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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은 Apr 15. 2022

납골당 가는 날

 


  아버님의 기일 세 번째가 되어 어머님과 아이들 고모네와 납골당을 다녀왔다. 교통대란에 양가를 다녀와야 하는 어수선한 명절보다 오히려 납골당을 가는 쪽이 가족다운 집결력이 느껴지는 것은 그날의 주인공도, 우리가 움직이는 목적도 오로지 하나이기 때문일까. 아버님은 코로나가 발발하기 시작할 때 혈액암으로 명복을 달리하셨다. 아버님의 유골함 앞에는 큰 아이가 접은 늠름한 종이 황소가 지키고 있다. 다음에는 다른 종이접기를 가져오면 좋겠다고 나는 생각한다. 

 어머님은 신실한 기독교 신자여서 아버지의 영은 하나님의 곁으로 돌아간 것이라 믿는다. 그럼에도 나는 아버님이 손자의 종이접기를 보고 감탄해마지 않을 것이라 믿는 것은 죽음 이후의 영혼은 겪어본 적도 증명된 적도 없기 때문에 곁에서 부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곤 한다.

 몇 번의 방문마다 그 앞에서 가장 기도를 길게 하시는 분은 어머님이다. 당신의 남편에게 살아생전에 고맙다는 말을 못 한 것이 아직도 마음에 남아 미안하다고 하신다. 그러면서 죽은 사람에게 미안하다고 얘기해봐야 소용없다면서도 그 기도 속에는 아버님의 안녕을 바라는 마음과 때늦은 고마움에 대한 미안함이 뒤섞여 있으리라.

 작은 아이는 고양이를 입양하고 싶다는 소원을 할아버지께 빌면서 고양이와 함께 살기 위해서는 공간이 더 필요하므로 넓은 곳으로 이사할 수 있도록 도와 달라고 빌었다.(내가 아이에게 고양이를 입양하는 건 넓은 곳으로 이사하게 되면 가능할지 모른다고 일러두었으므로) 큰 아이는 포켓몬 카드 오천 원짜리 세트가 하루 만에 육 천원이 되는 걸 보고는 갑자기 칠 천원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소원했다. 아이들의 바람을 들으신 아버님은 분명히 웃으셨을 것이다. 생전 웃음소리가 생생하다. 

 나는 속으로 앞으로 출간될 그림책이 대박 나게 해 달라고 빌었다. 나도 돈을 번다고 할 수 있을 만큼 벌면 아버님의 아들이 일을 쉬엄쉬엄할 수도 있고 아이들에게 좋은 것도 해주고 어머님 용돈도 넉넉히 드리고 모두가 좋은 게 좋은 것 아니겠냐며, 이런 이유라면 아버님도 제 소원을 들어주실 이유가 충분하지요? 하고 좀 협박인가, 싶기도 한 것을 빌었다. 이 모든 소원의 기반은 아버님은 이제 아픔이 없는 좋은 곳에 계실 거라는 우리의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나머지는 가족 모두의 건강을 바라는 최고의 소원을. 어떤 때는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아버님 유골을 모시면서부터 납골당이라는 곳을 나는 처음으로 경험했다. 수많은 납골을 담은 항아리에 생년월일과 생을 다한 날짜가 나란히 적혀 있는 생소한 풍경을 볼 때 어쩐지 마음이 숙연해지는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들의 생은 감히 상상이 안 되어, 아니 상상한다는 것이 그 영혼들에게 어쩐지 미안한 짓 같았는데 처음엔 그 영혼들이 내 생각을 다 엿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두 번째, 세 번째 방문이 되면서부터는 그들의 생전 사진들과 추모글들을 훔쳐보며 그들의 생을 추측해보기도 하는데 처음보다는 덜 미안한 기분이 되었다.

 유골함을 마주한 수많은 유가족들을 보면서 삶과 죽음이 마주하는 곳이 바로 납골당이구나 싶다. 산 자들이 죽은 자를 애도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납골당에 세 번째로 방문한 날, 납골함이 모셔진 곳에는 벽시계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곳의 영혼들은 이제 유구한 시간이라는 공간이 필요 없어진 것이다. 유골함에는 죽은 자의 살았던 시간을 숫자로 기록한다. 오로지 지난 시간만 있다. 째깍째깍 다가올 시간은 기록되지 않는다. 나는 나의 생을 떠올리면서 그 끝을 알 수 없다는 것이 문득 삶을 더 애착하게 만든다는 것을 떠올렸다. 시계가 없으니 시간이 더 궁금해졌고  시계를 찾다가 그곳엔 없다는 것을 알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시간이란 살아있는 사람만 느낄 수 있는 특권일까? 아니면 굴레일까. 


