고 멋진 집을 지으리라.
*이미지출처 : PictPicks앱(논산포커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