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오늘은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리진 Sep 13. 2023

가족의 탄생

만약 계속 둘이었다면



 우리 가족이 셋이 아닌 둘이었다면 어떤 모습이었을까?

 지금 우리 세 식구가 너무 행복하지만 가끔 딩크족인 커플들을 보면서 우리였다면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하고 생각해 본 적이 있다. 아마도 이제는 너무도 익숙해 지루한 연애와 결혼의 그 어디쯤인 채 지내고 있지 않을까...  난 여전히 애니메이션 회사를 다니며 내 글과 그림을 그릴 여유 없이 시리즈의 캐릭터들을 지겹도록 그리고 있겠지. 그리곤 퇴근 시간이 되어 남편과 시간 맞춰 만나 안주를 저녁식사 삼아 술과 함께 하루를 마무리 짓는 것이 일상이겠지. 아마 경제적으로는 좀 더 여유로워 지금보다는 자유롭게 여행했을 테고, 지금보다는 갈 수 있는 장소가 제한적이지 않으며 좀 더 혼자만의 시간도 많았을 것이다.

 햇수로 연애 6년에 결혼 13년 차인 우리 부부는 오랜 연애기간으로 가까운 친구들보다는 결혼을 늦게 한 편이었다. 아이도 결혼 후 3년 차에 낳았다. 결혼 후 3년을 아이 없이 살아본 것이다.

 연애를 오래 했지만 결혼 후에도 우리 부부는 연애를 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상을 보냈다.

 연애할 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한 집에 산다는 것.

 연애를 오래 했어도 함께 살아도 각자 출근해서 일을 하고 퇴근 후엔 데이트하듯이 지냈다. 이미 육아의 빨간 맛을 보고 있던 친구들은 그런 우리 부부를 부러워하는 것처럼 이야기했다. 우리를 보며 둘이 너무 좋겠다~며 부러움 섞인 말투로 말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반은 영혼 없는 기계적인 방청객의 반응과 같았다.

 사실 둘만 지내는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았다. 둘 중 하나 약속이라도 있으면 불 꺼진 빈 집에 혼자 들어가야 했고, TV를 틀어 놓아도 뭔지 모를 적막한 공기가 외롭게 만들었다. 결혼 직전까지도 부모님과 함께 살며 독립생활을 해본 적 없는 나는 불 꺼진 집에 혼자 들어가는 것이 너무 어색했다. 혼자 집에 들어가야 하는 날은 약속을 만들기 위해 전화번호 목록을 뒤졌다. 하지만 퇴근 후 갑자기 연락해 만날 수 있는 유부녀는 거의 없었다. 내가 친구들을 만나려면 낮에 만나야 하거나 주말에 만나야 했다. 하지만 낮에는 회사를 가야 했고 주말은 남편과 찰떡같이 붙어있었기 때문에 결혼 후 친구들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았다. 또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은 아이를 데리고 다녀야 하는 불편함 때문에 외출을 꺼려하거나 친구를 만나기 위해서는 내가 그 친구의 집으로 가야 했다. 집은 온갖 아이용품으로 정신이 없고, 아이는 쉴 새 없이 엄마를 찾아댔다. 아이가 떼를 쓰며 울어대기라도 하면 대화는 더 이상 불가능했다. 육아에 찌든 친구를 보면 딱해 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이를 낳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우리 부부는 연애는 오래 했지만 같이 사는 건 처음이니 서로의 생활습관도 적응할 겸 1년의 신혼생활을 가진 후 아기를 갖자는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우리의 2세 계획은 계획보다 1년 늦어졌다. 내가 맘먹는다고 바로 가질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임신을 했고 우리 부부에게도 존재만으로도 사랑스러운 생명체가 태어났다. 비로소 가족이 완성된 느낌이었다. 둘만 있을 때는 가족이라는 표현은 왠지 어색했다. 그냥 부부라는 표현이 적당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가족 탄생의 기쁨도 잠시. 나의 일상은 피폐해졌다.

 인천에서 분당으로 출퇴근하는 남편은 6시 칼퇴근을 해도 집에 오면 8시가 넘었다. 그야말로 독박육아였다. 낮에는 천사였던 아이는 야경증으로 밤마다 이유 없이 울어댔고 꽤 오랜 시간 밤마다 나를 힘들게 했다. 나는 늘 착장으로 아기띠를 해야 했다. 아이가 언제 안아 달라고 할지 모르니 아기띠는 항상 내 허리춤에 걸려있었다. 또 언제 토를 하거나 기저귀가 새어 묻을지 모르니 옷은 언제나 편하고 쉽게 더러워져도 되는 옷만 찾았다.  덕분에 나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거울에 비친 나는 추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그런 육아의 빨간 맛을 잊게 해주는 것들이 있기에 버틸 수 있었다.

아이의 웃음소리, 엉뚱한 행동, 안았을 때의 감촉, 냄새. 나만을 향한 눈빛. 그것들은 내가 힘들어 죽겠다는 것을 잠시 잊게 해주는 진통제와 같았다. 아이의 볼과 몸에 코를 대고 아이의 냄새를 맡으면 베이비 로션 향이 베인 아기의 살 냄새는 세상의 그 어떤 향기보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시간이 지나 육아의 빨간 맛은 아이가 어린이 집에 다니기 시작하면서 점차 순한 맛으로 바뀌었다. 나만의 시간이 생기면서 육체적, 정신적으로 힘든 시간도 줄어들었다.

아이가 말문이 트이자 남편의 퇴근이 늦어지는 날에도 외롭지 않았다. 더 이상 불러낼 친구들의 목록을 뒤질 필요가 없어졌다. 지금은 초등학교 4학년인 딸아이는 움직이는 게 많이 귀찮아진 엄마를 대신해 아빠의 편의점메이트이자 산책메이트이고, 미용실메이트이자 야구장메이트가 되어줬다. 그럴 때마다 딸아이가  없었으면 어쩔 뻔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이제는 남편도 안 해주는 사랑한다는 말을 매일 밤 해주는며, 나 혼자 산다 정도나 봐야 터지는 웃음 버튼을 매일 눌러주는 (물론 분노버튼도 자주 누르지만..) 이런 존재가 없었다면 나이가 들수록 남편만 바라보며 살기에는 나의 긴 인생이 너무 지루하고 외롭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이 오나 보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