 “어머님, 아버님 꿈꾸세요?”

 아버님이 돌아가시고 일 년쯤 지나 설에 마주 앉아 나물을 다듬으며 내가 물었다.

 어머님이 아버님이 꿈에 몇 번 나타나신 이야기를 해 주신다. 나는 아버님 꿈을 꾼 적이 없다. 아무래도 그런 건 정신적으로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들의 꿈에만 나타나는 것인가 보다. 


 “있잖냐, 그게 말이다. 꿈속에서 내가 설거지를 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그 양반이 들어오더니 집 안을 한 번 쓰윽 둘러보는 거야. 그때도 내 마음은 알고 있었던 것 같아. 이 사람이 이제 어딜 떠날라고 그러는구나 하는데, 이상하게 다른 여자랑 살려고 가는 그런 기분 있잖냐. 그 양반이 그런 말은 안 하는데 내가 그걸 알겠더라고. 그래서 나도 마음이 시큰둥하기도 하고 기분이 안 좋았지, 사실은…. 설거지하면서 그래 가려거든 가라, 나도 하는 둥 마는 둥 대답만 하고.

 영 가려거든 작별 인사라거나 고마웠다라거나 좀 표현을 할 것이지, 평소랑 다르지 않게 무뚝뚝한 거지, 너이 시아버지가 말이다. 그런데 희한하데? 죽은 사람은 꿈에서 얼굴이 잘 안 보여. 그게, 너이 시아버지인 줄은 알겠는데 말이다. 얼굴 이목구비가 흐릿해. 그러구 갔는데 나중에 깨어보니 꿈이더라구. 그 뒤로는 꿈에 안 나타나데.     

 나는 귀신이라거나 영혼이라거나 그런 건 없다고 생각하는데 신기한 건 말이다. 너이 시아버지 돌아가셨을 때 코로나도 발발하고 해서 옆집 할머니한테도 알리지 않았단 말이야. 그런데 장례를 치르고 며칠 있다가 계단에서 옆집 할머니를 만났지 않겠니. 글쎄 할머니가 하는 말이, 요즘은 왜 아저씨가 안 보이냐고 하더라고. 그러면서 꿈 얘기를 하는데 그게 이상한 꿈이라서 나한테 얘길 하는 것 같어. 우리 집 아저씨가 그 할머니를 보면 항상 큰 소리로 안녕하세요, 하고 먼저 인사를 하거든. 근데 꿈속에서 만난 아저씨가 하얀색 두루마리를 차려입고 계단을 올라오자 할머니가 먼저 인사를 했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날따라 아저씨, 너이 시아버지가 말이다. 아무 표정도 없이 한 마디 인사도 없이 집으로 들어가더라는 거야. 그래서 할머니가 아무리 꿈 속이라지만 저 양반이 저럴 사람이 아닌데 했더라는 거야. 꿈 얘기를 끝낸 할머니한테 내가 그랬지. 이 사람 이러이러해서 며칠 전에 장례를 치렀다. 경황이 없어서 알리지 않았다, 했지. 참 희한하지 않아? (이야기를 듣는 나는 소름이 오소소 돋아있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영혼이라는 게 진짜 있는 것 같다.)     

 하루는 네 시누가 전화를 해서는 대뜸 이러는 거야. 엄마, 이제 아빠 걱정하지 마. 좋은 데서 잘 사실 거야. 그러면서 아빠 꿈을 꿨다는 거야. 걔가 꿈에서 아빠한테 전화를 했는데 이 사람이 전화를 허겁지겁 받는 듯하더니 받자마자 바쁘다며 전화를 끊으라고 했다지? 딸내미가  왜, 아빠? 하고 물었더니 기분 좋은 목소리로 얼른 개밥 주러 가야 된다는 거야. 흐흐흣. 걔 말로는 아빠가 어디 한적한 바닷가에서 살고 있는 것 같았다고 하대. 아주 기분 좋은 목소리로 바뻐, 그랬대. 

…….

 죽은 사람은 꿈속에서 흐릿해. 집안을 한 바퀴 둘러보더니 평소 쓰고 다니던 야구모자를 눌러쓰더니 ‘나, 갈게’ 이러더라구. 그래서 나도 마음이 떠난 사람 붙잡아봐야 소용없지 싶어서 그래 가라. 이러고 나니 꿈에서 깼지 뭐야.”      


 어머님은 아버님이 간다고 해서 그래 가라, 했다는 꿈 이야기를 한 번 더 하신다. 그 속에는 평소에 표현하지 못했던 속내가 들어있다. 어머님은 서운한 것을 다 끄집어내어 속풀이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니 꿈도 현실처럼 그렇게 섭섭하게 끝나고 말았다. 

“그게 있잖냐. 그래 이제 가실 거냐. 그동안 수고 많았다. 이래도 되잖어? 근데 이게 살짝 꿈인 것도 알겠는데 그게 그렇게 안되더라. 참 이상하지?”

 어머님은 슬픈 듯도 아쉬운 듯도 아버님을 원망하는 듯도 한 말을 꿈 이야기를 통해 하신다. 

“죽으면 다 용서가 되고 내가 못한 것만 남아서 미안하기만 해. 그것도 참 이상하지?”

 어머님 마음도 아직은 알쏭달쏭하신가 보다.     

 아이들 고모네와 어머님, 우리 가족이 함께 모여서 아버님 납골당을 찾고 고양시 어디서 점심과 커피를 먹고 모두 안녕을 바라며 헤어졌다. 어머님을 모셔다 드리는 길에 어머님 댁에 들러 설에 만들어놓은 만두를 한 봉지 들고 나오는데. 현관 열쇠 거는 곳에 아버님의 회색 야구모자가 걸려 있었다. 

 어머님은 낮의 납골당에서 나랑 천천히 나오는 길에 말하셨다. 아버님 납골함의 두 배 공간인 어느 부부의 납골함 옆을 지나갈 때였다.

 “나는 여기 말고 수목장을 치르고 싶어. 죽으면 육신은 흙으로 돌아가니, 그때는 너네 아버지 납골함도 거기다 다 털어서 같이 묻어. 그러고 20년쯤 지나면 그 땅에서 우리는 다 흡수되어 없어지는 거야. 그게 순리에 맞는 거지. 여기서 언제까지나 있을 수는 없잖아?”

 그 말에 나도 어머니에게 수목장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언젠가 남편에게 내가 죽으면 수목장을 해달라고 이야기한 적이 있다. 그 이야기를 했더니 남편이 과일나무보다 꽃나무가 좋겠지? 해서 나는 사과나무가 좋을 것 같다고 대답한 적이 있다. 꽃도 피고 과일도 맺으니. 

 저녁엔 만둣국을 먹으면서 어머님이 말씀하신 수목장 얘기를 꺼냈다. 남편이 듣더니 그래? 하고 놀란 눈치다. “사실 아버지는 유골을 서산 앞바다에 뿌려달라고 하셨어!” 

“아, 그래?”


 나는 어머님이 오래오래 사셨으면 좋겠다. 납골당을 나오면서 아버님이 소싯적에 사랑도 많이 못 받고 자라서 표현도 잘 못한 거라면서, 어머님 자신도 일찍이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홀 어머님 밑에서 얼마나 구박을 받고 자랐는지, 자신도 마음이 너그럽지 못하다고 한숨을 뱉듯 말씀하셨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시어머님은 내가 그릇을 실수로 깨도, 명절에 늦어도, 덤벙대도 잔소리를 하지 않으신다. 언젠가 어머님이 소싯적 하도 홀 어머니에게 잔소리를 듣고 자라 자신은 그렇게 하는 게 너무 싫다고 하신 적이 있다. 그러니까 어머님의 품성은 원래 너그럽고 자비롭다. 겪어보니 어머님 덕분에 좋은 시어머니라는 건 이런 것이구나, 하고 보고 배운다.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이 같지 않다. 예상할 수도 없다. 

 요즘따라 시간이 무척 빠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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